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게 멋진 가장으로 기억되고 싶다 한물갔다 소리 들으면서 뛰지는 않을 것 2002월드컵이 전환점…간절함 깨달아 亞 챔스리그 없으니 ‘더블’ 달성 해야죠
걸음걸음, 공격 포인트 하나하나가 곧 한국프로축구의 역사다.
2017시즌 K리그 클래식(1부리그)을 대표하는 최고의 골잡이 이동국(38·전북현대)의 도전은 과거형이 아닌 현재진행형이다. “가장 잘하고, 가장 좋아하는 일로 주변에 행복을 안겨 주고, 많은 이들로부터 박수를 받는 직업이 세상에 얼마나 되겠느냐”는 것이 베테랑 스트라이커의 얘기다.
새 시즌 이동국은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개인통산 200골에 도전한다. 2012년 우성용(116골)의 기록을 깨고, 통산 득점을 192골로 늘렸다. 8골만 추가하면 대망의 200골이다. 2009년 전북에 입단한 뒤로 꾸준히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린 터라 기록 달성은 시간문제다. 여기에 70골-70도움 클럽 가입도 목전에 두고 있다. 4개를 더하면 통산 70어시스트다.
최근 전북 완주군의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이동국은 “단순히 나이가 많아 못 뛴다는 평가를 받지 않겠다. 나이 먹고 한물갔다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라도 더욱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동국의 2017시즌은 어떻게 다가올까.
● 이동국의 이동국
-무엇을 위해 뛰고 있나.
“(주저 없이) 가족이다. 나만 바라보던 시간은 아주 오래 전의 기억이다. 아이들이 이제야 아빠가 축구선수라는 것을 알았다.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 아이들에게 훌륭한 아빠, 멋진 가장으로 기억되려고 한다.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을 하며 명예와 부를 얻었다. 과거 어른들이 ‘돈을 좇지 말고, 돈이 따르도록 만들라’는 말씀을 하셨다. 전부 옳다. 한때 많은 돈을 얻으려고 뛴 적도 있었다. 축구를 하는 진짜 목적과 방향을 잃었던 시기다. 다행히 그리 길진 않았다. 단순히 돈에 얽매여 무리하게 뭔가를 더 이루려는 생각은 오래 전에 버렸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다.
“도저히 안 되겠다는 판단이 선다면 과감히 떠날 것이다. 전북과 최강희 감독님께 짐이 되고 싶지 않다. 어쩔 수 없이, 마지못해 나를 끌고 가야 한다는 상황은 상상조차 하기 싫다. 제2의 인생도 물론 고민 중이다. (은퇴의) 시간이 성큼 다가왔음은 틀림없다. 그래도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해 공을 들이고, 노력한 만큼만 하면 세상 어떤 일도 해낼 수 있다고 자신한다.”
-몸은 괜찮은가.
“코칭스태프와 동료들의 배려도 있겠지만, 아직까지 힘에 부친다는 느낌은 받은 적이 없다. 큰 부상도 없을 뿐더러 어지간한 잔부상은 참고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 됐다. 어리다면 몸을 고쳐 쓸 수 있지만, 나는 포기하고 버려야 하니까(웃음). 아주 나빠지지 않는다면 참고 뛰는 내성도 생겼다.”
-이렇게 롱런할 줄 예상했는지.
“2002한·일월드컵 출전 불발, 상무에서의 군 복무가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만약 월드컵 4강을 경험했다면 정신적으로 아주 나약해졌을 것이다. 나태해졌을 것이고, 축구를 진심으로 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간절함도 몰랐겠지. 아쉬움이 아주 없진 않아도 인생 전체를 봐선 큰 교훈이 됐다. 그 시련과 쓰라림이 내게는 보약이었다.”
-올해의 목표는 무엇인가.
“당장 축구화를 벗어도 이상하지 않은 시점이긴 하다. 그런데 그라운드에 있을 때 상대 수비수에게 ‘이 아저씨는 왜 안 늙었지?’라는 인상을 주고 싶다. ‘역시 이동국’이라는 찬사를 받도록, 또 최근 안 좋은 일로 이미지에 흠집이 난 전북이 다시금 전국구 클럽으로 일어서는 데 일조할 책무가 내게는 있다.”
● 이동국의 전북
-올해 전북의 목표는 무엇인지.
“우리에게는 아주 중요한 시간이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하지 않게 되면서 정신없이 경기에 쫓기던 최근 수년간의 생활에서 벗어나 여유가 생겼다. 그리 바쁘지 않은, 아주 평범한 시즌에 적응하는 것도 우리로선 큰 도전이다. 정규리그는 물론 그간 잊고 있던 FA컵 타이틀도 가져와야 한다. 전북에서 FA컵 준우승만 4번 했다. 지난해 이루지 못한 국내 ‘더블(2관왕)’ 달성도 목표로 삼아봐야 하지 않겠나.”
-팀 컬러가 달라질 텐데.
“우리 모두는 개개인의 장점이 뚜렷하다. 한 번 불이 붙으면 멈출 수 없다는 의미다. 보강된 측면이 특히 기대된다. 공격 루트가 굉장히 늘어났다. 예전처럼 선 굵은 축구를 바탕으로 힘으로 파괴할 수 있고, 중앙에서 아기자기하게 풀어갈 수도 있다. 측면에서 시작될 아주 단순하지만 효율적인 플레이도 좋은 옵션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는 더 강해질 수 있다.”
-예전과 다른 패턴의 시즌이 어떻게 작용할까.
“선수들은 최대한 유쾌하게 생활하고 있다. 클럽하우스에서 무겁고 진지한 이야기는 거의 없다. 오히려 ‘많이 쉴 수 있어서 좋다’는 농담도 많이 나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한 경기 한 경기가 더 소중해졌다. 쉬어갈 틈도 없고, 그럴 수도 없으니. 당연히 우리는 주중∼주말∼주중으로 계속되는 시기에 힘을 발휘할 것이다. 5∼6월 일정이 빡빡한데, 전북이 공 들여 구축한 ‘더블 스쿼드’의 진가가 드러나는 시점으로 예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