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반위 韓美커플, 평창서 꽃 피우리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3일 03시 00분


불모지 페어스케이팅서 올림픽 꿈 키우는 지민지-레프테리스

페어스케이팅에서 호흡을 맞추고 있는 지민지(오른쪽)와 테미스토클레스 레프테리스는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페어스케이팅 종목에서 한국 최초의 올림픽 출전을 노리는 지민지는 “2017년은 올림픽을 향한 노력이 결실을 보는 해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민지 제공
페어스케이팅에서 호흡을 맞추고 있는 지민지(오른쪽)와 테미스토클레스 레프테리스는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페어스케이팅 종목에서 한국 최초의 올림픽 출전을 노리는 지민지는 “2017년은 올림픽을 향한 노력이 결실을 보는 해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민지 제공
 공중에서 회전을 마치고 착지를 하다 중심을 잃은 그는 빙판 위에 크게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러나 그는 절대 웃음을 잃는 법이 없다. 파트너와 다시 손을 잡고 난도가 높은 기술을 성공시키고는 더 크게 웃으며 말한다. “공포가 짜릿함으로 바뀌는 순간이에요. 제가 페어스케이팅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죠.”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출전을 위해 묵묵히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페어스케이팅 지민지(18·창문여고)의 말이다. 그는 테미스토클레스 레프테리스(35·미국·귀화 추진 중)와 조를 이루어 활동하고 있다. 한국 피겨에서 페어스케이팅은 ‘불모지’나 다름없다. 국내 선수층이 얇은 탓에 남녀로 구성되는 팀을 만들기 어렵고, 전문 지도자도 찾기 힘들기 때문. 2003년 동계체육대회 이후 국내에서 자취를 감췄다 2015년에 부활한 페어스케이팅은 팬들에게도 낯선 종목이다. 그러나 지민지는 자신이 평창 올림픽을 향하는 모든 과정이 국내에 페어스케이팅을 알리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팬들이 없어서 서운할 때도 있어요. 하지만 2017년에는 한국에 페어스케이팅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습니다.”

○ 소녀와 베테랑의 만남

평창 겨울올림픽 출전을 위해 의기투합한 남나리 코치(왼쪽)와 테미스토클레스 레프테리스(가운데), 지민지. 지민지 제공
평창 겨울올림픽 출전을 위해 의기투합한 남나리 코치(왼쪽)와 테미스토클레스 레프테리스(가운데), 지민지. 지민지 제공
 피겨스케이팅 싱글 선수였던 지민지는 페어로 종목을 바꾼 뒤 2015년 6월부터 레프테리스와 함께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갔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훈련 중인 그는 1일 전화 인터뷰에서 “국내에서 페어팀 구성은 어려웠다. 한국인 최초로 올림픽에 출전한 페어스케이팅 선수가 되고 싶어 종목 변경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남자 선수가 여자 선수를 높이 던지거나 머리 위에서 돌리는 것을 보고 무섭겠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 몸에 매달리는 것과, 아버지가 가벼운 나를 공중으로 살짝 던져주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웃었다.

 지민지는 자신의 싱글 지도자였던 이혜경 코치를 통해 레프테리스를 만났다. 이 코치는 “과거 미국에서 훈련할 때 친분을 쌓았던 레프테리스와 남나리 코치가 떠올라 팀 구성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15세 때부터 페어 선수 생활을 한 레프테리스는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남나리와 콤비를 이뤘다. 1999년 전미피겨스케이팅선수권 여자 싱글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재미교포 ‘은반요정’ 남나리는 2006년 페어로 전향했지만 부상 등으로 인해 2008년 은퇴했다. 이 때문에 레프테리스는 남나리와의 올림픽 출전의 꿈을 접어야 했다. 레프테리스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남나리와 함께 지도자 생활을 하다가 민지 측의 제안을 받고 다시 한번 도전을 시작했다”면서 “처음에는 페어 경력이 없는 민지의 실력에 의심을 품었지만 놀라운 성장 속도를 보고 믿음을 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레프테리스는 지민지의 파트너로 현역 선수 생활을 재개했고, 남 코치는 이 코치와 함께 지민지 조의 코치로 활동하게 됐다. 17세의 나이 차가 있지만 ‘베테랑’ 레프테리스의 경험과 ‘신예’ 지민지의 대담함은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지민지는 “레프테리스에게 많은 기술을 배우고 있다. 내가 레프테리스에 비해 부족한 것이 많기 때문에 항상 2, 3시간씩 더 연습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 평창 향하는 ‘환상의 짝꿍’

 지민지는 레프테리스와 한 팀으로 활동한 지 1년 6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성장 속도는 빠르다. 지민지 조는 지난해 국내에서 열린 전국남녀종별선수권 등을 석권했고, 국제대회인 2016 국제빙상경기연맹(ISU) 롬바르디아트로피 6위, 골든스핀 오브 자그레브 7위 등을 달성했다. 이 코치는 “골든스핀 대회에서는 5, 6년간 한솥밥을 먹은 선수들과 싸워 경쟁력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두 선수 간의 호흡이 빠르게 맞아 가고 있다”고 말했다.

 페어는 남녀 선수 간의 호흡이 가장 중요하다. 세계적 선수들도 성격과 훈련 방식의 차이로 해체하는 일도 있다. 이 때문에 지민지와 레프테리스는 서로의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지민지는 “레프테리스와 원활히 소통하기 위해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 페어는 항상 붙어 있다 보니 서로 감정 상하는 일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레프테리스는 한국 음식 애호가다. 지민지는 “미국인인데도 한국 음식을 아주 좋아한다. 특히 떡볶이와 순두부찌개를 좋아한다”며 웃었다. 한국어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는 레프테리스는 최근 지인들에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새해 인사를 건네면서 ‘해피 뉴 이어’라고 한글로 적었다고 한다. 현재 레프테리스는 평창 올림픽에서 한국 대표로 나서기 위해 특별 귀화 절차를 밟고 있다.

 지민지 조가 평창 올림픽에 자력으로 출전하기 위해서는 3월 핀란드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에서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는 것이 급선무다. 레프테리스는 세계선수권 이전에 한국 국적 취득을 추진 중이다.

 세계선수권에는 16장의 올림픽 출전권이 배정돼 있는데 2위 내에 입상하면 국가별로 3장(3개 조), 10위 내에 들면 2장의 출전권을 획득한다. 세계선수권에서 출전권을 따지 못하면 ISU에서 지정하는 국제 시니어 대회에서 출전권을 획득해야 한다. 지민지는 “올해에는 모든 연습 순간마다 올림픽 무대에 서 있다고 생각하고 간절하게 준비할 것이다. 2017년은 생애 가장 바쁜 한 해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정윤철기자 trigger@donga.com
#페어스케이팅#지민지#레프테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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