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지명’이라는 네 글자는 KBO리그 신인선수들에게 최고의 수식어다. 팀의 미래를 짊어질만한 잠재력이 없다면 1차지명은 불가능한 일이다. 넥센의 1차지명자 이정후(18)가 주목을 받고 있다. ‘바람의 아들’이종범(46) 현 MBC스포츠+ 해설위원의 아들이어서다. 덕분에 ‘바람의 손자’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선수에게 ‘야구인 2세’라는 타이틀은 자신을 알릴 수 있는 한 수단이지만,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일본 가고시마 마무리캠프를 마치고 23일 귀국한 이정후를 만났다.
● 마침내 프로선수가 되다
2일부터 23일까지 진행된 마무리캠프는 이정후에게 잊지 못할 경험이다. 그토록 꿈꿔왔던 프로에 첫발을 내딛는 자리라 처음에는 부담이 컸단다. 그는 “그토록 꿈꿔왔던 프로 입단 후 첫 훈련이었다. 처음에는 떨렸지만, 하면 할수록 기대와 설렘이 더 커졌다. 감독, 코치님들과도 자주 대화하며 많은 것을 얻었다. 감독님과도 편안하게 소통했다”고 밝혔다. 넥센 장정석 감독도 “(이정후가) 무척 성실하게 훈련에 임했다. 미래가 기대되는 자원이다. 타구 질 등 보완해야 할 점이 많지만, 앞으로 잘 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고교와 프로무대는 완전히 다르다. 특히 자율훈련을 강조하는 넥센이라면 더욱 그렇다. 누군가의 지시가 아닌 스스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하는 시스템이다. 장 감독도 코치진에게 “직접 다가오는 선수들과 적극 소통하라”고 주문한 바 있다. 이정후는 “프로에선 고교 때와 달리 스스로 부족한 부분을 찾아서 훈련해야 한다. 나와 잘 맞는 시스템이었다. 무엇이 부족한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고 밝혔다.
● 자신감의 의미, ‘할 수 있다’가 아닌 ‘확신’
이정후가 이번 캠프를 통해 얻은 것은 다름 아닌 자신감이었다. 어찌보면 식상한 말이다. 선수들에게 과거와 달라진 점 또는 캠프를 통해 얻은 점을 물었을 때 마치 모범답안처럼 나오는 답변이다. 이정후가 말한 자신감의 의미는 따로 있었다. ‘프로 무대에서도 할 수 있다’가 아닌 ‘이정후표 야구에 대한 확신’이었다. “정말 큰 자신감을 얻었다. 프로에서도 할 수 있다는 것보다 ‘내 야구’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내 훈련 영상을 직접 보면서 무엇이 문제인지 빨리 파악할 수 있었다. 장단점이 확실히 보였다. 내가 알고 운동하는 것과 모르고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수비와 파워 보강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수해도 주눅 들지 말고 계속 실수해봐야 한다. 실수를 두려워하지 말라’는 홍원기 수비코치님의 말씀도 도움이 됐다.”
● 내·외야 모두 가능, 최적의 포지션은
이정후는 휘문고 1~2학년 때 외야수, 3학년 때는 내야수로 뛰었다. 1차지명 당시 포지션도 내야수였다. 채태인(1루수)~서건창(2루수)~김하성(유격수)~김민성(3루수)이 버티는 넥센 내야의 한자리를 당장 차지하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정후는 “내 장점은 수비보다 타격이다. 코치님들께서도 ‘장점을 극대화하기 위해 타격에 집중하고, 단점을 빨리 고치려 하기보다 멀리 보고 천천히 생각하라’고 말씀하셨다. 포지션은 감독, 코치님이 상의해서 결정하시겠지만, 애착보다 내가 편안하게 생각하고 도움이 될 수 있는 포지션은 외야수”라고 밝혔다.
● 이정후에게 ‘이종범의 아들’이란
‘이종범의 아들’이란 수식어는 어떤 의미일까. 그는 “부담이 없다면 거짓말”이라고 운을 뗀 뒤 “이제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사실 어릴 적부터 그 얘기를 정말 많이 들었고, 신경이 쓰였다. 그러다보니 내가 생각했던 그림이 안 나오더라. 이제는 신경 쓰지 않고 내가 할 것만 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훈련 마치고 돌아오니 아버지께서 ‘수고했다’는 말씀만 해주셨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