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을 만나 수십 년 인생 노정을 압축해서 들을 수 있다는 건 기자라는 직업의 큰 특혜다. 그 천금 같은 무게의 육성은 기자 개인에게도 눈이 번쩍 뜨이는 삶의 지표가 되곤 한다. 내겐 권투인 유제두가 그런 사람이다.
그를 만난 건 2000년이다. 그는 열여덟 살이던 1965년 상경해 샌드백을 두드린 이래 35년 동안 하루도 글러브를 벗은 날이 없다고 했다. 한 걸음 한 걸음 한국챔피언, 동양챔피언, 세계챔피언에 올랐고 동양타이틀을 21차례나 방어했다. 1979년 은퇴 후엔 체육관을 차려 후진 양성 한길을 걸었다. 챔피언도 여럿 길러냈다. 그를 만난 건 권투의 인기가 시들해진 무렵이지만 그는 “사업할 줄도 모르고 술도 안 좋아한다. 권투가 유일한 낙이고 보람이다. 천직이다”고 했다.
빈말도 과장도 아니었다. 그는 프로로 뛴 11년 내내 초심을 잃지 않았다. 한창 몸이 불어날 나이에 7년간 한계체중을 유지했다. 그는 홍수환처럼 영민하지도, 박찬희처럼 현란하지도, 박종팔처럼 묵직하지도 않았다. 화끈한 인파이터도, 세련된 아웃복서도 아니었다. 중량급인데도 발이 빨랐고 권투의 기본인 레프트잽과 원투로 서서히 상대의 밸런스를 무너뜨린 뒤 소나기 펀치. 오랜 연습 없이는 체득 못할 기량이었다. 세계타이틀을 내준 뒤에도 실력 탓에 진 게 아님을 입증하려고 동양타이틀을 다섯 번 더 방어하고 은퇴했다. 그를 만나고 오면서 ‘나도 저 나이까지 저렇게 성실하고 일관된 삶을 살 수 있을까’ 생각했다.
17년 만에 그를 다시 만났다. 그는 70세, 나는 17년 전 그의 나이가 됐다. 앞머리가 훤히 드러난 그가 땀내 가득한 체육관에서 묵묵히 제자의 주먹을 받아내고 있었다. 그는 마주앉자마자 담배를 꺼내 물더니 혀를 찼다.
“애들이 ‘쇼트’를 못 쳐. (상대와) 한두 뼘 거리에서 짧게 딱딱 끊어 치고 피해야 또 찬스가 오거든. 다들 큰 주먹만 휘두르다 지쳐. 쇼트 중요한 건 다 아는데 막상 해보라면 못해. 짧은 주먹은 꾸준히 훈련해야 나와. 이게 내 직업이다, 이거 아니면 죽는다 하고 달려들어야 되는데….”
권투 얘기로 시작해 권투 얘기로 끝나는 눌변. 하나도 변한 게 없었다. 오전 6시에 체육관 문을 열고 사범들이 출근하는 오전 9시까지 혼자 관원들을 가르친다고 했다. 드물게 외출할 때 말고는 종일 체육관을 지킨다. 프로복싱 열기는 17년 전보다 못하고 관원들 대부분은 선수 지망생이 아니라 건강관리나 체중 감량을 위해 나오는 일반인이다. 어쩌다 유망주를 찾아내 가르쳐도 흥행이 어렵다 보니 달리 먹고살 길을 찾아 운동을 관두는 경우가 허다하다. 힘이 빠질 법도 하건만 그는 “박세리가 한국 골프를 일으켰듯 한국 복싱도 재목감 한둘만 나오면 살아날 것”이라며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우리처럼 침체기를 겪던 일본도 몇몇 스타 선수들 덕에 세계챔피언을 6명이나 보유한 복싱 강국으로 거듭났다는 것이다.
“남은 평생도 권투를 하겠지만 그런 재목감을 만난다는 건 보통 정성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좋은 인연도 많이 쌓여야 한다. 그래서 나쁜 짓 안 하고, 남에게 피해 안 주고, 정직하게 의리 지키며 살려고 늘 자세를 가다듬는다. 꽁초 버릴 곳이 없으면 담뱃갑에 넣어뒀다가 집에 와서 버린다.”
구도자의 신독(愼獨)이다. 권투밖에 모르는 그가 2007년(후보 경선), 2012년 대선에 나선 박근혜 후보의 사조직에 몸담았다. “전라도 출신이 배알도 없냐”고 욕을 먹었다. 2010년엔 서울시장에 출마한 지상욱 후보를 도왔다. 물론 선거 후 바로 복귀했지만, 고향 지역구 공천 제의도 거절할 만큼 정치에 무관심했던 그가 왜?
“1975년 세계챔피언이 됐을 때 박정희 대통령이 청와대로 불러 격려금을 줬다. 어머니 여읜 지 1년도 안 된 박근혜 씨가 퍼스트레이디로 점심 대접을 했고. 내가 군복무할 때 권투를 계속하게 배려해준 대대장이 지상욱 의원의 부친이고, 은퇴할 때 꽃다발을 준 ‘소년’이 지상욱이다. 인연과 의리는 평생 가는 거다.”
그에게 “52년간 링을 못 떠난 권투의 치명적 매력이 도대체 뭐냐”고 물었다. 느닷없는 무거운 질문에, 그는 자신의 풋워크처럼 경쾌하게 답했다.
“퍽퍽 꽂으면 픽픽 쓰러지니까.”
한결같았을 사람들의 한결같지 않은 과거가 속속 드러난다. 한결같아야 할 소신과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 한다. ‘기본’이 안 된 얼치기들이 제 세상 만난 듯 큰 목소리를 낸다. 차창 밖에서 손을 흔들며 멀어지는 ‘한결같은 청년’ 유제두가 우뚝 솟아오른 듯 크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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