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이 보이는 안돼”… 빙판 반란 이끈 백지선의 ‘3P 리더십’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1일 03시 00분


男아이스하키 1부리그 첫 입성 한국대표팀 감독 용인술
Passion(열정) “믿자, 우리를 믿자”… 투지 불붙여
Practice(연습) 공포의 체력훈련으로 열세 극복
Perseverance(인내) “당신은 국가대표”… 정신력 무장
한 살때 캐나다 이민… NHL서 활약… “이젠 평창의 P 추가해 4P입니다”

등록선수 233명 불모지서 ‘꿈의 리그’로 백지선 감독이 이끄는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선수들이 4월 29일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열린 2017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세계선수권 디비전1 그룹A 우크라이나와의 경기에서 
승부치기 끝에 2-1로 승리를 거두고 2위로 월드챔피언십(1부 리그) 승격 티켓을 따낸 뒤 한데 엉켜 기뻐하고 있다. 
대한아이스하키협회 제공
등록선수 233명 불모지서 ‘꿈의 리그’로 백지선 감독이 이끄는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선수들이 4월 29일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열린 2017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세계선수권 디비전1 그룹A 우크라이나와의 경기에서 승부치기 끝에 2-1로 승리를 거두고 2위로 월드챔피언십(1부 리그) 승격 티켓을 따낸 뒤 한데 엉켜 기뻐하고 있다. 대한아이스하키협회 제공
짐 팩(한국명 백지선·50)이 한국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 감독을 맡았을 때 먼저 한 일은 라커룸에 태극기를 다는 일이었다.

2014년 4월. 남자 대표팀은 국제대회에서 잇달아 부진하며 3부 리그로 강등됐다. 투지가 떨어진 대표팀에 대해 “한마디로 도련님들만 모여 있다”는 푸념이 들려왔다. 1∼6부 리그로 나뉘어 있는 세계 아이스하키에서 한국은 3부 리그 주변을 맴돌며 패배의식에 젖어 있었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이 다가오는 상황에서 전력 강화가 시급했던 대한아이스하키협회는 해외 지도자를 영입하기로 했다. 협회의 손을 잡아준 건 동양인 최초로 아이스하키 세계 최고 무대인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우승컵인 스탠리컵을 들어 올렸던 백지선이었다. 그는 미국의 피츠버그 펭귄스에서 수비수로 뛰던 1990∼1991, 1991∼1992시즌 두 번 우승의 감격을 맛봤다. 서울에서 태어나 한 살 때 캐나다로 이민 간 그는 언젠가 한국 대표팀 감독을 맡겠다는 ‘오랜 꿈’을 좇아 한국에 왔다.

백 감독이 선수들에게 꺼낸 첫마디는 “당신은 한국 국가대표 선수입니다. 매일 국가가 최우선이라고 생각하세요”였다. 그리고 선수들이 이동할 때는 반드시 정장을 갖춰 입으라고 했다. 국가대표 선수로서의 품위도 함께 지키라는 뜻이었다.

국가대표로서의 자긍심을 일깨우는 일부터 시작한 백 감독은 이어 강렬한 투지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힘썼다. 훈련 때마다 “샤이 보이(shy boy·수줍은 소년)는 안 돼!”라고 외쳤다. 투지를 뒷받침할 체력을 기르기 위해 여름에는 스틱을 잡지 않게 했다. 5월부터 두 달 이상은 지독한 체력훈련을 했다. 또한 공포의 20m 왕복달리기로 선수들의 체력을 측정했다.

체력과 정신력으로 무장한 ‘백지선호’가 마침내 기적을 이뤘다. 대표팀은 지난달 29일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끝난 2017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세계선수권 디비전1 그룹A(2부 리그) 최종 5차전에서 승부치기 끝에 우크라이나를 2-1로 꺾었다. 2위를 기록한 한국은 1위 오스트리아와 함께 1부 리그로 승격했다. 성인 남자 등록 선수가 233명에 불과한 세계랭킹 23위 한국이 사상 최초로 세계 최고 수준의 16개 팀이 배정된 최상위 리그에 진입한 것이다. 한국은 1부 리그 국가인 세계 1위 캐나다(남자 등록 선수 9만7000명), 2위 러시아(1만2485명) 등과 당당히 같은 무대에 서게 됐다. 국가 간 격차가 큰 아이스하키에서 1부 리그 진입은 그 자체가 쾌거로 평가받는다.

꿈같은 일이 현실이 되자 선수들은 서로의 볼을 꼬집었고 백 감독도 눈물을 흘렸다. 그는 “나이가 있다 보니 아기들을 보면 눈물이 날 때가 있는데 같은 느낌이었다. 기뻐하는 선수들을 보니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백 감독은 “라커룸에서 ‘믿자, 우리를 믿자’고 했었다”고 떠올렸다.

백 감독은 이번 대회에서 맹활약한 캐나다 출신 골리 맷 달튼(31)을 비롯한 귀화 선수 7명과 국내 선수들이 한 팀으로 녹아들도록 각별히 애를 썼다. 협회 관계자는 “언론이 귀화 선수만 별도로 인터뷰를 진행하자 백 감독이 ‘(토종 선수들도) 같이 해’라고 화를 냈다”고 말했다.

백 감독은 평소 자신의 하키 철학을 ‘3P’로 요약해 왔다. 열정(Passion)과 연습(Practice), 그리고 인내(Perseverance)다. 그는 “뚜렷한 목표와 꿈이 있다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 아버지께 그렇게 배웠고 NHL에서도 이것들을 지키면서 최선을 다해 선수 생활을 했다”고 말했다. 백 감독은 “3P에 또 하나의 ‘P’가 추가됐는데 그것은 바로 평창(Pyeongchang)”이라고 말했다.

4P로 무장한 백 감독은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올림픽 첫 승의 새 역사에 도전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30일 귀국한 그는 “꿈은 항상 크게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월드챔피언십#백지선#남자 아이스하키#평창올림픽#3p#passion#practice#perseve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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