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소연, 아칸소 챔피언십 우승, LPGA 시즌 첫 다승 달성하고 신지애-박인비 이어 그린 정상
3년 넘게 컷 탈락 없던 꾸준함에 쇼트게임 강해지며 상금도 1위
2006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부근에서 열린 세계아마추어팀선수권에서 기자가 유소연(27)을 처음 만났을 때였다. 그는 대원외고 1학년에 다니던 16세 국가대표 소녀였다. “희망봉에 가서 세계 최고 골퍼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싶다”고 했다. 당시 현지 흑인 캐디는 오전 3시에 일어나 2시간을 걸어 출근하고 있었다. 유소연이 자신의 주머니 속에 있던 초코파이를 그 캐디에게 나눠주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유소연은 바쁜 일정 탓에 희망봉에는 가지 못했다. 하지만 유소연은 11년 전 남반구 끝에서 마음속으로 빌었던 세계 정상의 꿈을 이뤘다. 26일 미국 아칸소주 로저스의 피너클CC(파71)에서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월마트 NW 아칸소챔피언십에서 우승 트로피와 함께 생애 첫 세계랭킹 1위 등극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마지막 3라운드에서 유소연은 2언더파를 쳐 최종 합계 16언더파로 공동 2위 양희영, 모리야 쭈타누깐(태국)을 2타 차로 제쳤다.
이로써 그는 4월 ANA 인스피레이션 우승을 포함해 시즌 2승 고지에 올랐다. 그가 한 시즌 2승 이상을 거둔 건 2012년 LPGA투어 데뷔 후 처음이다. 또 올 시즌 16번째 LPGA투어 대회에서 한 선수가 다승을 기록한 것은 그가 처음이다. 올 시즌에는 15개 대회가 지나도록 2승 이상을 거둔 선수가 없었다. 3위였던 세계랭킹은 1위로 뛰어올랐다. 세계랭킹에서 한국 선수가 정상을 차지한 것은 신지애 박인비에 이어 세 번째다. 유소연은 “믿을 수 없다. 두 가지 좋은 일이 동시에 올 줄 몰랐다. 이 자리에 오래 머물고 싶다”며 기뻐했다.
2006년 도하 아시아경기대회 2관왕 출신인 유소연은 꾸준함의 대명사다. 2014년 5월 이후 3년 넘도록 컷 탈락을 당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달 초 숍라이트 클래식에서 64개 대회 만에 컷 통과에 실패했다. 유소연은 정면 돌파 대신에 돌아가는 전략을 택했다. “원래 1주만 쉬려다가 2주 동안 대회에 안 나갔어요. 마음을 다스리면서 퍼트 감각 회복에 집중했어요.”
3주 만에 복귀한 그는 새로워져 있었다. 2라운드에 10언더파를 몰아친 그는 90%에 육박하는 그린 적중률에 퍼트 수를 25개 안팎으로 떨어뜨리며 대회 최저타 기록도 세웠다. 우승 상금 30만 달러(약 3억4000만 원)를 받아 시즌 상금 100만 달러를 맨 먼저 돌파해 상금 선두(약 121만 달러)도 탈환했다.
꾸준함이 유소연에게는 달갑지 않은 순간인 적도 있었다. 지난해 말 메인스폰서 재계약에 실패한 뒤 결정적으로 우승이 적다는 얘기가 들리면서 서운한 감정을 품기도 했다. 올해 ANA 인스피레이션에서 2년 7개월 만에 우승했을 때는 단독 선두였던 렉시 톰프슨이 4벌타를 받았기 때문이라며 챔피언 자격 논란에 휩싸였다. 하지만 이번에 완벽한 우승으로 유소연은 아쉬운 순간을 말끔히 씻어내며 활짝 웃었다. 한 단계 올라서려고 조던 스피스의 코치인 캐머런 매코믹 코치에게 교정한 스윙도 한층 견고해졌고 심리 트레이닝도 효과를 봤다.
경기 후 유소연은 5년 넘게 친언니처럼 지내는 박인비(공동 6위)와 스테이크를 먹으며 뒤풀이를 했다. 박인비처럼 US여자오픈에서 LPGA투어 첫 승을 거뒀던 유소연은 2015년 10월까지 박인비가 갖고 있던 한국 선수 세계 1위 자리를 되찾았다. 27일 박인비와 함께 전세기를 타고 메이저대회인 KPMG 위민스 PGA챔피언스가 열리는 일리노이주로 이동하는 유소연은 “인비 언니는 내 칭찬을 많이 해주고 후배지만 배울 게 많다는 얘기도 자주 한다. 그 덕분에 자신감을 갖게 된다. 늘 고마운 존재”라고 말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단짝 박인비의 축하 메시지
항상 샷이나 마인드 모두 1위 자리에 오를 준비가 된 선수라고 생각하고 있었단다. 다만 지난해까지 퍼트가 조금 부족했는데 올해는 그마저도 완벽하게 커버하게 돼 정상의 자리에 갈 날이 머지않았다고 봤었다. 오늘 우승과 함께 세계랭킹 1위에 오르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게 돼 나 역시 기뻤고 뿌듯했어. 이 순간을 즐기고 계속 멋진 플레이를 보여줬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자. 축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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