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은 도루의 전성기였다. 팀의 득점 전술에서 도루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았다. 8개 구단 중 7개 팀이 100도루 이상을 기록했다. 리그 도루 숫자는 사상 처음으로 1000개를 돌파했다. 리그에 30홈런 타자는 빙그레 장종훈(35개) 단 한명이었다. 해태는 그해 홈런 톱10 중 5명을 배출한 가운데 도루도 152개로 가장 많았다. 그만큼 상대 배터리와 내야를 흔드는 도루는 모두가 선호하는 훌륭한 공격 옵션이었다.
그러나 시대는 달라졌다. 2017시즌 KBO리그는 10일까지 410경기를 소화했다. 전체 720경기 중 57%다. 리그전체 도루 숫자는 453개다. 경기당 평균 도루 숫자는 1.10개다. 지금 페이스가 시즌 끝까지 이어진다면 리그 도루 숫자는 795개다.
795개는 8개 구단 리그였던 2007년 이후 가장 적은 도루 숫자다. 그해 KBO리그 전체 도루는 764개였다. 576경기를 치른 2013년의 경기당 평균 2.02개와 비교하면 절반가까이 줄어든 수치다. 처음으로 720경기 시즌이 시작된 2015년 1.67개에도 크게 못 미치는 도루 숫자다.
● 반 토막 난 리그 도루
시즌 반환점을 이미 돌았지만 리그 전체에서 20도루 이상은 삼성 박해민(22개)이 유일하다. 호타준족으로 평가됐던 상당수 정상급 타자들은 도루보다는 안타에 집중하고 있다. 타격 1위 KIA 김선빈은 시즌 30도루 이상이 가능한 실력을 갖고 있지만 10일까지 단 7번만 도루를 시도해 3번 성공했다.
도루 숫자가 크게 감소하고 있는 이유는 시도 자체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도루 1위 박해민의 시도는 30번뿐이었다. 그 배경에는 홈런과 장타가 갈수록 중시되는 리그 환경, 그리고 팀 당 144경기를 치르면서 주전 선수들의 부상방지가 있다.
● 빅 볼 시대 설 자리 없는 도루
NC는 리그에서 두 번째로 많은 51개의 도루를 성공했다. 성공률도 0.718%로 매우 높다. 기동성을 중요시하는 NC 김경문 감독의 색깔이 드러난다. 그러나 김 감독 역시 “한 시즌 20개, 30개씩 도루를 하면 몸 구석구석에 무리가 클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도루는 대부분은 1루에서 득점권인 2루까지 희생번트 없이 진루하는 것이 목적이다. 아웃카운트 하나를 아껴 득점 확률을 높이는 전술이다. 그러나 실패의 대가는 크다. ‘머니볼’의 주인공 빌리 빈 오클랜드 단장은 도루를 경멸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홈런의 시대를 관통하고 있는 메이저리그도 공격에서 도루가 차지하는 비중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SK는 150개의 홈런을 치는 동안 28개의 도루를 했다. 팀의 공격에서 홈런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SK 트레이 힐만 감독은 “선수가 힘도 있고 스피드도 빠르다면 도루보다 타격과 수비에 집중하는 것이 낫다. 우리 팀 장점인 파워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