컵스 우승 이끈 엡스타인 사장
“경력 자살 행위” 주변의 우려에도 “더 큰 저주 깬다” 5년전 사장직 수락
자신이 뽑은 선수들로 마침내 꿈 이뤄
테오 엡스타인 전 보스턴 단장(43)이 시카고 컵스 사장직을 수락한 것은 5년 전이다. 2003년 보스턴의 최연소 단장으로 부임해 2004년 밤비노의 저주를 깨며 보스턴을 86년 만에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그가 더 큰 저주를 깨기로 결심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 그의 결정에 대해 주변에서는 ‘경력 자살 행위’라고 했다. 1908년 이후 월드시리즈 우승이 없던 컵스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보란 듯이 ‘염소의 저주’마저 깨뜨리며 최고의 경력을 갖게 됐다.
2009년 컵스를 인수한 구단주 톰 리케츠가 팀 재건을 구상하면서 가장 먼저 실행에 옮긴 일은 엡스타인 사장 영입이었다. 그가 컵스 구단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원하는 것을 물으면 늘 “엡스타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부임 후 엡스타인 사장은 컵스 팬들에게 이런 질문을 자주 받았다.
“우리 아버지는 87세인데 일생에서 컵스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본 적이 없어요. 아버지에게 내가 뭐라고 말해야 하나요?”
엡스타인 사장의 대답은 늘 같았다. “비타민 잘 챙겨 드시라고 하세요. 몇 년 안에 벌어질 겁니다.”
컵스는 올 시즌을 엡스타인 사장이 선택한 22명의 선수로 시작했다. 엡스타인 사장은 인내심 있게, 하지만 전략적으로 컵스의 라인업을 짜 나갔다. ‘선수가 아닌 인간을 스카우팅하라’는 철학을 가진 그는 선수의 신체 능력보다는 인간적인 됨됨이를 꼼꼼히 살핀 뒤 영입을 결정했다. 엡스타인 사장은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스카우트에게 선수가 그라운드에서 어려움에 처했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지 세 가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달라고 요구한다. 최고의 타자도 열에 일곱은 실패한다는 옛말처럼 야구는 실패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결과는 메이저리그 사상 최다승(103승)이었다.
월드시리즈 7차전, 8회 마운드에 올라온 마무리 아롤디스 차프만이 2점 홈런을 맞고 6-6 동점을 허용할 때만 해도 사람들은 또다시 ‘염소의 저주’를 떠올렸다. 하지만 위기를 극복할 줄 아는 컵스는 결국 마무리 차프만을 패전투수가 아닌 승리투수로 만들었다.
팬들은 보스턴에 이어 컵스의 저주까지 연속해 깨뜨린 그의 전략을 궁금해한다. 엡스타인 사장은 이렇게 말한다. “컵스의 성취는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았다. 컵스의 오늘 승리는 하루 하나씩 비타민을 챙겨 먹은 것 같은, 신중한 과정들이 모인 결과일 뿐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