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5순위로 뽑은 선수여서 솔직히 큰 기대를 안 했는데 이렇게 잘할 줄 몰랐습니다. 자유계약이 아닌 드래프트로 선발한 선수 가운데는 역대 최고죠. 우리로서는 행운인 것 같습니다.”(위성우 우리은행 감독)
여자프로농구 우리은행은 지난 시즌 통합 4연패를 달성했지만 이번 시즌 초반 고전이 예상됐다. 주전 가드 이승아가 부상으로 임의탈퇴했고, 지난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 양지희도 부상으로 1라운드를 결장해야 했다. 이승아의 빈자리를 메울 이은혜도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개막전 멤버에서 제외됐다. 지난 시즌 득점 1위 쉐키나 스트릭렌(26)을 대신해 선발한 외국인 선수 존쿠엘 존스(22)는 이번 시즌 최장신(198cm)이라는 것 외에는 별로 내세울 게 없는 미국여자프로농구(WNBA) 신인이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 보니 키만 큰 게 아니었다. 스피드도 좋고 센스도 뛰어났다. 존스는 삼성생명과의 개막전에서 22득점, 20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돌풍을 예고했다. 우리은행은 8일 안방경기에서 최근 4승 1패로 상승세를 탔던 KEB하나은행을 84-65로 완파하고 개막 12연승을 질주했다. 9연승으로 시작하며 승률 0.800(28승 7패)으로 마친 지난 시즌보다 출발이 더 좋다. 존스는 득점과 리바운드뿐 아니라 블록 슛에서도 선두를 질주하며 팀의 무패 행진에 앞장서고 있다.
팬들 사이에서 ‘무적의 JJ’로 불리는 그는 “한국 농구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저도 별 기대를 안 했습니다. 감독님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1라운드 MVP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저보다 잘하는 팀 동료들이 도와준 덕분이죠”라고 말했다.
카리브 해 바하마 출신인 존스는 선수 출신인 아버지 덕분에 다섯 살 때부터 농구를 익혔다. 8남매(2남 6녀) 중 존스만 농구를 했다. 키도 가장 크다. 고교 1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 간 존스는 농구 명문 조지워싱턴대를 졸업한 뒤 올해 WNBA 코네티컷 선스에 입단했다. WNBA는 국내 리그와 일정이 겹치지 않아 시즌이 끝난 뒤 국내에서 뛰는 선수가 많다.
“코네티컷에서 함께 뛰고 있는 스트릭렌을 통해 우리은행 얘기를 들었죠. 4년 연속 우승을 한 좋은 팀이지만 훈련이 힘들다고요…. 사실이더군요(웃음). 와서 보니 왜 이 팀이 계속 1위를 하는지 몸으로 느꼈습니다.”
우리은행 관계자들이 꼽는 존스의 최대 장점은 친화력과 인성이다. 유미예 통역은 “한국에 처음 왔는데도 숙소 음식을 잘 먹는다. 일상생활에서도 까다로운 면이 없다. 훈련 때도 즐겁고 좋은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고 전했다. 정장훈 사무국장은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위 감독의 지시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인다. 자신보다 팀을 먼저 생각하는 선수”라고 말했다.
존스는 리바운드 1위가 되고 싶다고 했다. 득점왕은 욕심이 없느냐는 질문에 그는 “우리 팀에는 슛이 좋은 선수가 많다. 득점은 그 선수들이 많이 해주면 된다. 골밑에서 열심히 리바운드를 잡는 게 나의 가장 큰 역할”이라고 말했다. 위 감독은 “승부욕이 강한 존스가 처음에는 3점 슛도 쏘려고 했다. 못 하게 하니 실망하는 눈치였는데 금세 받아들인 것 같다”고 말했다.
과거 국내에서 뛰었던 WNBA 스타 선수 중 일부는 자신의 스타일만 고집해 동료들과 불화를 겪었다. 그 대신 신체 조건과 발전 가능성을 보고 영입해 ‘한국형 외국인 선수’로 키워 재미를 본 구단이 많았다. ‘굴러온 복덩이’ 존스도 그런 길을 가고 있다.
“처음에는 훈련이 너무 강해 당황했죠. 감독님이 나만 혼낸다는 생각도 했고요. 이제는 감독님이 원하는 게 뭔지 알 것 같고, 그 구상에 최대한 맞추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더 쉬게 해주면 좋겠지만 그래도 지금 한국 생활은 100점 만점에 95점일 정도로 정말 행복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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