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깐한 감독-악동 선수 “우리 궁합 괜찮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30일 03시 00분


모비스 유재학 감독과 찰스 로드

유재학 감독 “이렇게 웃은 게 처음이야” 덩크슛 후 펼치는 자신만의 세리머니 포즈를 선보인 모비스 찰스 로드(오른쪽)와 웃음이 터진 유재학 감독. 로드는 사진 촬영을 위해 라커룸에 들어서면서 “감독님이 웃으시면 나도 웃겠다”고 말했고 유 감독은 “사진 찍으면서 이렇게 웃은 게 처음인 것 같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울산=임보미 기자 bom@donga.com
유재학 감독 “이렇게 웃은 게 처음이야” 덩크슛 후 펼치는 자신만의 세리머니 포즈를 선보인 모비스 찰스 로드(오른쪽)와 웃음이 터진 유재학 감독. 로드는 사진 촬영을 위해 라커룸에 들어서면서 “감독님이 웃으시면 나도 웃겠다”고 말했고 유 감독은 “사진 찍으면서 이렇게 웃은 게 처음인 것 같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울산=임보미 기자 bom@donga.com
 엄격하기로 유명한 모비스 유재학 감독(53)과 악동으로 소문난 찰스 로드(31)의 만남은 올 시즌 프로농구 시작 전부터 큰 화제였다. ‘훈련에 게으르다’는 로드와 지독한 연습으로 유명한 모비스의 궁합이 잘 맞을지는 의문이었다.

 일본 전지훈련 때부터 사고가 터졌다. 로드는 약속된 팀 출발 시간에 10분 늦게 나타나 태연하게 버스에 올랐다. 그러자 유 감독은 그날 훈련과 시범경기 내내 로드를 벤치에 내버려 두었다. 유 감독은 “단체생활에서 시간 약속은 중요하다. (팀을 떠날) 비행기표를 사 놓으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모비스 관계자는 진짜로 한국행 비행기표를 끊었고 로드는 자신의 한국행이 예정된 날 동료 선수들에게 작별 인사까지 건넸을 정도로 분위기가 심각했다. 하지만 로드가 진심 어린 사과를 하면서 사건은 일단락됐다.

 이후로도 한동안 유 감독은 로드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했다. 로드는 개막 직전까지 경기 할 몸을 안 만들어 놓고도 “나는 시즌을 치르면 나아진다”고 큰소리쳤다. 27일 동부전을 앞두고 울산동천체육관에서 만난 유 감독은 “시즌 전에 그 말을 어떻게 믿나. 그런데 진짜 그렇게 되더라”며 웃었다. 라운드가 거듭될수록 물오른 경기력을 보이고 있는 로드는 현재 6경기 연속 25득점-10리바운드 이상을 기록 중이다. 시즌 평균 기록(평균 24.8득점, 11.5리바운드)도 한국에서 뛴 6시즌 중 가장 좋다.

 유 감독은 훈련 때 움직임이 조금이라도 만족스럽지 않으면 완벽해질 때까지 같은 패턴을 반복시키곤 한다. 하지만 로드는 “무슨 말인지 알았으니 경기 때 그렇게 하겠다”고 한다. 유 감독은 “우리 팀 선수들이 다 꾀 안 부리고 열심히 연습하니 로드도 동화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적인 생각을 가지고 뽑았다. 그런데 내가 잘못 생각했다. 로드의 스타일이 있다. 연습 때 쏟을 힘을 비축했다가 경기 때 쓰겠다는 식이다. 처음에는 뭐라고 했지만 안 통하더라. 그래서 내가 바꿨다”고 말했다.

 로드도 지각 사건 이후 말썽 없이 팀의 모든 규칙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그는 매일 오전 8시 동료들과 함께하는 아침식사 시간을 가장 좋아한다. 모비스는 시즌 초 양동근과 단신 외국인 선수 네이트 밀러가 연이은 부상으로 빠지며 고전했다. 하지만 로드는 밀러 대신 일시대체선수로 왔던 마커스 블레이클리와 뛰며 자신감을 완벽히 되찾았다. 유 감독 역시 “흥이 나면 무서운 선수다. 요즘 경기 중에 다운된 적이 없다. 오히려 너무 욕심을 내 문제”라고 했다.

 유일한 걱정은 여전히 부족한 ‘팀플레이’ 능력이다. 유 감독은 “자신에게 수비가 많이 붙으면 로드가 외곽으로 적절히 공을 빼줘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된다. 동료들이 중간 중간 감 잡을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로드 혼자 득점을 많이 해도 경기는 지고 다른 선수들은 아무것도 안 한 것처럼 돼 버릴 때도 있다”고 말했다. 유 감독은 “개인적으로 불러서 말하면 본인도 ‘어리석은 플레이였다’고 인정한다. 알면서 왜 계속 그러냐고 하면 자기도 막 웃는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덩크슛 성공 후 펼치는 로드 특유의 세리머니를 볼 때도 유 감독은 “그 짓 할 시간에 빨리 수비하러 가라”고 한소리하곤 한다. 하지만 언제든지 반전의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통쾌한 덩크는 로드를 결코 미워할 수 없게 만든다.

 우려와 달리 유 감독과 함께 좋은 결과를 내고 있는 로드는 “나를 잡아줄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했다. 나도 감독님 스타일이 좋다”고 했다. “라스베이거스 드래프트 때 문 열고 들어가는 순간 감독님과 눈이 마주쳤다. 모비스가 날 뽑을 줄 알았다. 내가 필요한 팀이었다”며 넉살을 떤 로드는 “리그 최고 가드인 양동근과 함께 뛸 수 있다는 것도 기뻤다. 양동근도 그렇게 생각했을진 모르겠지만 나는 양동근과 뛰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신인 이종현에 대한 기대를 묻자 “이미 양동근, 함지훈과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멋진 경기를 펼칠 수 있다. 빅 리(Big Lee·이종현의 별명)까지 오는 건 보너스”라며 자신감을 숨기지 않았다.

 모비스의 강도 높은 훈련 분위기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로드는 “비시즌 훈련이 정말 엄청났다. 하지만 익숙해지려고 노력했다. 도전적이었지만 어찌 됐든 다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일 아닌가. 난 도전을 아주 좋아하는 선수”라고 했다.

 하지만 울산의 외딴곳에 있는 숙소 생활은 여전히 고통스럽다고 털어놓았다. “맥도날드 배달도 안 되는 곳이다. 모비스가 이곳에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숙소를 지은 것 같다. 정말 아무것도 못하는 깡촌이다.(웃음)”
 
울산=임보미 기자 bom@donga.com
#유재학#모비스#찰스 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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