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병인 “딸랑! 공이 온다… 테니스로 한계 날렸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30일 03시 00분


소리 집중하는 시각장애인 테니스
세계대회서 깜짝 준우승 소병인씨

저시력자인 소병인 씨는 소리와 색으로 테니스 코트와 공을 구별한다.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해서 한 게임만 마쳐도 진이 빠질 정도지만 그는 테니스를 할 때가 가장 즐겁다고 말했다. 우석대 제공
저시력자인 소병인 씨는 소리와 색으로 테니스 코트와 공을 구별한다.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해서 한 게임만 마쳐도 진이 빠질 정도지만 그는 테니스를 할 때가 가장 즐겁다고 말했다. 우석대 제공
‘딸랑.’

온통 뿌연 황토색 시야 너머로 작은 구슬 소리가 들렸다. 초점이 맞지 않아 가늘게 뜬 눈을 바닥에 고정하곤 어디쯤에서 구슬이 울렸는지 온 신경을 집중했다. 다시 ‘딸랑’ 하는 두 번째 구슬 소리와 함께 작은 형광색 점 하나가 불쑥 시야에 들어왔다. 구슬이 들어있는 시각장애인테니스용 스펀지공이다. 오른손에 쥔 라켓을 재빨리 점에 가져다 댄다. 멀어지는 구슬 소리 사이로 심판의 긴 외침이 들렸다.

“게임!”(승리를 의미하는 테니스 용어)

6∼13일 스페인 알리칸테에서 열린 제1회 세계 시각장애인 테니스대회에서 한국의 한 청년이 저시력 부문 준우승을 차지했다. 대학 입학 뒤 처음 테니스를 접한 소병인 씨(21·우석대 특수교육과)가 주인공. 입문 3년 만에 영국, 스페인, 멕시코 등 13개국 62명의 시각장애인이 참가한 대회에서 놀라운 성적을 거둔 것이다.

“시각장애인이 테니스를 친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놀라요. 테니스는 공이 빠르게 움직이기 때문에 눈이 안 좋은 시각장애인은 아예 못 할 거라고 생각하죠.”

시각장애인 테니스는 일반인에겐 아직 생소한 장애인 스포츠다. 1990년 일본의 한 장애인 재활센터에서 처음 개발돼 2007년 한국에 들어왔다. 일반 테니스 코트보다 길이가 약 5m 짧은 코트에서 구슬이 들어있는 직경 9cm 크기의 스펀지공을 이용해 경기한다. 일반 테니스는 공이 바닥에 한 번 튀기는 것까지만 허용되지만 시각장애인 테니스는 최대 3번까지 가능하다.

“전 선천적 저시력자라 소리를 따라다니다 희미하게 공의 색이 보이면 라켓을 휘둘러요. 전맹인(눈이 전혀 보이지 않는 사람)은 100% 소리에 의존해 테니스를 하죠. 스펀지공이라 바닥에 공이 닿아도 빠르게 튀어 오르지 않아 연습만 잘하면 어느 정도 쳐낼 수는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그에게 세상은 뿌옇고 흐린 덩어리의 합이었다. 자신의 세상과 남들이 보는 세상이 다르다는 걸 안 건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담임이 그를 교무실로 불러 점자표를 건넬 때 그는 울며 첫 번째 좌절을 경험했다.

“윤곽과 색만 겨우 구분할 수 있지만 한계를 이겨내려 최대한 노력하며 살았어요. 저처럼 장애를 겪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어서 특수교육과에 입학했죠. 시간이 날 때마다 운동도 했고요. 테니스도 그렇게 시작했어요.”

국내 대회 우승 경험은 없지만 매 경기 몸을 날리며 경기한 적극성을 인정받아 그는 세계대회에 출전하는 6명의 한국 선수단에 이름을 올렸다. 대회는 시각장애 등급에 따라 B1(전맹), B2(시력 0.03 미만), B3(0.03 이상)으로 구분돼 경기를 치르며 소 씨는 B2 부문에 출전했다. 비록 결승에서 아깝게 우승은 놓쳤지만 세계무대에서 자신의 실력이 통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뻤다. 그는 “결승에서 맞붙었던 상대는 공이 바닥에 닿기도 전에 발리로 넘기더라”며 “제 실력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 상대의 시력이 더 좋은 것 같았다”라며 웃었다.

그는 임용시험에 통과해 교사가 되더라도 테니스를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아직 시각장애인테니스는 패럴림픽의 정식 종목이 아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 테니스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 언제든지 패럴림픽에 나갈 수 있도록 실력을 갈고 닦겠다는 것.

“패럴림픽에 출전한다는 건 저 개인에게도 영광이지만 제가 선생님이 된 뒤 만날 학생들에게도 큰 희망이 될 수 있어요. 제 학생들이 어려운 현실을 이겨낼 힘을 저에게서 얻는다면 그보다 더 큰 행복이 없을 것 같습니다.”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시각장애인 테니스#소병인#세계 시각장애인 테니스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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