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5만 관중 함성… 경기는 뜨거웠고 운동장 밖선 훈훈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8일 03시 00분


평양 남북여자축구 1 대 1 무승부

“잘 싸웠다” 한국 여자 축구대표팀 관계자들(위 사진)이 7일 북한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아시안컵
 예선 B조 북한전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응원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에 따르면 이번 대회에는 선수와 대표팀 관계자 등 51명이 
방북했다. 북한 관중 5만 명의 일방적인 응원 속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히 경기를 펼친 대표팀 선수들이 북한과 1-1로 비긴 뒤
 악수를 나누고 있다(아래 사진).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잘 싸웠다” 한국 여자 축구대표팀 관계자들(위 사진)이 7일 북한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아시안컵 예선 B조 북한전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응원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에 따르면 이번 대회에는 선수와 대표팀 관계자 등 51명이 방북했다. 북한 관중 5만 명의 일방적인 응원 속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히 경기를 펼친 대표팀 선수들이 북한과 1-1로 비긴 뒤 악수를 나누고 있다(아래 사진). 평양=사진공동취재단

경기 시작 2시간 전부터 김일성경기장 앞은 몰려드는 사람들로 산과 바다를 이루었다. 주차장은 대형버스로 가득 찼고, 북과 장구 등을 든 응원단들이 끊임없이 경기장으로 향했다. 5만의 관중석은 경기 시작 1시간 전에 이미 가득 찼다. 경기장 구역별로 같은 색깔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황금색 종이 나팔과 은색 짝짜기를 들고 있었고, 각 구역 앞에는 흰색 상의를 입은 응원단장이 자리했다.

김일성과 김정일 부자의 대형 초상화가 걸려 있는 김일성경기장에는 태극기가 게양돼 있었다. 장내 아나운서는 경기 30분 전 “관람자 여러분, 잠시 후 여기 김일성경기장에선 2018년 아시아축구련맹 녀자아시안컵 축구대회 자격경기 2조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녀자축구 경기가 진행되게 됩니다”라고 소개했다. 태극기에 이어 북한 국기가 등장했다. 북한 국가체육지도위원장인 최룡해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도 귀빈석에서 이 모습을 지켜봤다.

북한 선수들이 입장하자 관중은 일제히 일어나 북을 치며 황금 나팔을 입에 대고 “우리 선수 이겨라”라고 외쳤다. 애국가에 이어 북한 국가가 연주되자 주로 남성들인 5만 관중이 큰 소리로 합창을 했다. 경기 시작 전 한국 선수들이 “지지 말자”라고 외치자 북한 선수들은 “죽고 나오자”고 맞받아 소리쳤다. 이날 관중석엔 교복을 입은 북한 대학생들도 다수 있었다. 북한이 젊은 엘리트층 앞에서 그동안 금기시돼 왔던 태극기 게양과 애국가 연주를 보고 듣게 한 건 매우 이례적이다.

경기가 시작되자 관중석에서 관현악단 공연까지 했다. 엄청난 물결의 파도타기 응원이 시작됐다. ‘조선청년행진가’ ‘가리라 백두산으로’ 등의 응원가가 울려 퍼졌다. “잘 한다” “본때를 보여라” 등의 구호와 짝짜기 소리로 귀가 먹먹했고 한국 선수가 공을 잡을 때마다 야유가 나왔다. 김일성경기장은 관중석과 경기장의 간격이 좁아 소리가 더 크게 울린다. 윤덕여 감독이 이끄는 한국 대표팀은 출국하기 전 북한 응원단의 응원을 녹음한 스피커를 틀어놓고 훈련을 했다.

북한이 전반 5분 페널티킥을 얻어 냈지만 위정심이 찬 공을 한국 골키퍼 김정미가 잡아냈다. 이후 북한 선수와 김정미가 부딪치면서 양측 선수들이 단체로 맞서며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전반 추가 시간에 북한의 승향심이 선제골을 터뜨리자 경기장은 함성으로 떠나갈 듯했다.

후반 30분. 한국의 장슬기가 날린 슛이 북한 수비수를 맞고 골문으로 빨려 들어가자 한국 선수들은 일제히 펄쩍펄쩍 뛰며 환호했다. 관중은 일순간 침묵했으나 곧 “무조건 이긴다”고 소리쳤다. 한국 선수들은 경기 막판 다리에 쥐가 나고 부상으로 쓰러지면서도 버텼다. 정설빈은 왼팔을 다쳐 제대로 버틸 수 없는 상황에서도 뛰었다. 7분간이나 주어진 후반 추가 시간도 흘러 경기는 1-1로 마무리됐다. 장슬기는 “응원 소리가 커 아무 소리도 안 들릴 정도였다. 우리를 응원한다는 생각으로 뛰었다”고 말했다.

이날 23번째 생일을 맞은 한국의 이금민은 숙소인 양각도호텔에서 케이크를 선물로 받았다. 평양 시민 김대경 씨(39)는 경기 전 한국 취재진과 만나 “평양 시민들이 경기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며 “북과 남이 이번 경기를 통해 화해 협력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차가운 남북 관계 속에 27년 만에 평양에서 열린 남북 대결은 격렬했지만 한편으로는 끊을 수 없는 끈끈함을 느끼게 했다.

평양=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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