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만난 사람]이상열 대신고 축구감독과 ‘아주 특별한’ 두 아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8일 03시 00분


학교선 감독님, 집에선 아빠… 축구가 맺어준 父子

이상열 대신고 축구부 감독(가운데)과 ‘성이 다른 두 아들’ 변수호(오른쪽), 최현덕. 이 감독이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가족으로 만든 두 아이는 고교 축구 장신 톱2로 성장해 대학 입학을 기다리고 있다. 변수호가 1년 위이지만 큰 부상으로 한 해를 쉬어 둘 모두 고교 3학년이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이상열 대신고 축구부 감독(가운데)과 ‘성이 다른 두 아들’ 변수호(오른쪽), 최현덕. 이 감독이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가족으로 만든 두 아이는 고교 축구 장신 톱2로 성장해 대학 입학을 기다리고 있다. 변수호가 1년 위이지만 큰 부상으로 한 해를 쉬어 둘 모두 고교 3학년이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아빠가 아니라 감독님으로 느껴질 때가 많아요.’

 지난해 가을 어느 날 이상열 서울 대신고 축구부 감독(46)은 카카오톡 메시지 하나를 받았다. 축구부 변수호(19)가 보낸 것이었다. 경기에서 패한 날, 주장인 수호를 호되게 혼낸 뒤였다. ‘서운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소주 한잔을 하면서 오히려 서럽게 눈물을 흘린 쪽은 이 감독이었다. 함께 있던 지인이 “아예 시작하지 않은 셈 치라”며 위로했지만 지난 6년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집에 돌아와 문자를 보여주자 아내 송미희 씨도 펑펑 울었다. 모든 게 혼란스러웠다.

‘성(姓)이 다른 아들’을 만나다

 이 감독이 수호를 처음 만난 것은 대신중 감독을 맡고 있던 2009년 가을이었다. 서울 마장동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경기를 하던 수호는 서울 알로이시오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2000년대 초반까지 ‘소년의 집’으로 불리던 이 학교는 부모가 없거나 직접 양육하기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이 다니는 곳이다. 이 감독은 당시 스카우트를 위해 여러 초등학교를 돌며 선수를 찾고 있었다.

 “축구를 잘하는 게 먼저 눈에 띄었죠. 그 뒤로 가만히 보니 몸이 너무 말랐더라고요. 불면 날아갈 것 같다고 할까. 일단 이것저것 먹이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수호가 마음에 들었어요.”

 이 감독은 그전에도 시설에 맡겨진 초등학생 7명을 자신의 중학교로 데려와 기숙사에서 먹고 자게 했던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축구 선수로 성공한 아이는 없었다. 곁에 두고 있던 중학교 때만 해도 곧잘 하던 아이들이 상급학교로 진학한 뒤에는 축구를 그만두기 일쑤였다.

 “부모가 늘 지켜보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그 아이들은 ‘내가 누군가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감정을 갖지 못한 것 같아요. 축구를 계속할 확실한 동기 부여가 없었던 거죠. 자기만의 성을 쌓고 있다가 다시 버림받기 전에 스스로 포기를 한 건 아닐까 했죠. 수호를 보면서 또 그런 전철을 밟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알로이시오 초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대부분 부산 알로이시오 중학교로 진학한다. 대신중에 가려면 초등학교부터 옮겨야 했다. 이 감독은 수호를 자신의 학교 근처에 있는 독립문초로 전학시킨 뒤 대신중 기숙사에서 생활하게 했다. 그리고 가족들을 설득했다. 당시 그에게는 10대 후반의 딸 둘과 여덟 살 아들이 있었다.

 이 감독은 주말마다 수호와 함께 집으로 갔다. “밥이나 한 끼 같이 먹자”며 종종 제자들을 집에 데리고 왔던 터라 처음에는 아내도 그런 줄로만 알았다. 키는 커도 순진하고 착한 수호를 아내와 딸들은 귀여워했다. 서로 얼굴을 맞대는 시간이 늘자 이 감독은 아내에게 ‘본색’을 드러냈다.

 “우리가 수호의 가족이 돼 주면 안 될까?”

 자식 셋을 키우고 있는데 식구 한 명이 더 늘어나는 것을 누가 좋아할까. 천사 같던 아내와의 다툼이 늘어났다. 딸들도 싫어했고, 홀로 계시는 어머니도 만류했다. 지인들의 반대는 더 심했다. 하지만 이 감독은 뜻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2010년 5월 수호는 기숙사를 떠나 이 감독의 집으로 들어왔다. 아들이 둘이 됐다. 1년 뒤 수호의 알로이시오 초등학교 1년 후배인 최현덕(18)도 이 감독의 가족과 함께 살게 됐다. 수호가 워낙 친했던 동생 현덕을 ‘추천’한 것. 최현덕은 “학교와 기숙사에서 단체생활만 하다 처음으로 집이라는 곳에서 살아보니 ‘이런 게 가족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 느낌을 말했다. 중학교 3학년인 친아들 정우(15)를 포함해 지금 이 감독의 집에는 성(姓)이 다른 아들만 셋이 산다. 정우도 축구 선수다.

고교축구 장신 톱2

2010년 중학교 1학년 때의 변수호(오른쪽)와 이상열 감독. 당시 170cm가 조금 넘었던 변수호의 키는 193cm가 됐다. 동아일보DB
2010년 중학교 1학년 때의 변수호(오른쪽)와 이상열 감독. 당시 170cm가 조금 넘었던 변수호의 키는 193cm가 됐다. 동아일보DB
 주변의 걱정은 기우였다.

 수호와 현덕이는 큰 말썽 없이 무럭무럭 자랐다. 처음에는 같이 사는 걸 반대한 아내와 두 딸도 언제 그랬냐는 듯 애정을 쏟았다. 변수호와 최현덕은 “누나들이 참 잘해줬다. 경기가 끝나면 ‘스트레스를 풀어야 한다’며 맛있는 것도 사주고 노래방도 함께 갔다”고 말했다. 아들이 늘면서 아내의 말수도 늘었다. 이 감독은 “두 녀석이 집에서는 엄마와만 얘기한다”며 웃었다.

 이 감독은 축구 선수로는 무명이었다. 그는 “중학교 때 전국에서 톱 랭킹으로 꼽혔다”고 자랑했지만 고교 1학년 때 동네 형이 장난으로 쏜 공기총에 다리를 맞은 뒤 1년 가까이 운동을 쉬면서 더는 선수로 성장하지 못했다. 그 대신 단국대를 졸업한 뒤 일찌감치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1990년대 중반 7년 동안 브라질에서 축구 유학을 하며 매년 겨울 국내로 돌아와 후배들을 지도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스트라이커 조재진(35·은퇴)과 올해 K리그 클래식 득점 선두를 달리고 있는 정조국(32·광주)이 그의 대신중 제자다.

 수호는 독립문초로 전학한 해에 작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2009년 12월에 홍명보장학재단이 주최한 축구 자선경기 ‘Share The Dream’에 초청을 받으면서다. 이 재단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는 아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한 ‘수호천사 프로젝트’의 첫 번째 대상자가 수호였다. 당시 자선경기에 함께 출전했던 한국 축구의 간판스타 전북 이동국(37)은 “수호가 보여준 뛰어난 위치 선정과 골 결정 능력은 내가 초등학생 시절 갖지 못했던 것”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수호는 지난해 유급을 했다. 고교 2학년이던 2014년 12월 18세 이하 대표팀 멤버로 러시아 대회에 다녀온 직후 연습경기에서 발목을 다쳐 지난해 7월까지 운동을 쉬었다. 유급을 한 탓에 수업도 받지 못했고, 동생인 현덕과 올해 같은 학년이 됐다. 대신고는 올해 7월에 열린 백록기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나선 수호는 우수선수로 뽑혔고 현덕이도 최전방 공격수로 제몫을 다했다.

 이 감독이 처음 만났을 때 160cm가 조금 넘었던 수호는 이제 193cm까지 자랐다. 현덕이도 191cm다. 최현덕은 “대회에 많이 나가 봤지만 수호 형보다 큰 선수는 못 봤다. 나보다 큰 선수도 수호 형뿐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감독의 키는 170cm가 안 되지만 셋째 아들 정우의 키도 180cm가 넘는다.

 “무섭게 자라는 아이들을 보면서 겁도 났어요. 몸의 밸런스가 안 맞으면 어떡하나 했는데 다행히 잘 컸어요. 요즘 아이들과 함께 외출하면 지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어떻게 저런 아빠에게서 훤칠한 자식들이 나왔을까’ 하며 쳐다보는 것 같아요. 그때마다 입꼬리가 쓰윽 올라가며 아내와 눈을 마주치죠. 얼마나 흐뭇한지 몰라요.”

 이 감독은 수호와 현덕이가 집에 온 뒤 경기에서 잘했을 때 관중석에서 응원하는 아내를 쳐다보던 두 아이의 눈빛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이 감독은 “아이든 어른이든 칭찬받고 싶어 한다. 부모의 응원을 받으며 축구공을 차던 친구들을 수호와 현덕이가 얼마나 부러워했을지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짠하다”고 말했다.

“함께 살며 정을 느끼면 그게 가족이죠”

2014년 여름 물놀이를 하며 함께 사진을 찍은 3형제. 오른쪽이 아들 중 맏이인 변수호, 왼쪽이 둘째 최현덕, 가운데가 막내 이정우다. 이상열 감독 제공
2014년 여름 물놀이를 하며 함께 사진을 찍은 3형제. 오른쪽이 아들 중 맏이인 변수호, 왼쪽이 둘째 최현덕, 가운데가 막내 이정우다. 이상열 감독 제공
 수호는 꼬박 6년, 현덕이는 5년을 이 감독 집에서 살고 있다. 일반적인 입양 절차를 따랐다면 변수호, 최현덕이 아니라 진즉에 이수호, 이현덕이 됐어야 했다. 하지만 이 감독은 자신을 “아빠”라 부르는 수호와 현덕을 아직도 호적에 올리지 않고 있다.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요”라며 먼저 의문을 제기한 건 성격이 활달한 현덕이었다. 최현덕은 “고등학교 1학년 때인가? 아빠와 아들로 사는데 왜 호적에 올리지 않느냐고 물었다”고 말했다. 이 감독에게 그 이유를 따로 물은 것.

 “호적에 올리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죠. 알로이시오 초등학교 수녀님들에게도 동의를 받았으니까요. 하지만 아이들이 아직 어린데 일방적으로 입양을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꼭 호적에 올라야만 가족은 아니니까요. 현덕이가 물었을 때 수호도 함께 불러놓고 얘기했어요. ‘조금 더 있으면 너희들은 성인이 된다. 그때 가서 내 호적에 들어올지 여부를 결정하라’고. 수호와 현덕이 모두 친부모 얼굴을 기억 못하지만 성이 확실한 만큼 지금도 어디엔가 친부모님, 아니면 친척이라도 있을 겁니다. 아이들이 성인이 돼 ‘내 핏줄을 찾겠다’고 했을 때 그걸 말릴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입양을 했다가 나중에 파양을 하는 건 이 아이들한테 못할 짓을 하는 거죠. 처음에는 수호와 현덕이 모두 ‘나를 친자식처럼 사랑하지 않나 보다’ 하고 생각했던 것 같지만 지금은 이해하는 것 같아요. 이제 아이들이 결정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네요.”

 이 감독은 과거에 수호와 현덕에 대해 취재하고 싶다는 언론이 있었지만 거절했다고 말했다. 그때만 해도 아이들이 어렸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번 인터뷰 요청을 받아들인 것에 대해서는 “내년이면 둘 다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대학생이 되면 지금과는 다르다. 기사를 보고 혹시 친부모나 친척들로부터 연락이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해 아이들과 의논한 뒤 취재에 응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친부모가 자식을 때리고 친자식이 부모를 학대하는 얘기가 더는 뉴스도 아닌 세상. 만약 수호와 현덕이 나중에 친부모를 찾거나, 성인이 된 뒤 독립하겠다고 하면 그때는 어떨 것 같으냐고 이 감독에게 물었다.

 “수호와 현덕이를 데려왔을 때부터 생각한 일입니다. 마음이 아프겠지만 각오는 하고 있어요. 이렇게 예쁘고 착한 아이들인데 누군들 다시 데려가고 싶지 않을까요. 그때가 언제 올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달라지는 건 없을 겁니다. 누군가가 그랬죠. 친자식은 아니지만 가슴으로 낳은 아이라고…. 저는 그런 생각도 안 해 봤어요. 그저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정을 주고받으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그래도 소원이 있다면 수호와 현덕이가 좋은 여자 만나 결혼하는 걸 보고 싶어요. 그때 부모 자리에 앉아 있으면 더 좋겠고요. 지금으로서는 기다릴 수밖에 없죠.”

 “아빠가 다른 친구들보다 나를 더 엄하게 대하는 게 야속했지만 이제는 그 마음을 알 것 같아요. 호적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아요. 지금은 축구를 더 열심히 해 아빠를 기쁘게 해드리고만 싶습니다.”(변수호)

 “정우한테 미안할 정도로 엄마와 아빠가 수호 형과 저를 먼저 챙겨줬어요. 앞으로 정우한테 더 잘해 주고 싶어요. 지금은 마냥 행복하다는 생각뿐입니다.”(최현덕)

 현덕이뿐만 아니었다. 축구로 만난 성이 다른 세 부자는 모두 행복해 보였다.

이승건기자 why@donga.com
#이상열#대신고 축구감독#홍명보장학재단#share the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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