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기자의 히트&런]5만원으로 두려움을 이긴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2일 03시 00분


나지완-최준석 등 ‘검투사 헬멧’… 기존 헬멧에 조립하는 보호대
미국서 저렴하게 온라인 구매

“타자는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최선으로 공을 때리려는 욕망과 피하려는 본능의 억제 사이에서 싸운다.” ‘야구란 무엇인가’의 저자 레너드 코페트는 무서움을 야구의 첫 번째 화두로 던졌다.

그래서 몇몇 선수들에게 직접 물어봤다. “정말로 투수가 던지는 공에 두려움을 느낄 때가 있나요.” 거의 모든 선수는 “투수의 공이 무서워지면 야구를 그만둬야 하는 거 아니냐”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시속 150km가 넘는 공에 위축되지 않는 타자가 몇이나 될까. 가끔씩은 공이 얼굴에 맞는 불상사가 생기기도 한다. 그러면 안면 함몰과 같이 끔찍한 결과가 뒤따른다.

KIA 외야수 나지완(사진)은 지난해 5월 구단 장비 담당자에게 솔직한 마음을 털어놨다. “몸쪽 공이 무서워졌다”고. 상대 투수들은 나지완을 향해 집요하게 몸쪽 공을 던졌다. 몸에 맞는 볼이 여러 차례 발생했고, 가끔씩은 공이 얼굴을 향해 날아오기도 했다.

KIA 장비 담당자는 미국에서 안면 보호대를 구매했다. 기존 헬멧에 이를 조립해 안면보호용 헬멧, 일명 검투사 헬멧을 만들었다. 보호대 부분이 턱 아래까지 덮어 얼굴을 반쯤 가리는 헬멧이다. 나지완은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는 몰라도 심리적으로 큰 안정감을 준다. 몸쪽 공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고 타석에 들어서고 있다”고 했다. 그는 지난달 31일 현재 타율 0.302에 6홈런, 33타점을 기록 중이다.

올 시즌에는 적지 않은 선수들이 나지완을 따라 ‘검투사’ 대열에 합류했다. 롯데 최준석과 LG 박용택 등이 대표적이다.

덩치 큰 최준석 역시 투수들로부터 몸쪽 공 공략을 많이 받는 선수다. 그 역시 검투사 헬멧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5월 현재 성적은 타율 0.317, 3홈런, 29타점이다. 박용택은 부상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검투사 헬멧을 쓰고 있다. LG 최재원은 몇 해 전 공을 얼굴에 맞아 큰 부상을 당한 이후 검투사가 됐다. 지난달 1군에 등록된 kt 김동욱도 검투사 헬멧을 쓰고 4개의 홈런을 쳤다.

그동안 선수들이 검투사 헬멧에 거부감을 느꼈던 이유는 불편함과 함께 ‘두려움을 상대에게 내보이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요즘엔 검투사 헬멧을 쓰는 게 더 이상 흉이 아니다. 메이저리그 최고 몸값을 자랑하는 마이애미의 장칼로 스탠턴(13년 3억2500만 달러·약 3647억 원)도 검투사 헬멧을 쓴다.

비용을 생각하면 더욱 남는 장사다. 나지완 등이 구매한 보호대는 미국의 일반 스포츠용품점에서 20달러(약 2만2000원)면 구매할 수 있다. 한국까지 들여오는 배송료를 더해도 5만 원이면 충분하다. 5만 원에 야구의 제1화두인 무서움을 없앨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나지완#최준석#검투사 헬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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