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스포츠에서 정신력의 상징처럼 꼽히는 인물이 1999년 8월 29일 제7회 스페인 세비야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마라톤에서 우승한 정성옥(당시 25세)이다. 정성옥은 ‘한반도 최초의 세계육상선수권대회 금메달리스트’라는 대단한 업적을 남겼다.
이런 신화 뒤엔 눈물나는 사연이 있다. 정성옥이 우승하기 전 4년 동안은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 시절이었다. 마라톤 선수들도 ‘국수죽’을 먹으며 뛰었다. 옥수수 국수를 물에 몇 시간 담그면 국수오리(면발)가 몇 배로 퉁퉁 불어나고 뚝뚝 끊어지는데, 여기에 배추 시래기를 넣고 휘휘 저으면 국수죽이 된다. 양이라도 많아 보이라고 만드는 게 국수죽이지만 당시 북한의 ‘국민음식’이었다. 체력 소모가 심한 마라톤 선수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얼핏 ‘라면소녀’로 알려진 한국 임춘애의 사연과 비슷해 보인다. 1986년 아시아경기 육상에서 금메달 세 개를 목에 걸었던 임춘애는 우승 소감으로 “라면 먹으면서 운동했고 우유 마시는 친구가 부러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나중에 본인은 그게 “말도 안 되는 오보”라고 밝혔다. 실제론 삼계탕으로 체력 보충을 했고, 대회 직전에는 뱀과 개소주를 먹었으며, 우유를 먹으면 설사를 해 마시지 못한다는 것이 본인 설명이었다.
그렇게 보면 정성옥의 환경은 임춘애와 비교조차 안 된다. 게다가 몇몇 사람만 아는 사실이지만 정성옥은 대회 출전 몇 개월 전 임신 중절 수술까지 받았다. 그는 1996년 국가대표팀에서 만난 남자 마라톤 간판 김중원과 연애 중이었다. 김중원은 정성옥이 대회에 출전하기 전 중국의 성(省)급 마라톤 경기에서 우승해 상금 8000달러를 받았다. 김중원은 자기가 받은 상금 일부에서 300달러를 떼서 애인에게 개엿과 개소주를 만들어 먹였다. 그렇다고 체력이 하루아침에 생길 리가 만무한 일이다.
정성옥은 북한 최고의 여성 마라토너도 아니었다. 그는 북한 간판선수 김창옥(당시 대회 10위)의 페이스메이커로 대회에 참가했다. 고맙게도 경기 전 코치는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뛰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그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우승을 했다.
정성옥의 지인들은 그가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죽기 살기로 뛰었다고 말했다. 황해도 해주의 지방공장에서 18년간 화물차 운전사로 일했던 그의 아버지는 대회 직전 차로 사람을 치어 사망하게 해 재판을 받게 됐다. 감옥에 가게 된 아버지를 살리려면 대회에서 무조건 1등을 해야 한다고 정성옥은 생각했던 것이다. 실제로 딸이 우승해 ‘공화국 영웅’과 ‘인민체육인’ 칭호를 받고 ‘온 국민이 따라 배워야 할 귀감’이 된 뒤 그의 부친은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영웅의 아버지가 돼 각종 매체에 출연했다.
대다수 북한 사람들에겐 정성옥이 “결승 지점에서 (김정일) 장군님이 ‘어서 오라’고 불러주는 모습이 떠올라 끝까지 힘을 냈다”는 아부의 말 한마디로 인생을 바꾼 선수로 기억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면 정성옥은 공화국 영웅이 될 수도, 5만 달러 상금 전부를 하사받을 수도, 부유층이 사는 평양 보통강구역 서장동의 호화주택과 벤츠 S500을 선물로 받았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정성옥의 성적과 임기응변 발언은 아버지도, 자신도 살렸다. “대단한 유명인이 됐으니 나 같은 건 거들떠도 안 볼 것”이라며 한숨을 쉬던 김중원도 버리지 않고 1년 반 뒤 결혼했다.
정성옥의 정신력과 물질적 성공은 지금도 북한 스포츠의 귀감이 되고 있다. 그리고 그 정신력이 가장 잘 먹혀든 분야가 바로 세계 정상급에 올라선 여자축구다. 북한은 지금까지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대회에서 4회(U-17 2회, U-20 2회)나 우승했다. 그래서 북한 여성들은 체육을 할 바엔 이왕이면 축구를 하려 한다. 그래야 우승 가능성이 있고, 우승하면 가족과 함께 평양에 살 자격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여자축구 선수들은 10대 초반부터 남자들과 함께 훈련하며 유럽 선수들에게도 밀리지 않는 체력을 쌓는다. 또 끊임없이 정성옥의 정신력을 배우라는 ‘정신교육’도 받는다.
하지만 그런 북한 선수들이 안방에서 한 수 아래로 여기던 남한에 밀려 월드컵 출전이 좌절됐다. 남한엔 ‘정성옥’도 없고, 여자축구가 국민 스포츠도 아니지만 태극 낭자들은 북한과의 경기에서 육체적으로나 정신력으로나 전혀 밀리지 않았다. 콧등이 멍들어도, 팔이 빠져도, 쥐가 나도 뛰었다. 경기 뒤 동료의 등에 업혀 나온 선수도 있었다. 북한 선수들과의 단체 몸싸움도 주저하지 않았다.
‘태양절’ 분위기에 빠진 평양에서, 김일성의 이름을 딴 경기장에서, 북한의 5만 관중 앞에서 ‘정성옥의 정신력 신화’는 그렇게 태극 낭자들에게 무너져 내렸다. 한편으론 많은 북한 선수에겐 지방의 가족을 불러올려 평양에서 살고픈 간절한 꿈이 사라진 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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