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산 10번째이자 9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노리는 한국축구의 앞날에 적신호가 켜졌다. 한국은 14일(한국시간) 도하 자심 빈 하마드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카타르와의 2018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8차전 원정경기에서 2-3으로 졌다. 4승1무3패, 승점 13을 유지한 한국은 하루 전 선두 이란(6승2패·승점 20)에 0-2로 덜미를 잡힌 3위 우즈베키스탄(4승4패·승점 12)과의 격차를 벌리지 못한 채 ‘불안한 2위’에 머물렀다. 반드시 승점 3을 챙겨야 했던 경기에서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한국이 카타르에 패한 것은 무려 33년만이다.
그동안 통산 9회, 그리고 8회 연속 월드컵 본선을 경험하면서 언제부터인가 선수들에게도 ‘월드컵 본선은 당연히 나가는 무대’라는 안일한 인식이 퍼졌다. 이는 경기력으로 직결됐다. 3월 중국 원정에서 0-1로 패하고, 시리아에는 안방에서 간신히 1-0으로 승리한 뒤 주장 기성용(28·스완지시티)은 선수단의 정신무장을 강조했다. 그러나 카타르전에서도 별반 달라진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카타르전 결과에 대한 책임은 울리 슈틸리케(63·독일) 감독과 대한축구협회의 몫이지만, 선수들도 비난의 화살을 결코 피할 수 없는 이유다.
2015년 초 호주아시안컵 이후 2년 5개월 만에 태극마크를 다시 단 베테랑 공격수 이근호(32·강원FC)의 고백이 이를 잘 대변한다. 이근호는 카타르전 패배 후 “모든 선수들이 냉정하게 현실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며 “좀더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이렇게 안일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카타르전까지 포함해 A매치에 77차례나 출전한 노장의 지적인 만큼 새겨들어야 한다.
패인에 대해 재차 묻자 이근호는 잠시 침묵을 이어간 뒤 “좀더 간절하게 집중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이어 “개인이 아닌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이다. 책임감을 더욱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응집력 등이 카타르보다 부족한 것 같다”고 밝혔다.
전반 30분께 부상을 당한 손흥민(25·토트넘)을 대신해 긴급 투입된 이근호는 평소처럼 왕성한 활동력을 보이며 부지런히 그라운드를 누볐다. 후반 25분 황희찬(19·잘츠부르크)의 동점골도 그의 발끝에서 비롯되는 등 전반적으로 부진했던 동료들 사이에서 이근호는 상당히 인상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이근호는 “아무리 아시아 팀과 한다고 해도 다른 팀은 (우리와 만나면) 120%를 한다. 안일한 마음으로 허술하게 하면 당연히 이길 수 없다”며 “모든 것을 쏟아 부었을 때 (우리가) 좀더 나을 뿐이다. 힘을 빼면 오늘 같은 결과가 다시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고 강조했다.
벼랑 끝에 몰렸지만, 다행히 아직 끝난 것은 아니다. 베테랑 이근호의 지적대로, 안일함에 젖어있던 선수들도 이제 마음가짐을 새롭게 해야 한다. 그래야 벼랑 끝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