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팀은 육체를 가진 국가다. 대표팀이 취해야 할 스타일을 논의할 때 사람들은 종종 국가가 지향해야 할 자세를 논의하고 있다.”
‘파이낸셜 타임스’ 기자 출신 칼럼리스트 사이먼 쿠퍼는 이렇게 썼다. 그는 축구 칼럼리스트지만 비단 축구만 그런 건 아니다. ‘극일(克日·일본을 이김) 정신’이 없었다면 한국 스포츠가 단기간에 이렇게 성장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일본이 하는 건 우리도 다해야 했다. 일본은 1964년 도쿄(東京) 올림픽 때 ‘맛배기’로 유도를 정식종목에 포함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 후 유도는 1972년 뮌헨 대회 때부터 한번도 올림픽 공식종목에서 빠지지 않고 있다. 한국도 88서울올림픽 개최권을 따내자 똑같은 길을 걷기로 작정했다. 서울 대회 때 태권도를 시범종목으로 포함시키는 데 성공했고, 1994년에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를 통해 올림픽 공식종목으로 만들었다.
‘만들었다’는 낱말을 쓴 건 IOC에서 태권도를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한 게 김운용 당시 IOC 부위원장 겸 세계태권도연맹(WT) 총재 개인 능력으로 이룬 성과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동아일보는 “이번 성과가 전체 태권도인들의 단결된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김 총재의 IOC 내 정치적 역량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에서 볼 때 국내외 태권도 관계자들의 결집이 어떤 것보다 우선해서 이루어져야 할 과제”라고 평가했다.
당시 IOC에서 올림픽 정식종목을 채택할 때는 서로 엇비슷한 종목 중 하나만 고르는 게 원칙이었다. 태권도가 올림픽 종식 종목이 되면서 일본에서 정식종목으로 밀던 가라테(空手道)가 밀렸다. 태권도 정식종목 채택이 극일인 이유다. 가라테는 ‘어젠다 2020’에 따라 개최국에서 정식종목 추가할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된 2020년 도쿄 대회 때가 되어서야 정식종목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대한태권도협회에서 처음 올림픽 정식 종목 진입을 추진할 때는 세부종목을 겨루기(대전)와 품새로 나눌 방침이었다. 그러나 품새는 판정 시비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다분한 데다 ‘재미없다’는 의견이 우세했기에 겨루기에 다걸기(올인)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겨루기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었다. IOC는 경기 중 선수가 다쳐 병원으로 실려 가는 일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래서 머리 보호대와 가슴 보호구를 착용하고 경기를 하도록 규칙을 손질하고 나서야 태권도는 올림픽 정식종목이 될 수 있었다. 문제는 보호 장비 도입으로 인해 수비형 전술이 대세로 자리매김하면서 결국 겨루기 방식도 재미없다는 평가가 따라다니게 됐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태권도는 올림픽 퇴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2013년 올림픽 핵심종목(Core Sports)에 이름을 올리면서 천지개벽이 일어나지 않는 한 계속 올림픽 종목으로 남게 됐다. WT는 이 과정에서 링(경기장)을 좁혀 공격적인 경기 진행을 유도하고, 컬러도복을 도입하는 등 태권도를 관중 친화적인 스포츠로 탈바꿈시키려 공을 들였다.
한국은 올림픽 태권도에서 금메달 12개, 은메달 2개, 동메달 5개로를 ‘종주국 어드밴티지’를 확실히 누렸다. 한국 태권도 팬들 관점에서 안타까운 건 갈수록 이점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지난해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때는 출전 남자 선수 3명이 모두 동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대신 오혜리(29) 김소희(23·49㎏급)등 여자 선수 두 명이 금메달을 따면서 종주국 자존심은 지켰다.
오혜리는 지난해 올림픽을 따낸 뒤 “태권도가 재미없다는 말을 듣는 건 다 안다. 그런 말이 모두 옛말이 될 수 있도록 흥미진진한 경기를 펼치는 데 저부터 앞장서겠다”며 “여러분이 태권도를 많이 아껴주실수록 태권도가 여러분이 더 좋아하는 경기 내용으로 변할 수 있다. 많은 관심과 격려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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