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기 출전 문대용-문혜경
오른쪽 눈 거의 실명상태인 오빠… 중학생 때 다쳐 방황하다 맘잡아
오빠 영향으로 라켓 잡은 여동생… 고교 때 무패행진 ‘차세대 에이스’
‘정구 맘’ 김순덕 씨(48)의 웃음은 5분 만에 울음으로 변했다. 딸 문혜경(20·NH농협은행)이 2년 연속 태극마크를 달게 된 걸 기뻐할 틈도 잠시. 5분 뒤에는 큰아들 문대용(24·문경시청)도 승리로 경기를 마무리하면서 생애 처음으로 성인 국가대표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이 남매는 지난달 16일 2017년 정구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각각 남녀 복식 1위를 차지했다. 한국 정구 112년 역사상 남매가 나란히 국가대표로 뽑힌 건 이 둘이 처음이다. 제95회 동아일보기 전국정구대회가 열리고 있는 경북 문경국제정구장에서 이들을 만났다. 문경은 남매가 나고 자란 고향이기도 하다.
문대용은 어린 시절 두 차례 다친 오른쪽 눈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는 “낮이면 하얗게, 밤이면 까맣게 보인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문대용은 문경중 1학년 때 두 번째로 눈을 다치고는 석 달 동안 ‘운동을 그만두겠다’며 방황하기도 했다. 그때 문대용을 잡아준 이가 백현식 코치(현 문경공고)다. 이제 문대용이 ‘아버지’라고 부르는 백 코치는 그에게 “꿈을 가지라”고 다독였고, 문대용은 일기장에 “국내 최고의 중학생 정구 선수가 되겠다”고 썼다. 그는 이듬해 제85회 동아일보기 전국정구대회에 중등부가 생기자 단체전과 복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꿈을 이뤘다.
문대용은 “이제는 세계 최고의 정구 선수가 되는 게 꿈이다. 내년에 열리는 (자카르타) 아시아경기는 물론이고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정상에 서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어 “나도 뜻하지 않게 어려움을 겪고 있는 어린 친구들을 붙잡아 주고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 꼭 대한정구협회장을 하고 싶다”며 웃었다.
여동생은 오빠의 영향으로 정구 라켓을 잡게 됐다. 문혜경은 “초등학교(점촌중앙초) 2학년 때 오빠를 따라다니다가 정구가 재미있어 보여서 3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운동을 시작하게 됐다”며 “그런데 막상 정구를 시작하고 났더니 각자 숙소 생활을 하느라 오빠를 보기가 더 힘들었다. 집보다 정구장에서 오빠를 마주치는 일이 더 많았다. 국가대표가 되고 나서 아직 식구들이 다 같이 모여 밥 먹은 적도 없다”고 말했다.
문혜경은 경북관광고 재학 시절 무패 신화를 쓰면서 일찌감치 한국 여자 정구를 이끌어갈 차세대 에이스로 주목을 받았다. 고3 때 이미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최종 본선까지 올랐고 실업 무대로 옮긴 뒤에는 한 번도 국가대표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문혜경은 “3년 안에 팀 선배 김애경(29) 언니처럼 세계 최고의 정구 선수가 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남매를 어렸을 때부터 지켜본 주인식 문경시청 감독은 “문혜경은 중학교(문경서중) 때부터 독보적인 존재였다. 문대용이 대학(인하대) 시절 조금 주춤했는데 이제는 완전히 연습 벌레가 돼 ‘좀 그만해도 된다’고 말릴 정도가 됐다. 둘 모두 세계무대에서 통하는 선수로 발전할 것”이라고 칭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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