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피플] 방망이 살아난 정근우 “사는 맛 납니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4월 12일 15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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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정근우(왼쪽).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한화 정근우(왼쪽).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안타가 없었다. 수비에서도 실책이 나왔다. 나가지를 못하니 뛸 기회도 없었고, 뛰어도 살지 못했다. 엉겁결에 개막 엔트리에는 들었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그도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는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답지 않은 플레이의 연속. 그러나 모두가 ‘해주겠지’라는 믿음 속에 지켜봤다. 바로 정근우(35·한화)였기 때문이다. 결국 필요한 것은 시간과 인내였다.

한번 감을 잡자 기대대로 특유의 몰아치기가 시작됐다. 무릎 수술 후유증에서 점차 벗어나 한화의 중심축으로 다시 살아나고 있는 정근우는 “이제 좀 공이 보이기 시작한다”며 활짝 웃었다.

● 정근우답지 않았던 시즌 초반 “감이 없었다”

지난해 11월 왼쪽 무릎 관절 안쪽 반월연골 수술을 받은 그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참가하기 위해 훈련 속도를 올리다 통증이 재발하면서 모든 계획이 엉클어졌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대표팀에도 불참할 수밖에 없었고, 스프링캠프 도중 귀국으로 복귀 계획에도 차질을 빚게 됐다.

예상을 깨고 3월 31일 개막 엔트리에 들면서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러나 2군 경기 등 실전을 단 한 차례도 치르지 않은 상태에서 1군에 합류하다보니 마음과는 달리 몸이 제대로 반응하지 않았다. 첫 5경기(교체 4경기)에서는 안타 구경을 하지 못했다. 7일 광주 KIA전 3번째 타석까지 개막 후 11타수 무안타. 수비에서는 그답지 않게 실책과 실수가 터져 나왔다.

정근우는 “2군경기 한 번 안 해보고 배팅볼만 치다 1군에 들어왔더니 공이 안 보이더라”면서 20여년을 밥만 먹고 야구를 해왔지만 실전 공백을 실감했다고 털어놨다. 장점인 수비에서도 실책이 나오며 팀을 곤경에 빠뜨리기도 했다. “오랜 만에 강한 타구를 받다보니 각도와 거리감에 이상이 있었다”는 설명이었다.

● 폭발하는 안타 행진 “이제 공이 보이기 시작”

7일 광주 KIA전 마지막 타석에서 2루타를 때렸다. 시즌 첫 안타였다. 이후 불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다. 첫 2루타부터 11일 대구 삼성전까지 15타수 8안타(타율 0.533). 특히 11일 삼성전에서는 6타수 4안타를 몰아쳤다. 7-8로 뒤진 8회초에 천금의 동점 적시타를 날리더니, 연장 10회초에는 결승 적시타를 토해내며 팀의 11-8 승리를 이끌었다.

그는 “이제 공이 보이기 시작한다”며 “수비에서도 감이 잡히고 있다”며 웃었다. 테이블 세터로 주로 나서는 그는 최근 3번타순에 들어서고 있다. 이에 대해 “시즌 초반 9번, 8번 타순에 들어서니까 야구가 정말 금방 끝나버리더라. 3타석 들어서면 끝났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뒷방에 머물던 그가 앞쪽으로 나서 타순의 공기를 순환시켜주자 한화 타선 전체에 생동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 12년 연속 20도루 도전? “욕심 있지만…”

정근우는 공·수·주는 물론 센스, 투지, 열정 등 어느 하나 모자람이 없는 선수다. 무엇보다 데뷔 이듬해인 2006년 45도루를 시작으로 지난해 22도루까지 KBO리그 최초로 11년 연속 20도루 이상을 기록할 정도로 허슬플레이가 트레이드마크다.

그러나 아무래도 무릎 수술 후유증이 걱정된다. 그 역시 마찬가지다. “도루 20개는 계속 해오던 거니까 올해도 했으면 좋겠다”면서도 “그러나 ‘이제 다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무릎 상태가 지금 100% 회복됐는데, 나 스스로 100%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무릎에 트라우마가 생긴 게 사실이다”고 털어놨다.

무엇보다 스스로 느끼기에도 아직 스피드가 완전히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불만이다. 그는 “도루(9일 광주 KIA전)를 해봤는데, 스타트가 정말 좋아서 여유 있게 살 줄 알았다. 그런데 2루에서 슬라이딩을 하려고 했더니 벌써 포수 송구가 도달해 글러브가 기다리고 있더라”며 웃더니 “태어나서 무릎 수술은 처음 해봤기 때문에 과정을 잘 모르겠다. 스타트는 문제가 없는데 치고 나가는 스피드가 아직 완벽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니까 도루하다 그렇게 어이없이 아웃됐지 않았겠나. 스피드에 필요한 근육을 만드는 게 숙제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벤트레그 슬라이딩은 왼쪽 무릎을 구부리고 들어가야 하니 부담이 있다.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은 문제없다”고 설명했다.

정근우는 야구를 할 때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는 선수다. 11일 대구 삼성전 10회에 결승타를 친 뒤 다음타자 김태균의 2타점 적시타 때 홈에서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하며 쐐기 득점을 올렸다. 그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확실히 게임을 하니까 사는 맛이 난다”면서 “야구할 때가 가장 행복이다. 은퇴하면 무슨 재미로 살아갈지 모르겠다”며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었다.

대구 |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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