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어는 얻을 만큼 얻었다. 이제 자동차만 구하면 됐는데 이것까지 이뤘다. ‘2016 타이어뱅크 KBO리그’의 가장 가치 있는 선수(MVP)는 별 이견 없이 두산 에이스 더스틴 니퍼트(35)였다. MVP는 속성 상, 시즌 전 경기에 출장할 수 있는 야수에 비해 근본적으로 불리하기 때문에 선발이 받기 힘들다. 그럼에도 니퍼트(642점)가 삼성 최형우(530점)를 큰 폭으로 제친 것은 투수 3관왕(다승 승률 방어율), 외국인 최다승이라는 드러난 기록 외에도 무형적 임팩트가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니퍼트의 존재감 자체가 두산 퍼펙트 통합 우승의 가장 위력적 무기인 것을 인정한 셈이다.
● 오하이오 촌놈, 한국에서 우뚝 서다
니퍼트는 MVP 확정 직후 ‘한국어로 소감을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어쩔 줄 몰라 하더니 결국 영어로 말했다. 공식 행사가 끝난 뒤 미디어 인터뷰 때에는 양복 겉옷과 넥타이를 아예 벗었다. 와이셔츠 윗 단추도 끌렀다. “덥고 답답하다. (샐러리맨들이) 이런 옷을 어떻게 입고 다니는지 모르겠다”고 웃었다. 니퍼트의 고향은 미국 오하이오 주(州)다. 스스로가 표현하듯 “시골마을”이다. 여름에는 한국에서 야구하고, 겨울에는 미국에서 사냥하는 것이 낙이다. 올 초 재혼 후, 한국인 와이프가 해주는 요리를 먹는 것과 함께 여행 다니는 것이 목록에 추가됐다. 결혼 후 거의 1년이 흐른 시즌 직후에야 신혼여행을 겸해 발리로 다녀왔다. 시골사람의 삶이 그렇듯, 생활이 단순한 만큼 꽂히는 일은 성실히 행한다. 한번 마음을 정하면 오래 간다. 니퍼트에게는 업(業)이 야구고, 마음을 준 대상이 두산이었다. 니퍼트는 “KBO가 나의 커리어를 연장했다. 시골에서 자란 어린 시절, 힘든 시기가 많았다. 해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꽤 됐다. 그러나 해낼 수 있었다. 두산이 아니고, 다른 팀이었다면 이런 업적을 이뤄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을 받을 때마다 눈자위가 붉어진 두 차례의 눈물도 두산 팀원들을 향한 고마움이었다.
● “여보 사랑해” 니퍼트의 평생 두산맨 선언
예상을 깨고, 니퍼트는 시상식장에 아내를 데려왔다. 평소 사생활 얘기를 꺼려하는 니퍼트의 성향을 고려하면 의외였다. 따지고 보면 공식석상에 못 나올 이유도 없었다. MVP 수상 직후 니퍼트의 아내는 실명 공개는 사양했지만 인터뷰에는 응했다.
“바깥에서의 이미지와 달리 남편 니퍼트는 애교가 많다. 시즌 중에 신경 써줄 수 있는 것이 요리라 한국 요리, 미국 요리를 돌아가면서 해줬다. 남편이 다 잘 먹는다”고 웃었다. 니퍼트를 만나기 전까지 야구경기를 한번도 본 적이 없었는데, 오하이오에서 온 시골사람이 수도 서울의 프로야구팀에서 6년을 뛰었고, 그 미국남자를 만나 결혼했으니 인생은 모르는 법이다. 니퍼트는 카메라가 없는 미디어 인터뷰 때에야 비로소 아내를 향해 “여보 사랑해”라고 또렷한 한국말을 건넸다. 결혼 이후 인터넷 악성 댓글로 부부가 마음의 상처를 받았음을 이제야 고백했다. “아내가 그런 것을 참고 내조해줘 고마웠다”라고 미안한 마음을 넌지시 건넸다.
1년마다 계약을 새로 해야만 하는 외국인선수 신분임에도 니퍼트가 2017시즌에도 두산에서 뛰는 것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잘했다’고 하면 (더 잘할 수 있는 부분을) 포기하는 것 같다. 두산에 기여할 것들이 더 있다. 하루를 끝내고, 거울 앞에서 ‘오늘 열심히 했다’고 스스로 만족할 수 있도록 내년에도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 속에 평생 두산맨을 향한 니퍼트의 결의가 선명하게 묻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