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치지 않는 자의 골프 이야기]<3>골프 마케팅 효과, 함부로 부풀리지 말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7일 10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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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열린 LPGA 4대 메이저 대회에서 3명의 한국인 선수와 1명의 한국계 선수가 우승을 차지했다. 유소연이 ANA를, 재미교포 대니얼 강이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을, 박성현이 US 여자오픈을, 김인경이 브리티시 오픈을 각각 거머쥐었다. 다음달 14~17일 프랑스에서 열리는 마지막 메이저 대회 에비앙 챔피언십마저 한국 선수가 우승하면 5대 메이저를 싹쓸이하는 셈이 된다.

이젠 한국 선수가 주요 대회에서 우승을 못 하는 게 이상한 뉴스처럼 들린다. 그러나 어느 분야에서나 그렇듯 과거와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잘 알려진 대로 한국인 최초의 골프 메이저 대회 우승자는 박세리다. 그의 ‘맨발 투혼’으로 유명한 1998년 7월 7일 US 여자오픈 결승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실의에 처한 국민들은 연장 18번 홀에서 신발과 양말을 벗고 물속에 들어가 샷을 하는 박세리를 보며 열광한 바 있다.


미국 동부보다 하루가 빠른 한국 날짜로 따지면 박세리는 7월 8일 우승한 셈이다. 당시 삼성경제연구소는 우승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발 빠르게 ‘박세리 우승과 스포츠 마케팅’이란 <CEO리포트>를 발표했다. 그 리포트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전체 광고 효과는 맥도널드 우승 시의 1억5000만 달러에 추가 효과 2000만 달러를 포함, 약 1억7000만 달러에 이를 전망.

-박세리가 메이저 대회에서 최초 우승한 맥도널드 대회와 같은 폭발적 효과는 다소 감소했으나 US 오픈 인지도가 맥도널드 대회보다 높은 점, 연장전에서 지속적으로 매체에 노출된 점이 2000만 달러의 추가 효과로 작용.

당시 박세리의 스폰서 기업은 삼성이었다. 박세리의 우승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제일기획 내 몇몇 팀이 바빠지기 시작했다. 스포츠마케팅 담당 팀을 중심으로 보도자료를 준비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누구 지시인지는 모르지만 우승 효과를 숫자로 계산해서 널리 배포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이 업무는 제일기획 브랜드 마케팅 연구소 소속이던 필자와 동료들에게 떨어졌다. 급한 지시를 받고 광고 효과를 어떻게 계산할 지에 관해 논의하다 삼성 로고의 TV 노출 시간을 TV 광고 단가에 1:1로 맞춰 계산하기로 했다.

이렇게 한 이유는 “광고 효과를 추산할 때 최대한 높은 금액을 산출하라”는 암묵적 분위기 때문이었다. 위에서 최대한 높은 금액을 발표하기를 원했기에 로고 노출 외에도 사진이나 중계진 멘트에 삼성이 언급된 부분까지 계산에 포함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나온 숫자가 1억7000만 달러(약 1910억 원)다.
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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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은 제일기획에서 했지만 자료의 신뢰도와 공신력을 높이자는 이유로 발표는 삼성경제연구소가 담당했다. 반향은 엄청났다. 당시 거의 모든 언론이 이 자료를 대서특필했다. 골프를 좋아하는 필자의 동료들도 이 숫자를 심심찮게 언급했다. 이 자료는 이후 한국 스포츠 선수들이 선전을 할 때마다 경제 효과를 추산할 때 일종의 기준 자료로 기능했다. 당연히 금액은 최초의 1억7000만 달러보다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졌다.

하지만 골프를 치지 않는 필자는 ‘이 1억7000만 달러가 적정하게 산정된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무엇보다 경기 장면의 소품 역할을 하는 의상, 모자 부분의 브랜드 노출을 특정 브랜드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광고와 1:1로 비교하는 것이 어불성설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더 높은 금액을 써야 언론에 더 크게 다뤄질 것이라는 윗선의 기대가 “가능한 한 최대한 높은 금액을 산출하라”는 암묵적 지시로 나타났고 조직원들은 이에 부응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20년이 지난 지금도 종종 ‘박세리의 맨발 투혼’이 언급되니 화제성으로만 따지면 이미 1억7000만 달러 이상의 효과를 거뒀을지 모른다. 다만 광고 효과를 지나치게 부풀리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 가장 큰 이유는 ‘광고주의 요구’다. 소위 투자자본수익률(ROI·Return On Invest) 추산이 보편화하면서 거의 모든 광고주가 광고나 스폰서 투자를 시작하기도 전에 광고 효과부터 추산해달라는 요구를 한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는 모르나 이제 대행사 측에서 광고주가 요구하기도 전에 “투자액 대비 수백 배, 수천 배의 광고 효과를 올렸다”는 자료를 내기도 한다. 광고주를 오래 붙들어두기 위해서다.

또 무엇이든 돈과 숫자로 환산해야만 한다는 현대의 시대상을 빼놓을 수 없다. 그래야 고객과 언론이 반색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이든 지나치면 곤란하다.

‘어차피 숫자로 표기해야 하니 다다익선이라고 숫자를 최대한 높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심정은 이해하지만 역효과도 고려해야 한다. 첫 번째 금액 산출 시 수치를 지나치게 높게 해 두면, 그 금액이 다음 계약에서의 기준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즉 후원 금액 자체가 대폭 상승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아마 필자가 골프광이었다면 애초에 이런 생각을 가지지도 않거나 1억7000만 달러도 과소평가된 금액이라고 했을지 모른다. 골프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박재항 하바스코리아 전략부문 대표 parkjaehang@gmail.com

:: 필자는? 제일기획 브랜드마케팅연구소장, 이노션 마케팅본부장, 현대차그룹 글로벌경영연구소 미래연구실장, 기아차 마케팅전략실장 등을 역임한 브랜드·커뮤니케이션 전문가다. 현재 프랑스계 다국적 마케팅기업 하바스코리아의 전략부문 대표를 역임하고 있다. 저서로 ‘모든 것은 브랜드로 통한다’ ‘브랜드마인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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