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의 경기 전 풍경을 보다 보면, 눈에 띄는 장면들이 몇 가지 있다. 외국인감독인 트레이 힐만이 직접 배팅볼을 던지는 게 가장 이색적이지만, 지난해부터 꾸준히 관찰할 수 있는 모습이 하나 있다. 박경완 배터리코치의 ‘강훈련’이다.
경기 전이지만, 박 코치는 주로 백업포수를 데리고 맹훈련을 한다. 매일은 아니지만, 선수의 체력과 출전상황에 맞춰 훈련을 진행한다. 대부분 박 코치와 함께 훈련한 포수는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다. 나중엔 다리가 움직이지 않을 정도가 되지만, 박 코치는 “몇 개지?”라면서 끝없이 선수를 독려한다.
이렇게 탄생한 첫 번째 작품이 현재 KIA의 주전포수 김민식(28)이다. 지난해 백업포수로 처음 풀타임을 뛰면서 수비력이 일취월장했다. 주전포수 이재원(29)의 뒤를 받치는 역할이었지만, SK에서 ‘트레이드 불가 자원’으로 못 박을 정도로 애지중지 키운 포수였다.
시즌 초 SK는 그런 김민식을 떠나보내면서 4대4 대형트레이드를 단행했다. 김민식은 곧장 주전으로 성장했고, SK는 한때 KIA의 주전포수 이홍구(27)를 반대급부로 받았다. 이홍구는 이재원의 뒤를 책임지고 있지만, 김민식이 그랬던 것처럼 박 코치와 함께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하고 있다.
쌍방울에서 ‘연습생 신화’를 쓰고 KBO 최고 레전드 포수 반열에 오른 박 코치는 조범현 전 kt 감독의 ‘애제자’였다. 쌍방울 시절 조범현 코치가 박경완을 조련하기 위해 근처로 이사가 밤마다 놀이터에서 훈련을 한 전설 같은 일화가 전해질 정도다.
박 코치는 자신이 배웠던 것처럼 강도 높은 훈련으로 선수들을 가르치고 있다. 혹자는 경기 전 훈련이 많다고 지적하지만, 그 나름대로의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박 코치는 “(이)홍구는 KIA에서 거의 주전으로 뛰다 왔다. 지금은 (이)재원이가 먼저 나가기 때문에 출장시간이 줄어든 만큼, 훈련으로 그걸 메워줘야 한다. 선발출장하는 날 외에도 1~2이닝씩 맡기도록 감독님께 건의하는 것 역시 그 차원이다. 그냥 두면 선수에게 마이너스다”라고 밝혔다.
박 코치가 매일같이 훈련강도를 높이진 않는다. 이홍구가 선발출장하는 날은 주전 이재원처럼 최소한의 훈련만 소화한다. 또한 3연전 중 하루 정도 강도를 높이는 식으로 관리를 한다.
이홍구도 묵묵히 박 코치의 지도를 따르고 있다. 이적 후 연일 홈런포를 터뜨리며 방망이로 주목받았지만, 그는 손사래를 친다. 이홍구는 “코치님께서 힘들면 말씀하라고 하시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 자꾸 방망이로 주목 받기보다 포수는 수비로 보여줘야 한다. 아직 난 수비가 많이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26일 잠실 LG전을 앞두고는 다리가 풀릴 정도로 훈련을 소화했다. 블로킹 등 기본적인 수비훈련을 한 뒤, 좌우로 움직이는 훈련을 할 때엔 다리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을 정도였다. 이홍구는 “이전까진 버틴 것 같은데 오늘은 진짜 다리가 풀렸다”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KIA에 있을 땐 주전으로 나갈 때가 많으니 경기 전에 이 정도로 훈련하지 않았다”는 그는 “내가 선발출장한 날 실점이 많아 그게 제일 신경이 쓰인다. 지금 블로킹 미스는 많이 줄었다. 도루저지와 달리, 블로킹은 온전히 포수의 잘못 아닌가. 코치님이 강조하시는 부분이기도 하고, 가장 신경 쓰다보니 한 번 정도 나온 것 같다. 많이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 코치는 ‘포수 이홍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는 “처음엔 주변에서 둔하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 꼭 그렇지 않더라. 그런 이미지는 본인이 만드는 것이라고 홍구한테도 말해줬다”고 답했다. 이어 “사실 정말 곰 같다. 둔해서가 아니라, 묵묵히 운동을 열심히 하는 스타일이다. 트레이드가 본인에게 강한 동기부여가 된 것 같다. 하루에 1~2이닝만 나가더라도 그게 정말 큰 차이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홍구도 계속 준비를 시켜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 코치와 이홍구를 각각 만나 얘기하면서 또 다른 ‘스승과 제자’의 탄생이 기대됐다. 박 코치는 “사실 내 목표는 홍구를 곰 같은 여우로 만드는 거죠”라며 웃었다. 과연 이홍구가 박경완의 2번째 제자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