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단한 손붐, 행복한 차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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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 EPL 본머스전 골 추가해 한국인 유럽 한시즌 19골 타이
차범근 “이렇게 빨리 나를 넘다니… 내가 재조명돼서 더 큰 기쁨”

“흥민아! 네가 이렇게 빨리 (나를) 넘을 줄은 몰랐다.”

한국 축구의 전설 차범근 전 국가대표팀 감독(64·현 20세 이하 월드컵 조직위원회 부위원장)은 자신과 어깨를 나란히 한 손흥민(25·토트넘)에게 축하를 건네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가까운 미래에 후배가 자신의 기록을 뛰어넘을 것이라는 확신에 찬 듯 그는 손흥민이 이미 자신을 뛰어넘었다는 표현을 썼다. 16일 20세 이하 월드컵 트로피 공개 행사가 열린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그는 “손흥민 덕분에 잊혀졌던 내가 재조명되고 있는 것 같아 행복하다. 동양 선수가 2자리 숫자의 골을 넣는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기록이다”라고 덧붙였다.

손흥민은 15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본머스와의 2016∼2017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경기에서 전반 19분 팀의 두 번째 골을 터뜨렸다. 현지 방송 해설자는 “봄이 되자 ‘해(Sun)’가 떴고 ‘손(Son·손흥민)’이 꽃을 피웠다. ‘손샤인(Sonshine·햇살을 뜻하는 ‘Sunshine’에 손흥민을 빗댄 표현)’답다”며 극찬했다. EPL 2위 토트넘은 손흥민의 활약 속에 4-0으로 이겼다.

손흥민은 이 골로 차 전 감독이 1985∼1986시즌에 독일 분데스리가 레버쿠젠에서 작성한 한국인 선수 유럽 무대 한 시즌 최다골(19골)과 타이를 이뤘다. 손흥민은 이번 시즌에 EPL 12골, 잉글랜드 축구협회(FA)컵 6골,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1골을 기록 중이다. 토트넘은 23일 첼시와의 FA컵 4강전과 리그 6경기 등을 남겨뒀기 때문에 손흥민이 차 전 감독의 기록을 뛰어넘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차 전 감독은 당시 리그에서만 17골을 터뜨렸기 때문에 리그에서의 활약만 놓고 보면 차 전 감독의 골이 순도가 더 높다. 하지만 손흥민은 최근 리그 4경기 연속 골의 상승세를 타고 있기 때문에 남은 경기에서 차 전 감독보다 많은 리그 골을 노리는 동시에 개인 득점 톱10 진입까지 달성할 가능성이 있다. 15일까지 손흥민의 EPL 득점 순위는 공동 12위다.

차 전 감독과 손흥민은 역대 한국인 공격수 중 유럽 무대에서 가장 성공한 선수로 꼽힌다. 김대길 KBSN 해설위원은 “차 전 감독과 손흥민은 스피드와 골 결정력이 뛰어나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둘의 플레이 스타일에는 차이가 있다. 전문가들은 “몸싸움이 뛰어났던 차 전 감독은 주로 측면 공격수로 뛰었고 헤딩 능력도 있었다. 반면에 손흥민은 측면과 최전방, 처진 스트라이커 등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으며 기술이 뛰어나다”고 평가했다. 해외 축구 통계 사이트인 트란스퍼마르크트에 따르면 손흥민은 이번 시즌에 왼쪽 측면 공격수 자리에서 11골, 최전방 공격수 자리에서 7골, 공격형 미드필더 자리에서 1골을 넣었다. 차 전 감독은 손흥민이 헤딩 능력을 키운다면 더욱 완벽한 공격수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이미 손흥민은 대스타의 반열에 올랐다. 그가 제공권을 보완한다면 더 많은 골을 넣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조언했다.

차 전 감독은 33세의 나이에 한 시즌 19골을 터뜨렸지만 손흥민은 25세의 나이로 같은 기록을 세웠다. 차 전 감독은 25세 때 독일 무대에 진출했다. 손흥민이 앞으로 차 전 감독을 뛰어넘어 더 많은 기록을 세울 수 있다는 얘기다. 김 해설위원은 “차 전 감독은 개인의 노력으로 체력을 관리하며 유럽 무대를 누볐다. 손흥민은 현대 축구의 발달과 함께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관리를 받고 있기 때문에 더 많은 기록을 작성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EPL 2년 차에 선배들의 기록을 하나씩 갈아 치우고 있는 손흥민은 ‘기록 제조기’로 불리고 있다. 이날 그는 잉글랜드 무대 통산 27골을 기록해 ‘산소 탱크’ 박지성(36·은퇴)의 기록과 동률을 이뤘다. 포지션의 차이는 있지만 미드필더였던 박지성이 8시즌 동안 세운 기록을 손흥민은 2시즌 만에 달성했다. 앞서 손흥민은 기성용(28·스완지시티)이 보유했던 아시아선수 EPL 한 시즌 최다골(8골)도 뛰어넘었다. 한국인 선수 최초의 잉글랜드 무대 해트트릭과 ‘EPL 이달의 선수’ 수상도 모두 손흥민이 보유하고 있다. 이날 손흥민의 골이 터지자 아이처럼 펄쩍 뛰며 환호했던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토트넘 감독은 “손흥민이 훌륭한 활약을 펼쳤다. 그는 이제 EPL에 완벽히 적응했다”고 칭찬했다. 영국 언론은 이날 “토트넘이 손흥민과 재계약 협상에 나설 것”이라고 보도했다.
 
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유승진 채널A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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