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아빠’께 바친 황금빛 트로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13일 03시 00분


KLPGA 신인상 이정은의 보은
부친, 딸 네살 때 사고로 하반신 마비
장애인용 승합차 사서 기사 역할하고 어려운 형편에도 헌신적 뒷바라지
“조금이나마 기쁘게 해드린것 같아요”

이정은(왼쪽)이 6일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받은 뒤 아버지 이정호 씨(가운데), 어머니 주은진 씨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이정은(왼쪽)이 6일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받은 뒤 아버지 이정호 씨(가운데), 어머니 주은진 씨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휠체어에 탄 아버지는 딸이 건넨 황금빛 트로피를 받으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지난주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받은 이정은(20·한국체대)은 영광을 아버지 이정호 씨(52)에게 돌렸다.

 이정은은 “고생하신 부모님을 조금이나마 기쁘게 해드린 것 같다. 골프가 힘들고 쉬고 싶을 때 아빠 생각을 하면 정신이 번쩍 들었다”며 고마워했다. 지난해 광주 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최초로 골프 2관왕을 차지한 이정은은 올해 KLPGA투어에 데뷔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최고 신인의 영광을 안았다. 28개 대회에서 7차례 ‘톱10’에 들며 상금 랭킹 24위(2억5765만 원)에 올랐다. 평균 타수는 13위(71.68타)였다. 장타에 정확성을 겸비했다는 평가를 들었다.

 이런 활약은 불편한 몸에도 뒷바라지해 준 아버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아버지 이 씨는 이정은이 네 살 때 25t 덤프트럭 기사로 일하다 30m 아래 낭떠러지로 추락하는 사고를 당해 하반신이 마비됐다. 어려운 상황에서 생계를 꾸려 나가면서도 이 씨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우연히 골프를 접한 딸에게 온갖 정성을 기울였다. 어머니 주은진 씨(46)는 “레슨 프로인 지인의 배려로 태권도 교습료보다 3만 원만 더 내고 골프를 배웠다. 집안이 어려운 줄 알고 정은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골프를 관뒀는데 중2 때 학교 클럽 활동을 하면서 다시 골프와 인연을 맺었다”고 말했다.

 이정은은 경비를 아끼느라 골프장 연습라운드도 제대로 할 수 없었지만 고교 시절 대표팀에 뽑히며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 아버지는 손으로 조작이 가능한 장애인용 승합차를 구입해 대회 때마다 딸의 전담 기사를 맡았다. 하지만 정작 대회장에서는 딸에게 부담을 줄까 봐 주차장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많았다. 이정은을 지도하는 박영민 한국체대 교수는 “정은이가 일찍 철이 들어 그런지 정신력이 강하고 자기 관리가 철저하다”고 말했다.

 이정은은 “올해 받은 상금은 전남 순천에 사시던 부모님이 경기 용인에 전셋집을 구하는 데 보태고, 아버지한테 전동 휠체어도 사드렸다”며 “새 시즌에 더 잘해서 더 많은 보답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정은은 16일 중국에서 개막하는 KLPGA투어 시즌 개막전인 현대차 중국여자오픈에 출전한다.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골프#한국여자프로골프#klpga#이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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