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두산의 외야수 정수빈은 지난해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였다. 삼성과의 한국시리즈에서 14타수 8안타(타율 0.571), 1홈런, 5타점으로 펄펄 날았다. 하지만 올해 NC와의 한국시리즈에서 정수빈은 한 타석도 들어서지 못했다. 2차전 대수비, 3차전 대주자로 2경기에 출전했을 뿐이다. 두산이 올 시즌 최강인 이유다.
그나마 정수빈은 운이 좋은 편이다. 한국시리즈 엔트리 28명 가운데 단 한 번도 그라운드를 밟아보지 못한 두산 선수는 10명이나 된다. 두산은 2일 마산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도 8-1로 승리하며 4전 전승으로 한국시리즈 2연패를 달성했다. 최소한의 선수만 쓰고도 정규시즌 2위 팀 NC를 압도했다.
역대 한 시즌 최다승 기록(93승)으로 정규시즌 우승을 차지했던 두산은 한국시리즈마저 제패하며 통합 챔피언에 올랐다. 팀 통산 5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이다. 두산이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를 동시에 휩쓴 것은 1995년 이후 21년 만이다.
○환상적이었던 ‘판타스틱4’
두산의 올 시즌은 4명의 막강 선발진 ‘판타스틱4’를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다. 니퍼트-보우덴-장원준-유희관으로 이어지는 선발 4인방은 올해 정규시즌에도 모두 70승을 합작했다. 이들 덕분에 두산은 올해 KBO리그 역대 팀 한 시즌 최다 선발승(75승) 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
지난해 부상으로 주춤했던 에이스 니퍼트는 정규시즌에서 22승 3패, 평균자책점 2.95의 기록으로 다승과 승률(0.880), 평균자책점에서 1위를 차지하며 투수 3관왕에 올랐다. 보우덴도 18승 7패, 평균자책점 3.80으로 맹활약하며 탈삼진 1위(160개)에 올랐다. 장원준과 유희관 역시 15승씩을 달성했다. 선발 투수 4명이 모두 15승 이상을 기록한 것은 KBO리그 사상 처음이다.
정규시즌에서 나란히 다승 1∼3위를 차지했던 이들은 한국시리즈에서도 각각 한 경기를 완벽하게 책임졌다. 1차전 선발 투수로 나선 니퍼트는 8이닝 2안타 무실점 호투로 팀의 연장전 1-0 승리의 발판을 놓았다. 지난해 포스트시즌에서 26과 3분의 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던 니퍼트는 포스트시즌 무실점 기록을 34와 3분의 1이닝까지 늘리며 김수경(현대)의 27과 3분의 2이닝 무실점 기록을 넘어섰다.
2차전 선발 투수로 나섰던 장원준은 8과 3분의 2이닝 1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됐고, 3차전 선발 투수 보우덴은 7과 3분의 2이닝 무실점으로 승리를 챙겼다. 이날 4차전 선발 투수 유희관 역시 5이닝 무실점으로 승리 투수의 영예를 안았다.
시즌 말미 상무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이용찬과 왼손 불펜 투수 이현승은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평가를 받던 뒷문을 확실히 책임졌다. 이용찬은 한국시리즈 1, 3, 4차전 등 3경기에서 5이닝을 던지며 1점만 내줬다. 1, 2, 4차전에 나온 이현승도 평균자책점 0점을 기록했다. 두산은 한국시리즈 4경기에서 단 6명의 투수만 기용하면서 모두 승리하는 진기록도 세웠다.
○‘두산 왕조’ 시작은 이제부터
지난 시즌 후 중심 타자 김현수가 메이저리그 볼티모어로 이적하자 그의 공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김현수의 이적은 두산에 큰 기회가 됐다. 두산 관계자는 “그동안 김현수의 그늘에 가려 있던 김재환, 박건우, 오재일이 동시에 잠재력을 폭발시켰다”고 말했다. 지난해까지 통산 홈런이 13개에 불과하던 김재환은 올해 타율 0.325에 37홈런, 124타점의 ‘몬스터’ 시즌을 보냈다. 그는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 쐐기 솔로 홈런, 3차전에서 결승 1점 홈런을 쳐 냈다. 박건우는 타율 0.335에 20홈런, 83타점을, 오재일도 타율 0.316에 27홈런, 92타점을 올렸다. 이들의 불방망이를 앞세운 두산은 1995년 이후 21년 만에 팀 홈런 1위(183개)에 올랐다. 이와 함께 KBO리그 한 시즌 최다타점(877개)과 최다득점(935개) 기록도 경신했다. 김태형 두산 감독은 “모든 선수가 잘했지만 굳이 한 명을 MVP로 뽑으라면 김재환이다. 내심 기대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잘할 줄은 정말 몰랐다. 김재환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가 기대 이상으로 잘해줬다”고 말했다.
정규시즌에 이어 한국시리즈를 제패하며 올해 최강임을 입증했지만 진정한 ‘두산 왕조’는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우선 야수들이 젊다. 올해 야수진의 최고참인 오재원과 김재호는 31세다. 그럼에도 대다수 야수는 다른 팀 베테랑들에게 뒤지지 않는 경험을 쌓았다. 두산 관계자는 “우리 선수들은 2013년 포스트시즌에서 무려 16경기를 치렀다. 우승을 했던 지난해엔 14경기를 했다. 지난해 프리미어12 우승 때도 8명이나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다. 이젠 큰 경기에서도 조급해하지 않고 스스로 경기를 풀어갈 줄 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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