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펜싱 탁구… 태원이네 집은 ‘작은 태릉선수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10일 03시 00분


[토요일에 만난 사람]경기 화성에 가면 ‘스포츠 6남매’가 산다

‘스포츠 다둥이 가족’ 6남매 가운데 3명은 ‘탁구 명문’ 군포 화산초등학교에서 탁구를 한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넷째 김태림(5학년), 다섯째 태민(3학년), 화산초 윤지혜 코치, 여섯째 태빈(1학년). 골프를 하는 첫째 태원과 둘째 태란, 펜싱을 하는 셋째 석주는 학교가 달라 함께하지 못했다. 태민이는 최근 헝가리에서 열린 국제대회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따 ‘국내 최연소 국제대회 탁구 메달리스트’가 됐다. 군포=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스포츠 다둥이 가족’ 6남매 가운데 3명은 ‘탁구 명문’ 군포 화산초등학교에서 탁구를 한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넷째 김태림(5학년), 다섯째 태민(3학년), 화산초 윤지혜 코치, 여섯째 태빈(1학년). 골프를 하는 첫째 태원과 둘째 태란, 펜싱을 하는 셋째 석주는 학교가 달라 함께하지 못했다. 태민이는 최근 헝가리에서 열린 국제대회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따 ‘국내 최연소 국제대회 탁구 메달리스트’가 됐다. 군포=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대한민국은 아이를 낳지 않는 사회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2015년 기준 합계출산율(여성이 평생 낳을 수 있는 평균 자녀 수)은 1.23명으로 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다. 인구 제한 정책을 해 온 중국(1.67명)이나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일본(1.42명)보다도 낮다.

 이에 따라 어린 운동선수도 줄고 있다. 각 종목 스포츠 현장에서는 운동을 하는 아이가 줄어 유망주를 발굴하기 어렵다는 하소연이 많다. 아이들이 적기도 하거니와, 한 자녀 가정이 많다 보니 자식들에게 운동을 시키려는 부모 역시 줄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집은 다르다.

 요즘 보기 드물게 6남매(1남 5녀)를 둔 ‘다둥이 가족’이다. 게다가 특이하게 6남매 모두 운동선수다. 아이들만 그런 게 아니다. 아버지 김현준 씨(49)는 유도 명문 용인대에서 유도를 전공했다. 어머니 윤정은 씨(45)는 고교 때까지 핸드볼 선수였고, 대학에서 체육을 전공했다. 사람들은 이 집을 ‘작은 태릉선수촌’으로 부른다.

“자식 많아 힘들다고요? 그래서 행복”

 부부는 아는 사람의 소개로 1998년 만났다. 윤 씨는 1남 1녀 가운데 둘째, 김 씨는 2남 2녀 중 장남이었다.

 “요즘은 둘도 많다지만 저희 때만 해도 다둥이 가족이 대부분이었잖아요. 저는 어릴 때 조금 외롭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결혼하면 3명 이상 낳고 싶었는데 4남매로 자란 남편도 의외로 자식 욕심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여자 둘, 남자 둘 이렇게 네 명을 낳기로 했죠. 딸 둘 낳고 셋째로 아들을 얻었을 때만 해도 ‘아들 하나만 더 낳자’고 했는데, 다시 딸이 태어나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둘을 더 출산해 6남매가 된 거죠. 그래도 후회하지는 않았어요. 막내딸이 얼마나 예쁜데요.”(윤 씨)

 부부는 2000년 첫째 딸 태원(16·고1)을 얻었다. 이듬해 태란(15·중3), 2003년 아들 석주(13·중1), 2005년 태림(11·초5), 2007년 태민(9·초3), 2009년 태빈(7·초1)이 태어났다. 첫째와 둘째 딸만 연년생이고 모두 두 살 터울이다. 연년생 두 딸은 골프, 아들 석주는 펜싱, 그리고 넷째부터 막내딸까지 3명은 탁구를 한다.

 “딸 둘을 낳았을 때만 해도 남편과 이런 얘기를 했어요. ‘자식들 위해 희생해 봤자 나중에는 저절로 자란 줄 알고 고마움도 모른다’고. 그런데 석주를 얻은 뒤 생각이 바뀌었어요.”(윤 씨)

 석주는 오른쪽 귀가 소이증(귓바퀴의 형성 부전으로 귀에 귓불만 있고 다른 부분은 거의 없는 기형)이다. 앞서 건강한 두 딸을 얻은 터라 부모의 충격은 컸다.

 “소이증이 심한 경우 청각 기능 상실과 안면 기형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더라고요. 다행히 석주는 한쪽 귀가 기형인 것 말고 듣는 데는 문제가 없었어요. 지금 와서 보면 장애라고 할 것도 없지만 당시에는 부모 마음이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귀가 없는 것도 아니고 팔이 없는 것도 아닌데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의사 선생님이 야속해 그 앞에서 엉엉 울었어요.”(윤 씨)

 부부는 석주가 소이증을 갖고 태어난 게 마치 자신들의 잘못처럼 여겨졌다고 했다. 아이한테 미안해서라도 희생하자고 약속했다. 그게 부모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6남매가 종목을 정하면서 부부의 역할도 자연스럽게 결정됐다. 골프 교습프로 자격증이 있는 아버지 김 씨는 골프하는 자매와 펜싱을 하는 아들을 ‘전담’한다. 어머니 윤 씨가 탁구 하는 자매를 맡았다. 집(경기 화성시 장안면 석포리) 근처의 중학교에 다니는 석주를 빼고 다섯 자매가 다니는 학교는 충남 당진, 경기 동두천 군포 등에 흩어져 있다. 등하교가 가능한 범위 내에서 해당 종목 명문학교를 찾아다닌 결과다. 윤 씨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30km 넘게 운전을 하며 세 자매를 등교시킨 뒤, 아이들의 오전 수업이 끝나면 학교 인근에 있는 군포시민광장 체육관으로 이동해 탁구 훈련을 지켜본다.

 “사실 태빈이까지 탁구를 시킬 생각은 아니었는데 어린아이를 혼자 둘 수는 없잖아요. 초등학생인 언니 둘이 탁구를 하니 막내를 슬쩍 끼워 넣은 거죠(웃음). 언니 둘과 달리 탁구를 자기가 하겠다고 한 건 아니었으니까 아이 생각이 달라지면 종목을 바꿀 수도 있어요. 남편은 자기가 했던 유도를 누군가 해 주길 바라는 것 같던데 일단 기다려 봐야죠.”(윤 씨)

“시작했으니 끝을 봐야죠”

 6남매가 취미도 아닌 선수의 길을 걷게 된 데는 유도를 전공한 아버지 김 씨의 영향이 컸다.

 “운동으로 성공하고 싶었는데 가정 형편이 여의치 않았어요. 대학 졸업 뒤에는 돈부터 벌어야 했고요. 아이들이 운동을 하겠다고만 하면 제가 못 이룬 꿈을 이루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제가 선수 출신이기 때문에 공부로는 아이들을 대학에 못 보내도 운동으로는 보낼 자신이 있어요. 아이들이 잘 따라 주고 있어 다행이지요.”(김 씨)

골프를 하는 첫째 김태원(왼쪽)과 둘째 태란.
골프를 하는 첫째 김태원(왼쪽)과 둘째 태란.
 부모의 열정 덕분일까. 운동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막내를 빼곤 모두 ‘영재’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골프 자매’는 보영여중에 함께 다닐 때 중고선수권대회 우승을 비롯해 경기도학생선수권 단체전, 경기도교육감배 단체전 등에서 우승을 합작했다. 자매가 골프를 시작한 뒤 김 씨는 직접 운영하던 피트니스센터를 처분했다. 서울 강남에서도 꽤 유명했던 곳이라 돈도 많이 벌었지만 아이들 뒷바라지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레슨비와 연습장 사용료 등을 포함해 한 달에 수백만 원이 드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티칭프로 자격증을 땄고, 모교인 용인대 대학원 골프학과에 뒤늦게 입학해 석사 학위까지 받으면서 ‘골프의 이론과 실기’를 겸비했다. 선수 출신인 데다 피트니스센터에서 많은 사람을 가르쳐 본 경험이 있어 체력 훈련에도 일가견이 있다. 그는 봉사 차원에서 장애인 유도 선수를 가르치며 우수지도자상을 받기도 했다.

 “골프는 돈이 많이 드는 스포츠예요. 사업체를 접어 수입이 줄었으니 레슨비부터 아끼려고 교습프로 자격증을 땄죠. 첫째 태원이는 초등학교 때 우승을 휩쓸었어요. 태란이도 우승 경험이 있고요. 하지만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에요. 태원이가 랭킹 톱10 정도? 성적이 예전 같지 않다 보니 주위에서 ‘좋은 시설을 갖춘 연습장에서 유명한 코치에게서 훈련을 받지 못해 그렇다’는 말이 나오더라고요. 저는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돈을 들여 당장의 효과를 얻을 수도 있지만 멀리 내다보는 게 중요해요. 지금은 체력을 기르는 데 중점을 두고 있어요. 현재의 수준만 유지하면 10년 뒤에는 치고 올라갈 수 있을 겁니다. 두 딸에게 얘기하곤 해요. 우리는 지금 기호지세(호랑이를 타고 달리는 기세)다. 시작한 일이니 중도에 멈출 수는 없다고.”(김 씨)

펜싱 선수인 셋째 김석주.
펜싱 선수인 셋째 김석주.
 석주도 초등학교 때부터 ‘펜싱 영재’로 통했다. 김 씨는 “출전하는 대회마다 거의 우승을 했다. 상대할 선수가 없을 정도였다”고 기억했다. 김 씨는 아들이 자신처럼 유도를 하기를 바랐지만 격투 종목이라 소이증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축구를 시키다 눈에 띈 종목이 펜싱이다.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화성시청 펜싱부 선수들이 합숙하고 있던 게 인연이 됐다. 무엇보다 귀를 가리는 투구를 쓰는 종목이라는 게 부모와 석주의 마음에 꼭 들었다. 올해 중학생이 된 석주는 4월에 출전한 대회에서 중등부 16강에 진출했다. 1학년으로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하지만 5월에 나간 대회에서 엉덩이 근육이 파열됐다.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었고 현재 재활 중이다. 잠시 운동을 쉬는 때를 이용해 석주는 최근 귀 성형수술을 받았다. 김 씨는 “이전보다 귀 모양이 훨씬 나아졌다. 석주가 더 자신감을 가질 것 같다”라고 말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최근 부부는 큰 기쁨을 맛봤다. 11월 2일부터 6일까지 열린 국제탁구연맹(ITTF) 헝가리 주니어&커뎃오픈대회에서 다섯째 태민이가 커뎃 부문(만 15세 이하) 단체전 동메달을 딴 것. 태민이를 지도하는 군포 화산초 윤지혜 코치(33)는 “48개국에서 400명 가까운 선수가 참가한 큰 대회였다. 만 아홉 살인 태민이가 국내 최연소 국제대회 메달리스트가 된 것”이라고 말했다.

 선수 시절 ‘얼짱’으로 유명했던 윤 코치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국가대표로 출전했던 실력파다. 그녀는 “현지에서 기자들이 태민이에게 큰 관심을 보였다. 처음에는 귀여워서, 나중에는 실력이 너무 좋아서. 한 폴란드 코치는 ‘발전 가능성이 많다. 전지훈련을 오면 도와 주겠다’는 말도 했다. 이번에는 태민이가 출전했지만 내년 2월 체코 대회에는 언니 태림이에게도 기회를 줄 생각”이라고 말했다.

 태림이가 탁구를 시작한 것은 배우 하지원 주연의 남북 탁구단일팀 얘기를 다룬 영화 ‘코리아’를 본 게 계기가 됐다. 윤 씨는 “2학년 때 영화를 보고 나더니 탁구를 배우고 싶다고 졸랐다. 동네 탁구장을 한 달 정도 보내다가 윤 코치님이 있는 군포 화산초로 전학을 왔다. 언니가 탁구를 하다 보니 태민이도 자연스럽게 탁구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태민이는 11월 27일 막을 내린 전국 초등학교 우수선수 초청 대회에서도 3학년부 정상에 올랐다.

 김 씨와 윤 씨는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더라”라고 했다. 아이들이 열심히 하다 보니 주위에서 예상치 않은 도움도 주고, 윤 코치 같은 실력 있고 헌신적인 지도자를 만나게 됐다는 것.

 “예전에 피트니스센터를 운영할 때는 여유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만둔 상태라 여섯 명 뒷바라지를 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부담이 되는 건 사실이에요. ‘돈도 많지 않은데 무슨 골프를 시키느냐’는 말도 들었죠. 하지만 노력하면 길이 생기더라고요. 태원이는 벌써 3년째 최경주재단에서 적극적으로 후원해 주고 있고, 태란이도 최근 초록우산재단의 지원 대상으로 선정됐어요. 또한 석주는 화성시, 탁구를 하는 세 딸은 군포시에서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주고 있어요. 다른 아이들처럼 비용이 많이 드는 해외 전지훈련 같은 건 못 보내 미안하지만 여러분이 도와주시고, 나도 내 나름대로 효과적으로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만간 결실을 볼 거라고 믿어요.”(김 씨)

 “어떡하다 아이들을 여섯이나 낳았느냐, 여유가 많은 것도 아닌데 운동까지 시키는 건 무리 아니냐는 얘기를 가끔 들어요. 돈보다 중요한 건 아이들과 저희의 마음가짐 아닐까요. 부자는 아니라도 제대로 뒷바라지할 정도는 돼요. 사업으로 성공하신 아이들의 고모도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해 주고 계시니까요. 해 보지도 않고 걱정하고 고민하면 결국 아무것도 못 해요. 일단 시작하면 길이 보이더라고요. 그 길이 아니면 다른 길도 생기고요. 아이들 모두 건강하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크고 있어 운동 시킨 보람은 충분히 느껴요. 이것만 해도 많이 낳은 덕분에 행복한 거 아닌가요.”(윤 씨)

군포=이승건 기자 why@donga.com
#스포츠 6남매#다둥이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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