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앞둔 여자핸드볼 대표팀의 훈련은 녹록치 않았다. 1988년 서울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1990년 세계선수권에선 하위권으로 밀려난 터였다. 선수들이 처우에 불만을 갖고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등 협회와 코칭스태프 간 갈등 때문이라는 둥 온갖 논란이 나왔다.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에 대한 대대적인 물갈이가 이뤄졌다. 대표팀의 평균 연령은 21.3세, 신인들이 대거 투입됐다. 대표팀은 새로 구성되자마자 태릉선수촌에 들어가 오전 6시부터 트랙을 뛰며 오전 체력훈련, 오후 전술훈련을 반복했다. 매주 토요일에는 불암산 정상을 뛰어 오르는 크로스컨트리 산악훈련을 했다. 엄청난 훈련 양에 쓰러지는 선수들도, 포기하겠다는 선수들까지 나올 정도였다.
‘지옥훈련’은 결실을 거두기 시작했다. 올림픽 본선 티켓을 따냈고 세계선수권 출전권도 거머쥐었다.
‘스탠드에선 “코리아” “코리아”의 함성이 그치지 않았다. 그러나 선수들에겐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지난 450일 간의 지옥훈련, 오직 이 날을 위해 흘렸던 그 많은 땀과 눈물도 생각나지 않았다. 오직 ’이제 끝났다‘ 하는 생각뿐, ’우리는 결국 해냈다‘ 하는 안도감뿐이었다.’(동아일보 1992년 8월 9일자)
1992년 8월 8일 바르셀로나 상조르디체육관. 정형균 감독이 이끄는 여자핸드볼 대표팀이 한국 구기사상 첫 올림픽 2연패를 이룩하는 순간이었다. 28대21로 7골차, 임오경 오성옥 이미영 남은영 등 160㎝대 선수들이 평균 7㎝나 큰 노르웨이 대표팀을 상대로 거둔 승리였다.
비인기종목이자 효자종목. 우리 여자 핸드볼의 수식어다. 실제로 한국 여자핸드볼이 올림픽에서 거둔 성과는 눈부셨다. 1984년 LA올림픽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이래 1988년 서울올림픽과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로 2연패를 일궜다.
아깝게 은메달에 머문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결승전은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으로 만들어져 화제가 되는 등 매 올림픽 때마다 치열한 승부를 보여줬다. 지난해 리우올림픽에선 조별리그 탈락의 고배를 마셨지만 올 3월 아시아여자핸드볼선수권에선 우승하며 다시 일어서고 있다. 한국 여자 핸드볼의 신화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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