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용(47) 감독이 지휘봉을 잡는 팀은 항상 공격적이었다. 다양한 전술옵션을 두루 활용하면서도 전방에 무게를 실은 조합으로 승리를 노렸다.
K리그 클래식(1부리그) 성남일화(현 성남FC)에서 그랬고, 2016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도 마찬가지였다. 2017년 6월 국내에서 벌어졌던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또한 비슷한 과정을 밟았다. 1골을 내주면 2골, 2골을 내주면 3골을 뽑아 이기는 경기에 초점을 맞췄다.
물론 시행착오도 많았다. 실패도 잦았다. 특히 토너먼트에서 유독 약했다. 올림픽과 U-20 월드컵에서 조별리그 이후의 토너먼트 단판대결에서 조기 탈락하는 징크스 아닌 징크스가 생겼다. 그래도 볼거리는 충분했다. 활발한 공격전개로 재미를 줬다. 결실이 2% 아쉬울 뿐, 과정과 내용은 합격점을 받을 만 했다. 좀더 긴 호흡을 갖고 준비할 여건이 보장된다면 보다 높은 위치를 바라볼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심어줬다.
지금 한국축구는 큰 위기에 봉착했다. 2018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여정에서 극도로 부진한 흐름이다. 4승1무3패(승점 13)로 월드컵 본선 자동출전권을 받는 조 2위를 유지하고 있으나 낙관하기 어려운 처지다.
8월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릴 이란과의 홈 9차전, 9월 5일(한국시간) 타슈켄트에서 진행될 우즈베키스탄 원정 10차전은 몹시 부담스럽다.
신 감독의 요청으로 대한축구협회가 한국프로축구연맹에 국가대표 조기소집 차출 협조를 구한 사실에서 다급한 처지가 드러난다. 모든 운명이 걸린 A매치 2연전에 나설 26명 엔트리가 8월 14일 공개됐다. 신태용호 1기다.
2017∼2018시즌을 맞은 유럽·중동 리거들은 FIFA 규정대로 이란전 사흘 전인 8월 28일 합류하고 K리그 및 중국 멤버들은 8월 21일부터 경기도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에서 강화훈련을 시작한다.
처음이자, 어쩌면 (예선 탈락하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소집이다.
아슬아슬한 외줄에 오른 신 감독은 이미 자신을 버렸다. “사활이 걸린 A매치 시리즈다. 무조건 이기는 축구를 한다. 부연설명이 필요 없다. 그라운드에 설 11명과 벤치의 모두가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싸워야 한다. 평소보다 한 발 더 뛰고 훨씬 집중해야 한다.”
축구대표팀 이동국-염기훈(오른쪽). 사진|스포츠동아DB·대한축구협회 투혼의 한국축구를 부활시키겠다는 의지다.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화려한 경기력도 필요 없다. 대표팀 엔트리 면면에서‘어떻게든 이기는 축구’를 향한 열망이 드러난다. 대표팀에서 가장 깊은 족적을 남기고 있는 손흥민(25·토트넘 홋스퍼)∼기성용(28·스완지시티)∼구자철(28·아우크스부르크) 등은 물론이고, 염기훈(34·수원삼성)∼이근호(32·강원FC) 등 이전 월드컵에 출전한 베테랑들을 대거 불러들였다.
여기에 K리그 클래식의 원톱 전북현대에서 이동국(38)∼김신욱(29)∼이재성(25)∼김진수(25)∼김민재(21)∼최철순(30) 등 가장 많은 6명을 호출했다. 김보경(28·가시와 레이솔)∼김기희(28·상하이 선화) 등 전북의 우승시대를 경험한 전북출신 선수들까지 포함하면 무려 10명이다.
과감한 실험과 모험보다 경험과 안정, 호흡이 필요한 타이밍에서 당연한 선택이다. 전북은 숱한 역경을 딛고 아시아 무대를 평정한 우승 DNA가 있다. 울리 슈틸리케(63·독일) 전 감독이 이끈 대표팀의 부진이 계속될 때마다 축구계에서는 “외국인 선수를 뺀 전북을 그대로 출전시켜도 이보다는 잘할 것”이라는 지적이 흘러나온 것도 그래서다. 7월 초 부임한 신 감독의 동선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매 라운드 K리그 현장을 돌면서 전북의 경기를 가장 많이 챙겨봤다. 단점도 있겠지만 짧은 시간 내 조직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편임에 틀림없다.
이기기 위한 신 감독의 또 다른 선택은 ‘+3’이다.
출전명단에는 23명의 이름이 오르지만 26명 전원이 우즈베키스탄 원정까지 함께 한다. 훈련만 동참하는 붙박이 벤치멤버가 아닌, 선의의 경쟁을 위한 결정이다. 과거 슈틸리케호는 예비 엔트리를 선정해 공개했지만 오히려 악영향을 끼쳤다. 신 감독은 “소집기간 내내 여러 가지 변수가 있다. 경기 당일까지 꼼꼼히 챙겨 엔트리를 결정하기 위해 넉넉한 인원들을 선발했다”고 설명했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유비무환(有備無患)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