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만에 첫 우승 김지현 “아직도 꿈인 것 같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5월 4일 05시 45분


김지현은 지난달 30일 끝난 KLPGA 투어 KG이데일리레이디스오픈에서 데뷔 8년 만에 첫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125경기 만에 우승해서인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던 김지현의 전성시대는 이제부터다. 사진제공 | KLPGA
김지현은 지난달 30일 끝난 KLPGA 투어 KG이데일리레이디스오픈에서 데뷔 8년 만에 첫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125경기 만에 우승해서인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던 김지현의 전성시대는 이제부터다. 사진제공 | KLPGA
■ 예쁘고 성격 좋기로 소문난 그녀, 첫 승 그후

내 우승이 더 기쁘다는 노무라 하루
직접 달려와서 축하해 준 김효주
무관 설움 함께 해준 윤채영 언니
쏟아지는 축하, 지금도 얼떨떨


“아직 꿈인 것 같지?”

김지현(26·한화)은 1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어리둥절했다. 하루 전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KG이데일리레이디스오픈에서 챙긴 데뷔 8년만의 첫 우승이 실감나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그때까지도 꿈인지 생시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잠에서 깬 김지현은 휴대전화를 보고나서야 우승을 실감했다. “일본에 있는 (윤)채영 언니에게 문자가 왔더라고요. 어떻게 제 마음을 알았는지, ‘아직도 꿈인 것 같지’라고 하더라고요. 아마 언니도 제 마음과 똑같았나 봐요.”

윤채영(30)은 2014년 제주삼다수마스터스에서 데뷔 9년, 160경기 만에 첫 우승을 신고했다. 무관의 설움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8년 만에 우승한 후배의 마음 역시 가장 먼저 챙겼다.

125경기 만에 우승의 달콤함을 알게 된 김지현은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1일 만난 김지현은 “우승이 이렇게 쉬운 줄은 몰랐다”며 웃고 또 웃었다. 결과만 놓고 보면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지현은 우승 후 쉴 새 없이 눈물을 쏟아냈다. 8년간 감춰둔 혼자만의 아픔을 눈물로 씻어냈다.

김지현의 우승이 더 특별했던 이유는 ‘노력하면 될 수 있다’는 땀의 결실이기 때문이다. 그는 데뷔 초 불안한 투어활동을 했다. 2010년 데뷔해 4년 동안은 상금랭킹 50위 밖으로 떨어져 시드전을 통해 다시 투어로 올라오는 고단한 생활을 거듭했다.

5년 전 지금의 안성현(36) 코치를 만나면서 골프에 새롭게 눈을 떴다. 안 코치는 김지현의 감춰진 가능성을 끄집어냈고, 노력과 생각의 변화가 더해지면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 뒤 김지현의 골프인생은 완전히 달라졌다. 우승은 없었지만 2014년 상금랭킹 22위, 2015년 12위, 2016년 13위에 올랐다. 오히려 우승을 차지한 선수들보다 더 높은 순위를 지키는 꾸준함을 보였다. 스승의 믿음과 제자의 가능성이 합쳐진 결과다.

김지현. 사진제공|KLPGA
김지현. 사진제공|KLPGA

● 윤채영에서 김지현으로…, 다음 주인공은?

김지현은 투어에서 예쁘고 성격 좋은 선수로 정평이 나있다. 그 덕분에 따르는 후배들도 많고, 챙겨주는 선배들도 많다. 우승 뒤에는 선·후배들의 쏟아지는 축하인사에 휴대전화가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1시간 남짓 만나고 있던 동안에는 그날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텍사스슛아웃에서 연장 혈투 끝에 우승한 노무라 하루(일본)에게서도 문자메시지가 왔다.

김지현은 “(노무라) 하루에게 문자가 왔는데, 자신의 우승보다 내 우승이 더 기쁘다고 한다”며 자랑했다. 그 뒤로도 해외에 있는 전인지(23), 이민영(26) 등의 축하문자가 이어졌고, 김효주(22)는 직접 찾아와 축하해줬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진심어린 감사의 마음을 전하던 김지현은 같은 한화 소속의 선배 윤채영에게 좀더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김지현은 지난해 두산매치플레이챔피언십에서 우승을 놓고 박성현(24)과 결승전을 치렀다. 앞서가던 김지현은 끝내 역전을 허용하며 우승에 실패했다. 하염없이 울던 그를 찾아와 위로해준 이가 윤채영이었다.

“채영 언니가 제 곁을 지켜주면서 위로해줬어요. 그러고는 ‘그래도 네가 나보다 먼저 우승할 수 있을 거야.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시작해라’고 조언해줬죠. 그 뒤 정말 모든 것을 내려놨어요. 정말요.” 그리고 선배의 위로처럼 김지현은 윤채영보다 35경기 빨리 우승의 감격을 맛봤다.

KLPGA 투어에선 우승의 기운을 연결하는 특별한 전통(?)이 있다. 우승 재킷을 빌려 입으면 우승하는 그들만의 전통이다. 서희경(31·은퇴)은 데뷔 이후 3년 동안 우승에 목말랐다. 그러나 먼저 우승한 동갑내기 홍란의 우승 재킷을 빌려 입고 얼마 뒤 프로 첫 우승을 이뤘다. 그 뒤로 비슷한 일들이 친한 선수들 사이에서 이어지고 있다.

김지현은 “나도 그런 말을 들었다. 그래서 (김)효주의 우승 재킷을 수도 없이 입어봤다. 그런데 잘 안 되더라”며 “그 대신 채영 언니에게서 전수받은 우승의 기운을 또 누군가에게 물려주겠다”고 말했다. 김지현 다음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주영로 기자 na187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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