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투 더 동아/9월 3일] 2000년 이형택 US오픈 16강 진출

이형택 선수의 US오픈 16강 진출 소식을 알린 동아일보 2000년 9월 4일자 지면.

“박찬호의 미국 메이저리그 승리는 물론 박세리의 미국 LPGA 투어 메이저 우승을 뛰어넘는 값진 결실이다.”(동아일보 2000년 9월 4일자 C1면)

테니스가 스포츠면 톱기사가 되기란 쉽지 않다. 그만큼 국내에선 비인기 종목이다. 인기가 없더라도 올림픽 메달을 딸 만한 선수층이 탄탄하면 간간이 주목받을 텐데 그렇지도 못한 게 국내의 현실이다.

2000년 9월 4일자 동아일보 스포츠면 톱 제목은 ‘싹 가신 테니스 100년 체증’이었다. 앞선 9월 2일자 지면에 이어 테니스 소식이 톱이었다. 주인공은 뉴욕 플러싱 메도에서 열린 US오픈에 출전한 이형택 선수다. 9월 3일 라이너 슈틀러(독일)를 3-1로 꺾고 16강 진출에 성공한 다음날엔 “처음에는 우연이나 행운인 줄 알았다”로 시작되는 낭보가 전해졌다. 당연히 초반 탈락할 테니 할머니 생신(9월 3일) 축하연에 가면 되겠다는 생각에 귀국 항공편도 일주일 전으로 잡아놨던 그였다.

이형택 선수는 2000년 US오픈에 이어 2007년 US오픈에서도 16강에 올랐다.사진 동아일보DB

이형택이 이 대회 1회전에서 거둔 승리가 한국 남자 테니스 선수로는 사상 처음 메이저대회 1회전 통과였다. 그래서 2000년 9월 3일 4회전 진출은 ‘박세리 우승보다 큰 사건’으로 평가받은 것이다.

강원 횡성 출신인 이형택은 초등학생 때 테니스를 접했다. 가정 형편이 넉넉지 않아 밥과 김치만 도시락통에 넣어 다니면서도 운동에 열중했다. 추운 겨울엔 물을 뺀 수영장에 네트를 쳐놓고 공을 쳤다. 이형택은 178㎝, 76㎏의 탄탄한 체격을 갖췄지만 해외 선수들에 비해선 왜소한 편이었다. 근력과 스피드를 키우기 위해 해외 경기 때도 아령을 챙겨갔다. 비행기나 호텔에서도 근육 키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형택은 16강전에서 그해 윔블던 챔피언이었던 피트 샘프라스를 상대로 0-3으로 졌다. 그러나 그의 기록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003년 호주 시드니에서 펼쳐진 아디다스 인터내셔널 결승에서 세계 랭킹 4위였던 후안 카를로스 페레로를 2-1로 꺾고 한국 테니스 사상 처음으로 프로 투어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2007년 US오픈에서 당시 세계 랭킹 19위였던 앤디 머레이와의 경기에서 승리하면서 다시 한번 메이저대회 4회전에 진출했다. 역대 한국 남자선수 최고 랭킹인 36위를 기록한 해이기도 했다.

지난달 열린 US오픈 2회전에 진출했던 정현 선수.사진 동아일보DB

이형택의 뒤를 이어받은 건 정현이다. 세계 랭킹 47위인 그는 지난달 열린 US오픈 2회전에서 세계 랭킹 15위 존 이스너에게 0-3으로 졌지만 1회전 승리를 거뒀다. 6월에 열린 프랑스오픈 3회전에 진출하기도 했다. 이형택이 쓴 한국 테니스의 새로운 역사를 정현이 다시 쓰고 있는 셈이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