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에는 필연성이 따라야 한다. 프로 스포츠단의 존재 이유는 승리다. 그러나 IBK기업은행 여자배구단의 지향성은 약간 다르다. ‘나눔’이라는 가치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는다.
공공기관인 IBK기업은행의 특수성의 틀 안에서 바라볼 때, 배구단을 이해할 수 있다. 스포츠단이 이기기 위해 물량공세 식으로 자본을 투입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닌 것이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돈을 쓰는 방식 자체가 다르다.
IBK기업은행은 여자배구단과 실업 사격팀을 가지고 있다. 저변 확대가 필요한 종목, 비인기 종목 위주로 선별한 결과다. 인기를 좇아 그룹 홍보를 하기 위한 스포츠단이 아니라 사회공헌 성격이 짙다. 실제 배구단은 IBK기업은행 나눔행복부에 속해 있다. 나눔행복부는 사회공헌팀과 스포츠공헌팀으로 이뤄져있다. 두 팀은 협업을 통한 시너지를 추구하는데 배구단이 핵심적 기능을 담당한다. IBK기업은행 윤해균 총괄국장은 “스포츠를 통한 나눔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은행에서 여자배구단을 창단(2011년 8월)했다. 여자배구의 저변확대와 관심 증가, 연고지 지역(경기도 화성)의 발전 등을 고려했다. 고객의 마음을 얻는 데에는 돈을 쓰는 방법도 있겠지만 스포츠스타를 통한 친밀감 형성이 더 클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고 설명했다.
● 나눔은 시즌과 비시즌을 가리지 않는다
IBK배구단의 홈 코트는 화성 실내체육관이다. 현실적으로 접근성이 만만치 않은 곳에 위치해있다. 그러나 꾸준히 팬들이 이곳까지 찾는 이면에는 IBK배구단의 ‘나눔’의 흔적이 자리한다. 정민욱 배구단 사무국장은 “인근 지역 비엘리트 배구 동호회 소속의 초등학교 학생들, 경기도 장애인체육회와 무한돌봄 센터 생활자와 종사자들을 초청한다. 배구를 보며 잠시나마 스트레스를 해소하시라는 배려 차원이다. 화성뿐 아니라 수원, 안양 지역의 초청자들을 위해 셔틀버스를 운행한다”고 소개했다.
늦어도 4월 초면 시즌이 끝난다. 그렇다고 IBK배구단의 나눔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윤 국장은 “은행에서 2015년 10월 경기도 기흥에 시설 투자를 해 전용체육관을 지어줬다. 이곳에서 비시즌에 정기적으로 장애우나 아마추어 배구인들을 초청해 선수들이 1일코치가 되어준다. 행사가 끝나면 체육관 식당에서 선수들과 식사까지 할 수 있어서 반응이 좋다”고 덧붙였다. 이밖에도 연고지역의 병원을 찾아가 선수들이 병마와 싸우는 환우를 응원하는 사인회를 열기도 한다.
● 가족적 조직문화가 빚은 IBK의 DNA
IBK배구단은 V리그 참가 2년차인 2012~2013시즌, 프로스포츠 사상 최단기 통합우승을 일궜다. 이후 2014~2015시즌 챔피언에 오르며 두 차례 V리그 정상에 올랐고, 정규리그 우승 3회, KOVO컵 우승 3회에 빛나는 신흥명문으로 떠올랐다. 오직 승리를 위해 창단한 배구단이 아니었지만 우승은 무형적 소득을 안겨줬다.
윤 국장은 “팬들 뿐 아니라 은행에서도 만족해한다. 배구를 통해 행원들의 화합이 이뤄지는 효과가 발생한다. 비용 대비 광고 효과가 크고, 여자배구에 기여하는 것도 은행에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후발주자인 IBK배구단의 압축성장을 정 사무국장은 “현장을 존중하나 소통을 중시하는” 조직문화에서 찾는다. 계약 관계인 프런트와 선수단의 관계이지만 정(情)을 우선시한다. 이런 환경에서는 계급장을 뗀 수평적인 대화가 가능하다. 정 국장은 “막내선수가 숙소 옷장 구조가 잘못됐다는 얘기를 프런트에 직접 얘기한 적도 있다. 그러면 바로 조치한다”고 전했다.
2012~2013시즌 통합 우승 직후 주장선수에게 IBK기업은행 정규직을 약속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여자선수들에게 은행 정규직은 은퇴 후 고용을 보장해주는 파격 제안이다. 계약관계가 끝나면 더 이상 소속이 아닌 프로선수에게 이런 제안을 하는 것부터가 IBK기업은행의 문화가 아니면 나오기 힘든 발상이다. 실제 베테랑 리베로 남지연(33)은 은퇴 후 정규직 행원이 보장돼 있다. IBK기업은행 관계자는 “앞으로도 이런 채용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 성적과 나눔의 균형을 어떻게 지속할까?
명장 이정철 감독이 지휘하는 IBK배구단은 2016~2017시즌 V리그 여자부 강력한 우승후보다. 문제는 그 이후다. 시즌이 끝나면 세터 김사니, 리베로 남지연을 비롯해 라이트 김희진, 레프트 박정아와 채선아, 센터 유미라 등 거의 주전 전원이 프리에이전트(FA)로 풀린다. 특히 국가대표 김희진과 박정아의 거취는 V리그 전체 판도를 흔들 재료다. IBK배구단도 당연히 생각이 많다.
정 사무국장은 “타 구단보다 월등히 많게 돈을 쓰지는 않지만 적게 쓰지도 않는다. (IBK기업은행의 공공기관적 성격을 염두에 둘 때) 우승만을 좇아 과다한 투자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FA 선수들과 꾸준히 얘기를 나눌 것이다. 금액 외적인 것으로도 선수들의 마음이 움직이도록 노력하겠다. IBK기업은행만의 가족적 분위기, 친밀감을 선수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레 말했다.
새가 좌우로 날 듯, IBK배구단이 추구하는 명문구단의 지속은 성적과 나눔의 밸런스에 있다. 김윤기 IBK스포츠단 부단장은 사회공헌팀과 스포츠공헌팀을 총괄하며 효율적인 협업 시스템 구축을 모색한다. 배구단의 초심도 결국 이 틀 안에 있을 것이다.
정 사무국장은 “(선수단 운영비와 별개로) 소외계층을 위한 재능 기부와 후원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유능한 새싹이 배구 엘리트로 성장할 수 있도록, 관리 시스템을 만드는데 총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배구단 창단과 배구 동호회 용품 지원도 병행한다. 그는“유망주들이 훗날 IBK기업은행 선수가 될지 보장을 못한다. 그러나 한국배구의 미래를 위해 공헌한다는 생각으로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