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스케이팅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에 피겨의 묘미를 알린 선수는 ‘피겨 여왕’ 김연아(27)다. 김연아는 2014 소치 겨울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은퇴했기 때문에 한국에서 열리는 2018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여왕의 모습을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김연아를 보며 피겨 선수의 꿈을 키운 ‘김연아 키즈’가 평창 올림픽에서 새로운 주인공으로 우뚝 설 준비를 하고 있다. 남녀 싱글과 페어스케이팅, 아이스댄스 등 전 종목 출전을 노리는 선수들은 올해 열리는 세계선수권 등에서 올림픽 출전권을 따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샛별’과 ‘원조 남자 김연아’
남자 싱글에서는 ‘샛별’ 차준환(16)과 김진서(21)가 선의의 경쟁을 펼치면서 기량이 함께 상승하고 있다. 지난달 8일 강원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끝난 전국 남녀 피겨 종합선수권대회 남자 싱글 1그룹 경기에서는 차준환이 총점 238.07점을 획득해 김진서(2위·총점 216.16점)를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차준환은 기본 점수가 10.5점에 달하는 ‘필살기’ 쿼드러플(4회전) 살코(스케이트 날을 사용해 뛰는 점프 기술 중 하나)의 완성도를 높인 덕분에 고득점이 가능한 선수가 됐다. 이번 시즌에 주니어 무대에 나서고 있는 차준환이 시니어 무대와 평창 올림픽에서 세계적 선수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성공시킬 수 있는 쿼드러플 점프의 종류와 횟수를 늘릴 필요가 있다. 차준환은 “평창 올림픽까지 남은 기간에 점프를 포함한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높이고 실수를 줄이는 데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차준환의 빠른 성장세는 ‘원조 남자 김연아’로 불린 김진서에게 자극이 되고 있다. 그동안 실전에서 쿼드러플 점프를 성공하지 못해 마음고생을 했던 그는 피겨 종합선수권대회에서 자신의 공식 대회 첫 쿼드러플 토루프를 성공시켰다. 그는 “차준환이 국제 대회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 선배로서 기쁘고 기특하다”면서도 “(차준환의) 성장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다. 차준환을 보면서 나도 더 열심히 연습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포스트 김연아’ 꿈꾸며
역대 최고의 여자 피겨스케이팅 선수라 할 수 있는 김연아를 롤 모델로 삼은 선수들의 성장과 활약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다. ‘포스트 김연아’의 선두 주자로 꼽히는 선수는 박소연(20)이다. 그는 2014년 세계선수권에서 176.61점을 기록해 한국 선수로는 김연아 이후 처음으로 국제빙상경기연맹(ISU) 공인 대회에서 총점 170점을 돌파했다. 지난해에는 ISU 4대륙 피겨선수권에서 4위에 올랐다. 2009년 이 대회에서 우승한 김연아 이후 한국 선수가 기록한 대회 최고 성적이다. 그러나 박소연은 최근 발목 부상으로 실전에 많이 나서지 못했다. 박소연에게는 평창 올림픽까지 남은 기간 부상을 완벽히 치료하고, 경기 감각을 회복하는 것이 숙제로 남아 있다.
올해 피겨 종합선수권대회 여자 싱글 1그룹에서 3위를 차지한 김나현(17)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대회 한 달 전부터 오른쪽 발목 통증으로 고생하면서도 진통제를 먹고 종합선수권대회에 출전해 입상했다. 당시 쇼트프로그램 경기가 끝난 후 굵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던 그는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대회에서 만족스러운 성과를 거뒀다. 좋은 성적을 낸 만큼 더욱 훈련에 매진해 평창 올림픽을 향한 꿈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평창 수놓을 은반 커플
혼성 경기인 페어스케이팅과 아이스댄스 선수들도 평창 올림픽 출전을 위해 묵묵히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페어스케이팅은 지민지(18)와 테미스토클레스 레프테리스(35·미국·귀화 추진 중)가 선두 주자다. 과거 싱글 선수 생활을 했던 지민지는 한국 최초로 올림픽에 출전한 페어스케이팅 선수가 되기 위해 과감히 종목을 바꿔 과거 재미교포 남나리와 함께 페어스케이팅 선수로 뛴 경력이 있는 레프테리스와 한 조를 이뤘다.
지민지는 “평창 올림픽에서 한국에 페어스케이팅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아이스댄스에서는 민유라(22)와 알렉산더 개믈린(24·미국·귀화 추진 중)을 주목할 만하다. 2015년 6월부터 함께 활동 중인 이들은 빠른 성장세를 바탕으로 피겨 종합선수권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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