[이종석 기자의 스포츠 한 장면]같은 배를 탔다고 모두 한마음은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6일 03시 00분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이종석 기자
이종석 기자
 벤치 앞 테크니컬 박스(감독 지휘 구역)에 서 있다 골이 들어가면 순간적으로 뒤돌아보는 축구 감독 A가 있다. 골문 쪽이나 골 세리머니를 하는 선수를 보지 않고 뒤돌아 벤치를 본다. 매번 이러는 것은 아니지만 티가 나지 않게 애쓰면서, 종종 이렇게 한다. 골 넣은 선수가 자기한테 달려오고 있으면 A는 곁눈질로라도 벤치 쪽을 슬쩍 훑을 때가 있다. 실점을 했을 때도 뒤돌아본다. 왜 그럴까.

 닷새 전, 국내 프로축구 경기를 중계하던 해설위원이 한 골 차로 뒤지고 있던 팀에 대해 대략 이런 말을 한다. “요즘 벤치 분위기가 가장 좋은 팀입니다. 쉽게 패하지는 않을 거예요. 남은 시간 동안 뒷심 발휘를 충분히 기대해 볼 만합니다.”

 경기는 그라운드 안에 있는 주전 선수 11명이 뛰고 있는데 뒷심을 기대하는 이유는 벤치 분위기가 좋기 때문이라고 했다. 해설위원의 말대로 벤치 분위기의 힘이었는지 어쩐지는 몰라도 이 팀은 결국 후반에 한 골을 따라붙어 패배를 면했다.

 벤치 분위기가 좋다는 건 경기를 뛰고 있는 주전 선수들을 향해 후보 선수들이 외치는 ‘파이팅’이나 박수처럼, ‘으쌰 으쌰’ 하는 분위기가 넘친다는 얘기다. 좋은 기회를 아깝게 놓쳤을 때 머리를 쥐어뜯거나 무릎을 치는 선수가 많아도 벤치 분위기가 좋은 걸로 볼 수 있다. 벤치 분위기가 좋다는 건 주전 후보 할 것 없이 팀이 하나로 똘똘 뭉쳐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해설위원의 말도 그런 맥락이다. 지난주 프로야구 한화 김성근 감독은 더그아웃에서 경기 진행 상황을 주의 깊게 살피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기’에 빠져 있던 선수를 2군으로 보내버렸다. 이런 걸 보면 출전하지 않은 선수들의 경기 몰입도로 벤치 분위기를 가늠해 볼 수도 있지 않나 싶다.

 다시 감독 A 얘기로 돌아가서.

 골이 들어갔을 때 A가 뒤돌아보는 건 벤치 분위기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좀 더 정확히는 벤치에 앉은 선수들의 순간 표정을 읽으려는 것이다. “우리 팀이 골을 넣었다고 벤치에 있는 선수들이 다 좋아할 걸로 생각하면 그 사람은 순진한 감독입니다. 뭘 잘 모르는 거예요. 전부 다 벌떡 일어나 환호하는 팀도 물론 있겠죠. 또 그러면 제일 좋겠죠. 하지만 그렇지 않은 선수도 드문드문 있습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골을 넣은 팀 동료와 사이가 나쁜 선수가 있을 수 있다. 꼴 보기 싫은 놈이 골 넣고 좋다고 하는데, 부처가 아닌 다음에야 벌떡 일어나지겠나…. 주전 경쟁 상대가 골을 넣어도 그럴 수 있다. 내 자리가 흔들리는 판인데 환호가 나올 리 없다. 감독이 싫어 그럴 수도 있다. 기량이 좋은(?) 자신을 벤치에만 앉혀 놓는 감독이 잘되는 게 싫다. A는 팀이 골을 먹었을 때 순간적으로 양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벤치 선수를 본 적도 있다. 이런 걸 당연하다고 보긴 뭣해도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다. A는 이런 걸 평소에 봐 뒀다가 적당한 기회를 봐서 수습에 나선다. 한 명이라도, 이런 선수를 그냥 두는 건 팀에 도움이 안 된다.

 방법은 두 가지다. 선수가 알아듣게 설명하거나 적당한 때를 봐서 다른 팀으로 보내 버리거나. “선수 얘기를 들어 보면 그런 마음이 들 수도 있겠다 싶은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잘 얘기해서 다독거리죠. 그런데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분위기를 계속 흐리려는 선수가 있어요. 그러면 내보내야죠.”

 꼭 나이 어린 선수들만 이러는 건 아니다. 프로팀 코치 B는 시즌 내내 경기장에서 웃는 얼굴 한 번 보기 힘들다. 다 졌던 경기를 뒤집어 역전승을 거둔 선수들이 좋아서 방방 뛰어도 벤치의 B는 웃지 않는다. 승기를 잡았다 싶은 타이밍에 감독이 주먹을 불끈 쥐어도 뚱한 표정이다. 감독이 웃는다고 코치가 꼭 따라 웃을 필요는 없다. B가 웬만해선 잘 웃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팀은 감독과 코치 사이가 나쁜 걸로 웬만큼 소문이 나 있다. 틀어진 둘의 관계를 팀에서도 부인하지 않는다. 이런 팀들은 분위기가 좋을 리 없다. 대체로 성적도 나쁘다. 지난 시즌 이 팀 성적이 그랬다.

 동주공제(同舟共濟). ‘동주’는 같은 배를 말하고, ‘공제’는 힘을 합해 서로 돕는다는 뜻이다. ‘같은 배를 타고 힘을 합쳐 강을 건넌다’는 얘기인데, 사람 일이 어디 꼭 그런가. 같은 배에 올랐어도 벤치에서 보듯 딴마음인 경우가 있다. ‘감독이 빨리 잘려야 내가 그 자리를 물려받을 텐데…’ 하는 코치도 있을 것이다. 직장에도, 학교에도, 사적인 모임에도 비슷한 경우는 널렸다. 나한테 좋은 일이 있을 때 입술을 다물고 가늘게 실눈을 뜨거나,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양 입꼬리가 올라가는 사람들이 같은 배에 없는지 잘들 한 번 보시기를…. 그런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박수를 보낸다. 진심으로….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측구#프로축구#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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