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 투혼’ 희망 전했던 박세리 “골프 인생 후반전 계획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13일 16시 35분


"깨치고 나~가, 끝내 이기리라."

국민가요 '상록수'가 필드에 울리자 그의 눈시울이 이내 붉게 물들어갔다.

13일 인천 스카이72골프클럽에서 은퇴식을 가진 한국 골프의 개척자 박세리(39·하나금융그룹). 그는 이날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KEB하나은행 챔피언십 1라운드에 출전한 뒤 팬과 후배 선수 등 수 천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18번 홀 그린에서 25년 넘게 정들었던 필드와 작별했다.

경기 전 만난 박세리는 "많은 분들 앞에서 울면 큰일인데 걱정이다. 오전 2시에 깼을 만큼 잠도 제대로 못 잤다. 모든 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자주 울컥거린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1번 홀 티 박스에 나서기 직전 복받친 감정에 눈물을 쏟아냈다. 그런 박세리에게 평일 오전 이른 시간에도 골프장을 찾은 1000여 명의 갤러리는 "세리 최고", "영원히 사랑할게요"라며 응원을 보냈다. 박세리의 영원한 스승인 아버지 박준철 씨(66)도 모처럼 딸과 호흡하며 코스를 돌았다. 박준철 씨는 "떠난다고 하니 섭섭하다. 앞으로도 세리가 할 일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7월 US여자오픈 이후 골프채를 잡지 않았던 박세리는 자신의 플레이를 보고 싶어 하는 국내 팬을 위해 고심 끝에 국내 고별전에 나섰다. 지난주 유성CC에서 3개월여 만에 연습라운드를 했던 그는 고질인 어깨부상이 도져 사흘 동안 앓아누웠다. 이날 그가 남긴 스코어는 큰 의미가 없었다. 팬들을 위해 포기하지 않고 완주한 박세리에게는 박수갈채만이 쏟아졌다.

은퇴식에서 박세리의 업적을 기리는 동영상이 흐르는 가운데 행사 참석자들은 일제히 미리 나눠준 '세리'라고 적힌 모자를 올렸다 내리는 동작을 하며 경의를 표했다. 박세리는 "내 골프 인생의 전반전이 끝났다. 앞으론 후배들을 위해 우산 같은 존재가 되겠다. 유망주 육성을 위해 새로운 길을 걸어가겠다"고 다짐했다.

초등학교 때 투포환, 넓이 뛰기, 100m 달리기 등 육상 선수를 하다 6학년이던 1989년 골프와 인연을 맺은 박세리는 중 3때인 1992년 만 14세의 나이로 프로 대회인 라일앤스코트오픈에서 우승하며 천재성을 보였다. 1996년 프로 데뷔 후 국내 투어에서 신인왕과 상금왕을 휩쓴 그는 1998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 진출해 사상 처음으로 첫 승과 두 번째 우승을 모두 메이저 타이틀로 장식했다. US여자오픈에서는 연장전을 포함해 5일 동안 92홀을 치른 끝에 '맨발 투혼'으로 정상에 올라 외환위기에 힘들어하던 국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LPGA투어 통산 아시아 최다인 25승을 거둔 그는 올해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는 대표팀 감독을 맡아 박인비의 금메달을 거들었다.

박세리가 처음 미국으로 건너간 1998년 LPGA투어에는 한국 선수가 한 명 밖에 없었다. 그가 고별경기를 치른 이날 첫 라운드에는 78명의 출전 선수 중 32명이 한국인 선수였다. 이런 코리아 열풍은 박세리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영종도=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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