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경기 여주시 솔모로CC. 화려한 디자인의 옷차림으로 한껏 멋을 낸 젊은 남녀 92명이 골프 행사를 가졌다. 화창한 날씨 속에 참가자들은 웃고 떠들며 플레이 도중 다양한 포즈로 연방 휴대전화 ‘셀카’를 찍었다. 이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인스타그램 골프 동호회(인골동)’ 회원이었다. 한 여성 회원은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확 날려버릴 수 있었다. 사람 사귀는 데 큰 도움이 된다”며 웃었다.
2015년 6월 출범한 이 단체는 2년도 안 된 짧은 기간에 회원 수가 2000명을 돌파할 만큼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회원인 이유진 나우커뮤니케이션즈 대표는 “모임 때마다 드레스 코드를 정해 비슷한 컬러의 옷을 입다 보니 주위의 시선을 많이 끌며 화제가 되고 있다”고 자랑했다.
국내 골프장에 대중화 바람이 거세지면서 20, 30대와 여성 골퍼들이 필드의 대세로 주목받고 있다. 한국골프장경영협회(회장 박정호)가 최근 발표한 2016년 전국 골프장 내장객 현황에 따르면 대중 골프장 내장객(1966만 명)은 사상 처음으로 회원제 골프장 내장객(1706만 명)을 넘어섰다. 전체 내장객 3672만 명 가운데 53.5%를 대중 골프장이 차지한 셈이다. 2006년만 해도 대중 골프장 내장객은 614만 명으로 회원제 골프장(1350만 명)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박철세 솔모로CC 부장은 “골프에 대한 인식이 과거와는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일부 계층만이 이용하던 고가의 회원제 골프장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반면 쉽고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대중 골프장은 문전성시를 이루게 됐다. 한 골프 산업 전문가는 “골프 비용이 낮아지면서 중년층 이상의 전유물로 알려진 골프에 입문하는 젊은 세대들이 늘었다”고 분석했다. 20, 30대 골프 동호회인 ‘허골동’ 임보형 회장은 “요즘은 그린피, 캐디 봉사료, 카트 이용료 등을 합해 1인당 15만 원 미만으로도 골프를 칠 수 있다. 예전 같으면 생각도 못할 비용으로 골프를 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게다가 지난해 하반기부터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골프 시장이 실수요자 위주로 재편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필드 지각변동의 중심에는 ‘2030 골퍼’들이 자리 잡고 있다. 통계청 조사 결과 2004년과 2013년의 연령대별 골프장 이용 횟수를 비교하면 20대와 30대는 늘어난 것으로 드러난 반면 40대부터 60대 이상까지는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20대의 연간 골프장 이용 횟수는 10년 전 3.7회에서 5.1회로 증가했다. 토털 골프 문화 기업 골프존이 2014년 전국 15개 시도의 20∼59세 남녀 5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연령대별 신규 골퍼는 20대(26.7%)와 30대(35%)가 두드러졌다. 서천범 한국레저산업연구소장은 “김영란법 시행에도 골프장 내장객은 줄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젊은 계층의 골퍼들이 꾸준히 골프장을 찾은 영향도 있다”고 말했다.
여성 골퍼 증가는 더욱 두드러진다. 골프존 조사를 보면 2015년 전체 골프 인구의 23.1%를 차지하던 여성 골퍼 비율이 지난해 27.3%로 높아졌다. 인천 스카이72골프장은 2013년 3만7836명이던 여성 내장객이 지난해 5만5947명으로 늘었다고 밝혔다.
한때 귀족 스포츠로 불린 골프 문화도 변하고 있다. 접대와 로비의 무대라는 오명을 들었던 골프장이 여가 활용과 건강 증진이라는 스포츠 본연의 목적을 되찾고 있다는 긍정적인 목소리도 들린다. 과거 골프는 일부 가까운 사람끼리만 치는 운동이라는 폐쇄성이 강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사교 활동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은 모르는 사람과도 골프를 통해 교제의 폭을 넓힐 수 있다고 여기는 분위기다. 골프장에서 처음 만나 동반 플레이를 하는 ‘조인 라운드’뿐만 아니라 혼술, 혼밥처럼 혼자 골프장을 찾아 운동을 하는 ‘혼골’까지 등장했다. 회원 수 5만2000명이 넘는 온라인 골프동호회 ‘클럽 카메론’은 사이판 행사를 위해 전세기까지 띄울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허골동 회원인 이혜원 씨(29)는 “소풍 간다는 기분으로 골프장에 나와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 친목을 도모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골프가 SNS 활동에 최적화된 스포츠라는 분석도 있다. 플레이 도중에도 자유롭게 사진을 찍거나 관련 글을 포스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력 8년에 월평균 4∼6회 라운드를 한다는 뷰티 전문 쇼호스트 신예원 씨(34)는 “30대 여자들끼리 골프를 치러 가면 재미있는 구도로 사진을 찍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했다.
골프장과 골프 용품 업체들은 ‘젊은 큰손’을 잡기 위해 적극적인 마케팅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때 ‘슈퍼 갑’으로 불리던 골프장은 다양한 가격 정책과 서비스로 고객을 유인하고 있다. 과거에는 비나 눈이 와 중간에 라운드를 관둬도 울며 겨자 먹기로 18홀 요금을 모두 내야 했다. 요즘은 악천후에는 ‘홀별 정산제’가 일반화됐다. 바쁜 일상 속에서 9홀 라운드를 도입하는 골프장도 늘어나고 있다. 오전 이른 시간이나 오후 늦은 시간에는 그린피를 대폭 깎아 주기도 한다.
국내 최초로 반바지 라운드를 허용한 스카이72골프장은 여성 내장객을 위한 호텔 수준의 최고급 사우나를 운영해 호평을 듣고 있다. 경기 포천시 대유 몽베르CC 유연진 대표는 “전체 내장객의 30% 가까이로 늘어간 여성 내장객의 편의를 위해 전용 라커를 300개로 늘렸다”고 말했다. 인터넷이나 공동구매를 통해 손쉽게 부킹을 해 저렴하게 라운드를 즐길 수 있는 기회도 늘었다.
신세대 골퍼들은 또래들처럼 개성을 중시하고 정보기술(IT) 장비에도 민감하다. 기성품을 구입하는 대신 클럽 피팅으로 자신의 체격 조건과 스윙 스타일에 맞는 나만의 ‘무기’를 마련하는 경우도 많다. 허리춤에 거리측정기를 차고 다니다 수시로 남은 거리를 파악하는 골퍼들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레이저 거리측정기 ‘부쉬넬’의 한국 공식수입원인 카네에 따르면 2013년 국내 시장 론칭 후 해마다 30% 이상의 가파른 매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중고 거래 인터넷 사이트 등을 이용해 저렴하게 용품을 바꾸는 알뜰파도 많다.
골프웨어는 전통적인 중후한 느낌에서 벗어나고 있다. 패션성과 기능성이 강화돼 일상생활에도 입을 수 있는 스타일이 인기몰이에 나서고 있다. 골프웨어 와이드앵글 관계자는 “젊은 여성일수록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스스로 필드의 시선을 즐기며 SNS를 통해 패션 센스를 자랑하기를 좋아한다. 그런 여심을 잡기 위해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프로처럼 입고 싶다’는 주말골퍼의 심리가 커지면서 인기 프로골퍼가 입고 나온 골프웨어는 ‘완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강준호 서울대 스포츠산업연구센터 소장은 “골프 인구가 줄고 있는 미국 일본 유럽과 달리 국내는 2000년대 초반부터 정보통신기술(ICT)이 융합된 스크린골프가 나타나면서 20, 30대 신규 골프 인구의 유입이 늘었다. 이들이 40, 50대가 되면 필드 골프의 잠재 수요자로 전환될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골프 산업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