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크 볼이 관중석으로 날아간다. 수비하는 팀의 한 선수가 몸을 사리지 않고, 광고판을 향해 뛰어가 몸을 부딪혀가며 볼을 건져 올린다. 볼이 공격수에게 연결됐고, 블로킹 벽을 뚫은 이단공격으로 멋진 득점을 올린다. 배구 보는 묘미인 이런 미기(美技)를 어쩌면 보지 못하게 될지 모른다. ‘허슬플레이 금지규정’이 생겨날지도 모르는 판이다.
● 수익과 안전 사이에서
KB손해보험 세터 양준식(25)은 17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아찔한 경험을 했다. 4세터 막판 접전 상황에서 수비된 볼을 살려내기 위해 다이빙 캐치를 시도하다가 코트에 설치된 광고판에 어깨가 충돌한 것이다. 그는 잠시 일어나지 못했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배구 코트가 안전한 곳이 아님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LED 문자조명이 켜지는 광고판, 속칭 A보드는 V리그의 운영 주체인 KOVO가 담당하는 영역이다. TV 중계 화면에 코트를 비추면 바로 노출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는 곧 광고 유치를 통해 돈이 된다는 뜻이다. 배구계 관계자는 “한 시즌 동안 A보드 고정광고비로 7000만원을 투자하는 회사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숫자를 다 합치면 만만치 않은 수익원이 발생한다”고 증언했다. KOVO가 돈을 많이 벌면 V리그를 위해 좋은 일이다. 문제는 A보드가 선수 안전을 담보로 잡고 있는 현실이다.
선수가 서브를 넣는 뒤편에도 광고판이 있다. 그러나 이쪽에는 TV 노출이 상대적으로 적기에 전선이 들어가지 않는 광고판을 사용한다. 이 때문에 스티로폼 재질을 넣을 수 있다. 그러나 주심과 부심 뒤쪽의 넓은 지역은 LED A보드가 자리한다. 철, 플라스틱 등 단단한 재질이다. 배구 선수들은 언제든 선수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흉기’를 곁에 두고 뛰는 상황이다.
● KOVO, “문제점 인식하고 있다”
KOVO가 수익에 눈이 어두워 이 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KOVO 관계자는 “연맹 차원에서 논의가 된 적이 있다. 대응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온 대책은 실망스럽다. ‘A보드 뒤쪽으로 날아가는 공은 건져 올려도 인정하지 않는’ 발상이 대표적이다. 위험하니까 아예 하지 말라는 얘기다. 생업을 걸고, 경기에 몰입하는 프로선수에게 허슬플레이를 금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고, 당위적으로도 팬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물론 KOVO가 국제 규격 A보드 설치 룰을 어긴 것은 아니다. 다른 나라 코트도 이런 식으로 구성되는 것 역시 현실이다. 그러나 배구 선수는 KOVO의 자산이기도 하다. 아직 A보드에 충돌해 크게 다친 선수가 없다고 위안 삼을 일이 아니다. 안전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음을 우리는 배구장 밖에서 뼈저리게 겪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