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센의 이보근(30)과 김세현(29)은 올해 나란히 생애 첫 타이틀을 품에 안았다. 각각 홀드왕과 세이브왕을 따낸 둘은 모두 공을 ‘아내’에게 돌렸다.
○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건 큰 행복이야”
2005년 현대에 입단한 이보근은 패전 처리조에 머물며 팀이 경기에 지고 있을 때만 마운드에 올랐다. ‘팀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선수들의 흔한 다짐은 그에게 배부른 소리였다. 그는 그저 평균자책점이 떨어져 2군에 내려가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공을 던지기에 급급했다.
“야구가 생각만큼 안 되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한창 이런 고민이 많았을 때 아내한테 얘기했더니 이런 말을 해주더라고요. ‘나는 어쨌든 취직을 해야 해서 직업을 얻었다. 하지만 당신은 하고 싶은 걸로 돈도 벌고 팬들 사랑도 받지 않냐.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건 진짜 행복한 일이다’라고요. 머리를 망치로 한 대 쾅 맞은 느낌이었어요. 제가 잊고 살았던 걸 아내가 확인시켜 줬죠.”
올 시즌 시작 전까지만 해도 아내와 ‘개막전 엔트리에 들 수 있을까’를 걱정하던 그는 시즌을 마치고 당당히 홀드상(25홀드)의 주인공이 됐다. 프로 데뷔 12년 만에 14일 시상식 무대에 선 이보근의 시선은 계속 트로피로 향했다. 트로피에 마치 커닝페이퍼라도 붙여놓은 듯한 그의 모습에 무대 아래서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보근은 “정말 시상식은 저와는 다른 세상의 일이었다. 항상 TV로, 뉴스로만 봤는데 내가 무대에 서있으니 소감을 말하면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그래서 (트로피를) 계속 쳐다보게 되더라”라며 웃었다.
경기 중간에 등판하다 보니 그는 경기 최우수선수로 뽑혀 가족들에게 고맙다는 이야기를 전할 기회도 없었다. “중간 투수로 경기 최우수선수가 되는 건 힘들죠. 무사만루를 막지 않고서야(웃음). 2010년에 해보고 못해본 것 같네요. 그때 시즌 첫 승을 거두고 인터뷰했었어요. 벌써 6년이 지났네요.”
하지만 이보근은 “저에게는 이 자리도 감사한 자리”라고 했다. “어렸을 때 겨우 1군 쫓아다닐 때는 관중 나가는 것 보면서도 던졌는데요 뭐. 가장 중요할 때 믿어 주고 내보내 주시니 이제 정말 책임감이 커요. 이제 제가 나가면 팬들이 ‘우리 팀 이겼다’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내 배 속에 둘째도 있으니 분유랑 기저귀 값 걱정도 없게 해야죠.”
○ “김세현의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시즌 내내 이보근 다음 마운드에 올라 뒷문을 잠근 김세현은 14일 시상식에서도 이보근 다음으로 무대에 올라 세이브상(36세이브)을 받았다.
올 시즌을 앞두고 그가 넥센의 마무리를 맡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무모한 선택’이라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공은 빠르지만 마무리가 갖춰야 할 또 다른 요소인 제구력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생애 첫 완봉승 직후 만성골수백혈병 진단을 받고 9월 말 시즌을 조기 마감했던 것도 김세현의 마무리 성공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올 시즌 처음 마운드에 오른 4월 2일 롯데전 결과 역시 좋지 않았다. 5-1로 앞선 9회 마운드에 오른 그는 피안타 3개로 2실점 하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김세현은 무서운 속도로 세이브를 쌓아올리며 2위(28세이브)와 압도적인 격차로 세이브왕을 차지했다.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많았습니다. 힘든 일도 많았고 아픈 병도 있었는데, 제 옆에 아내가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제 아내가 항상 제게 해주는 말이 있습니다. ‘김세현의 전성기는 오지 않았다’고요. 전성기가 올 때까지 더 야구에 전념하겠습니다.”
‘처음 받는 상이니 꼭 함께 가자’는 남편을 따라 시상식장을 찾은 그의 아내는 그가 상을 타는 모습을 보고 눈물을 펑펑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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