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은 최악의 참사로 남게 됐다. 그러나 마지막 자존심만은 지켜야 한다. 9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리는 1라운드 마지막 경기, 대만전은 명예 차원을 넘어서 반드시 승리해야만 한다. 대만전 패배는 2021년 5회 대회에서 한국을 본선직행이 아닌, 지역예선으로 몰아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만전 선발투수는 대표팀 원투펀치 중 한 명인 양현종(29·KIA)이다. 사실 김인식 감독 등 코칭스태프는 1라운드에서 안정적인 ‘2승 전략’을 선택했다. A조 최강으로 평가받던 네덜란드전은 접어두고, 이스라엘과 대만에 승리를 얻어 2라운드 일본 도쿄행을 확정짓겠다는 계산이었다. 가장 믿을 수 있는 선발투수 장원준과 양현종을 나란히 이스라엘, 대만전에 배치한 이유다. 물론 이스라엘전에서 졸전 끝에 패배하며 계산은 완전히 어그러졌다.
양현종으로서도 자존심이 달려있는 경기다. 이번 WBC를 제외하면, 국제대회 참가는 2010광저우아시안게임과 2014인천아시안게임이 전부였다. 2015 프리미어12 등 굵직한 대회를 앞두고 몸 상태가 좋지 않아 합류가 불발되는 불운이 있었다.
양현종 스스로도 WBC에 대한 의욕이 강했다. 나라의 부름에 응답하지 못했다는 책임감에 이번 대회를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했다. 예년보다 한 달 가량 일찍 몸을 만들면서 ‘슬로 스타터’라는 주변의 우려를 지우기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대만 상대로 잘 던져야 할 이유도 있다. 양현종은 인천아시안게임에서 두 차례 대만을 상대했다. 대만과의 예선 2차전에 선발등판해 4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했지만, 결승에서 대만과 다시 만났을 때 중간계투로 나와 아웃카운트를 잡지 못하고 강판됐다. 2-3으로 역전된 7회말 등판해 2루타와 안타를 연거푸 맞고 무사 1·3루에서 마운드를 내려와야 했다. 후속투수가 실점을 막았지만, 양현종으로서는 자존심이 상할만한 순간이었다.
그는 대회에 앞서 “인천아시안게임 대만전에서 다소 부진했다. 만약 WBC에서 대만과 다시 만나면, 더 좋은 공을 던지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코너에 몰린 대만도 천관위와 궈진린, 원투펀치가 함께 한국전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2패로 최악의 상황에 몰렸지만, 자존심과 차기 대회를 위해 양현종의 호투가 절실히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