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생 KBO리그가 30대 중반을 넘기면서 풍성해진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기록이다. 그간 수많은 선수들이 타석과 마운드에 금자탑을 쌓아올렸다. 특히 매일 경기에 나설 수 있는 타자들의 경우 그 기록의 두께가 상당하다. 대표적인 지표가 바로 2000경기와 2000안타다.
15년가량을 꾸준히 뛰어야 달성 가능한 두 기록은 최근 들어 타자의 장수(長壽) 여부를 가늠하는 잣대가 됐다. 현재까지 2000경기 출장 선수는 8명, 2000안타 달성 선수는 9명뿐. 두 기록을 함께 이뤄낸 전설 역시 4명(전준호~양준혁~장성호~정성훈)에 불과하다. 그리고 36번째 시즌이 한창인 지금, 이들의 뒤를 이을 선수가 있다. 바로 이진영(37·kt)이다.
베테랑 외야수 이진영은 7일까지 1993경기, 1994안타를 작성하며 두 대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다. 무려 19년간 공을 들인 업적이다. 1999년 쌍방울에서 데뷔해 SK와 LG, kt를 거치며 한 해도 쉬지 않고 기록을 축적했다. 그간 개인수상 혹은 타이틀 획득과는 거리가 멀었던 주인공도 설렘을 감추지 못했다. 이진영은 “이번만큼은 직접 통산기록을 찾아보면서 마음을 다잡았다. 팬들께서 기억해주실 수 있는 기록인 만큼 더욱 뿌듯하다”며 밝게 웃었다.
● “며칠 전부터는 나도 궁금해져 통산기록을 찾아봤다”
-2000경기 그리고 2000안타라는 대기록이 눈앞이다.
“사실 프로선수로 뛰면서 이렇다할 개인기록을 세워본 적이 없었다. 타이틀 홀더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값지고 소중한 기록이기 때문에 느낌이 남달랐다. 며칠 전부터는 나도 궁금해 통산기록을 살펴봤다.(웃음) 중요한 빈자리 하나가 채워지는 기분이다.”
-무엇보다 본인 스스로가 가장 뿌듯할 듯하다.
“그간 내가 거쳐 왔던 팀과 고생한 나에 대한 고마움이 크다. 선수생활을 하면서 첫째는 팀이 잘 돼야하는 생각을 매번 했다. 그 다음이 나였다. 그래서 개인 타이틀과 인연이 없어도 별다른 아쉬움은 없었다. 그러나 이번 기록을 통해 앞으로도 팬들께서 ‘선수 이진영’을 기억하실 수 있게 돼 뿌듯하다.”
-길고 긴 프로 19년이었다.
“사실 프로에 처음 입단했을 때는 이렇게 야구를 오래하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1999년 쌍방울 시절만 하더라도 많은 대선배들이 일찌감치 은퇴를 하셨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야구는 오래할 수 없는 종목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환경이 좋아지면서 예전엔 은퇴를 하고도 남을 나이에 야구를 하고 있다. 참으로 감사한 마음뿐이다.”
-지난 19년을 돌아볼 때 가장 큰 고비는 언제였나.
“솔직하게 말해 큰 고비는 없었다. 그렇다고 특별하게 잘한 시즌도 없었다.(웃음) 19년은 전부 경쟁이었다. 싸움에서 이겼을 뿐이고, 지금 역시 마찬가지다. 새 시즌이 돌아오면 새로운 마음으로 새로운 선수들과 경쟁한다는 자세로 임했다. 선배는 물론 동료, 후배들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다.”
● “선배들 기록에 다가설수록 소중함이 커간다”
-데뷔 순간은 기억나는가.
“물론이다. 힘들었던 기억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고등학교를 갓 나와 프로에 적응하기도 힘들었는데 모그룹 사정까지 악화되면서 여러모로 환경이 좋지 않았다. 여기에 김성근 감독님의 엄청난 훈련량까지 감당해야했다.(웃음) 대화할 수 있는 친구도 많지 않았고…. 돌이켜보면 데뷔 첫 해의 경험이 자양분이 됐다.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자산이다.”
-이제 30대 후반 베테랑이 됐다.
“그때를 떠올려보면 지금의 kt 후배들이 참 어렵겠다는 생각도 든다. 당시 쌍방울은 나이차이가 한참 있는 선배들이 수두룩했다. 그 때문에 새파란 신인인 내가 쉽게 다가갈 수가 없었다. 아마 지금 kt에 있는 후배들이 이러한 생각을 갖고 있지 않을까?”
-그러나 현재의 kt는 분명 베테랑의 힘이 필요한 팀이다.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부터 후배들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고 하고 있다. 코치님들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신다. 코치들의 역할엔 한계가 있으니 선배들이 지도자 입장이 돼서 후배들과 호흡해달라고. 물론 후배들 입장에서는 어려울지 모르겠지만, 이러한 방법을 통해서라도 보이지 않는 부분을 채워야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본인 이야기로 돌아오겠다. ‘국민 우익수’라는 애칭도 있었지만, ‘타자 이진영’에 대한 편견도 있었다. 밀어칠 줄 모르고 당겨쳐야 안타 생산이 가능하다는.
“잘 알고 있다. 기사로도 많이 접했고, 팬들 반응 역시 알고 있다. 그러나 20년 가까이 뛰면서 확고한 타격 지론이 있다. 땅볼-플라이 여부, 좌측-우측 방향에 관계없이 정확하게 맞혀야한다는 점이다. 포인트가 정확하면 타구에 힘이 실리면서 자연스럽게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다. 물론 그동안 많은 코치님들께서 나의 스타일에 대해 걱정을 하셨다. 그러나 오랜 시간을 함께 하면서 나의 지론을 이해해주시게 됐다. 그만큼 자부심이 있다.”
-두 기록을 넘어서면 이제 대선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선배들 기록에 다가설수록 안타 하나, 플레이 하나에 대한 소중함이 커가는 느낌이다. 아마 선배들 역시 같은 생각을 하지 않으셨을까. 하루는 이병규 선배가 조언을 해주시더라. 지금 뛸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감사하라고. 앞으로도 (이)병규형 이야기를 가슴에 새기고 그라운드에서 땀을 흘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