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KBO리그 비선수출신 심판이 필요하다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7월 4일 05시 30분


KBO리그 심판 세계는 한국 특유의 장유유서 문화가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여기엔 ‘선수출신’으로 엮인 선·후배 문화가 한몫을 했다. 그러나 최근 잇따른 심판 논란에 비춰볼 때, KBO리그 역시 비선수출신의 심판 등용을 고민해봐야 할 시점에 다다랐다. 스포츠동아DB
KBO리그 심판 세계는 한국 특유의 장유유서 문화가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여기엔 ‘선수출신’으로 엮인 선·후배 문화가 한몫을 했다. 그러나 최근 잇따른 심판 논란에 비춰볼 때, KBO리그 역시 비선수출신의 심판 등용을 고민해봐야 할 시점에 다다랐다. 스포츠동아DB
# 2017시즌 KBO리그에 등록된 심판위원은 총 48명이다. 김풍기(51) 심판위원장은 1989~1990년 태평양에서 뛴 프로선수 출신이다. 나광남(50) 심판은 1989~1991 3년간 삼성에서 뛰었다. 박기택(51) 심판도 1991~1995년 쌍방울과 해태에서 뛰었다. 40대 심판들도 상당수가 프로선수출신이다. 30대와 20대로 내려갈수록 비 프로선수출신이 급격히 늘어나지만 모두가 대한야구협회에 선수로 등록됐던 ‘선출(선수출신)’이다.

한국사회는 예의범절을 중요시한다. 통성명 다음은 나이확인이다. 많이 달라지고 있지만 호칭이 정리되면 학연, 지연 등으로 공통점을 찾아 가는 경우가 많다.

운동선수들의 선후배 문화는 더더욱 엄격하다. 심판들은 프로야구 코칭스태프, 선수들과 모두 ‘야구인’이라는 특별한 공동체로 묶인다. 한 두 다리 건너면 다 야구 선배고 후배다. 심판이 선수와 설전을 벌이다 반말이 튀어나오고 감독이 항의하다 삿대질을 하는 이유다. 그라운드에서는 절대 개인적인 친분이 드러나서는 안 되지만 야구 선후배라는 큰 울타리를 벗어날 수는 없다.

# 2013년 미국 ESPN에는 ‘심판 판정을 향상시킬 8가지 방법’이라는 흥미로운 칼럼이 실렸다. 이 중 2번째 항목은 ‘선수출신 심판 채용’이다.

메이저리그 심판 대부분은 엘리트 선수 출신이 아니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학창시절 자연스럽게 야구경기를 접할 기회가 많지만 정식 선수출신은 드물고 메이저리그 출신은 단 한명도 없다. 메이저리그 심판은 약 5주간 교육 후 실기 테스트를 받으며 7년에서 10년 이상 마이너리그에서 능력을 인정받아야 수억 원대 연봉을 받는 메이저리그 심판이 될 수 있다. 한 때 외국인 심판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던 일본도 비 선수출신 심판이 대부분이다.

# 2013년 두산 경영진과 전직 심판의 금전거래 사실이 밝혀진 후 현장 심판들은 참담한 심경을 토로하고 있다. 경기조작을 위한 매수에 대한 증거는 없다. 심판이라는 신분을 앞세운 갈취 혹은 개인적인 돈거래 성격이 강하다. 단, 분란을 일으켰던 전직 심판이 해당 구단에서 2년간 선수로 뛴 경력이 없다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과거에 비해 많이 옅어졌지만 서로를 야구 선후배로 여기는 심판과 선수들 사이에서도 언제든지 이러한 부당거래가 일어날 수 있다. 상대를 심판보다는 선배, 선수에 앞서 후배로 여긴다면 초고액 연봉자에게 300만원쯤 빌리는 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할 수도 있다.

앞서 ESPN이 칼럼에서 주장했던 것처럼 엘리트 선수 출신 심판들은 경기와 순간 상황을 읽는 순발력에 경쟁력이 있다. 그러나 지금처럼 선수출신이 심판전체를 독점하기 보다는 철저히 교육을 받은 비선수출신과 함께 공존하는 것이 깨끗한 리그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본다. 미국은 첨단 영상장비를 통해 심판들을 지나치리만큼 엄격히 평가한다. 비 선수출신들은 마이너리그 경험과 끝없는 노력으로 공정한 판정을 위해 노력한다. 선수출신은 아니지만 판정에서 만큼은 자신들이 최고의 프로라는 자부심도 높다.

KBO 역사상 비 선수출신은 2001~2003년 활동했던 엄재국씨다. 신선한 시도였지만 1군 데뷔에는 실패했다. 심판 한명의 일탈로 인해 리그 전체의 신뢰도가 흔들릴 수도 있다는 것을 KBO와 각 구단은 절실히 느끼고 있다. 엄정하고 공정한 판정을 위해 선수출신과 비 선수출신이 그라운드에 함께 공존, 서로를 보완하는 시스템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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