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KBO리그 홀드왕을 차지한 넥센 우투수 이보근(31)은 시상대에 서자마자 이 말부터 했다.
그럴 만했다. 이보근은 2005년 넥센의 전신인 현대에 입단한 프로 12년차. 그러나 지난해까지 눈에 띄는 역할을 하진 못했다. 공익근무요원 복무를 마치고 복귀한 올해 스프링캠프에서 필승계투조의 일원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기대보다 우려의 목소리가 컸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상우와 한현희가 팔꿈치 수술을 받고 이탈한 터라 누군가 그 자리를 메워줘야 했다. 김상수~이보근~김세현의 필승계투조에게 주어진 과제는 간단했다.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꾸는 것이었다.
이보근은 이 과제를 문제없이 수행했다. 우려의 시선을 뒤로한 채 조용히 칼을 갈았다. 시속 150㎞에 가까운 빠른 공과 슬라이더는 경쟁력이 있었다. 여기에 마무리캠프 때부터 연마한 포크볼을 추가했다. 스프링캠프 당시 “포크볼에 올 시즌 성패가 달렸다”며 의욕을 보였고, 누구보다 많은 땀을 흘렸다. 그 결과 올해 정규시즌 67경기에서 5승7패25홀드, 방어율 4.45를 기록하며 홀드왕 타이틀을 차지했다. 데뷔 후 처음으로 포스트시즌(PS)까지 경험했다. “당신은 야구만 하면 된다”며 물심양면 지원한 아내 정미희(32)씨의 내조는 힘든 시기를 버텨낸 원동력이었다. 이보근이 PS 첫 등판을 앞뒀을 때와 홀드왕 트로피를 받은 직후 아내에게 고마움을 전한 이유다.
이보근이 시상대에서 내려온 뒤 던진 첫 마디는 “말도 안 된다”였다. 지난해까지 선수로서 뚜렷한 기록을 남기지 못했기에 더욱 그랬다. 수상소감을 전할 때도 트로피만 바라보느라 “소감을 미리 적어놓은 것 아니냐”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모든 것이 신기했다”는 이보근의 말은 진심이었다. 시상식과 나비넥타이 정장 등은 과거 이보근에게 없던 것이었다. “트로피를 계속 쳐다보게 되더라. 무엇보다 2016년 홀드왕이라는 자리에 내 이름이 남게 된다는 사실이 기쁘다. 데뷔 후 처음 받는 상이라 더 기억에 남을 것이다.”
2017시즌을 통해 올해 활약이 일회성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평균치를 만들고 리그에서 손꼽히는 필승계투요원으로 올라서야 한다. 이보근의 활약이 ‘아이러니’가 아닌 당연한 일이 돼야 한다. 기뻐할 틈도 없이 2017시즌을 준비하는 이유다. 이보근은 “홈구장인 고척스카이돔에서 웨이트트레이닝과 러닝을 하며 몸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부터 잘 준비해야 내년에도 힘을 보탤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