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의 능력을 평가하는 가장 전통적인 숫자는 방어율이다. 선동열 야구국가대표 감독은 1986년 262.2이닝을 던져 방어율 0.99, 이듬해 162이닝 동안 0.89의 방어율을 기록했다. 야구만화에나 나올 것 같은 믿기 힘든 기록으로 ‘선동열 방어율’이라는 신조어를 만들기도 했다.
선발투수의 경우 2점대 방어율은 특급 에이스의 훈장으로 여겨진다. 3점대 초반은 정상급 투수로 평가된다. KBO리그는 최근 몇 해 극심한 타고투저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2점대 방어율 투수는 최근 두 시즌 동안 리그에 생존해 있었다.
2016시즌은 역대 최다인 40명의 3할 타자가 나왔지만 두산 더스틴 니퍼트가 2.95의 방어율을 기록하며 2점대 방어율 투수의 명맥을 이었다. 2015년도 역대 세 번째인 28명의 3할타자가 있었지만 KIA 양현종이 2.44의 뛰어난 방어율을 기록했다. 그러나 2017시즌 2점대 방어율 투수는 멸종 위기를 맞고 있다.
36년 KBO역사상 2점대 방어율 투수가 없었던 시즌은 2003년과 2014년, 두 해 뿐이었다. 2003년은 2명의 50홈런타자, 6명의 30홈런 이상 타자가 나온 타자의 시대였다. 2014년에도 30홈런 이상 타자가 7명에 달했다.
올 시즌 4일까지 2점대 방어율 투수는 단 한명도 없다. 방어율 1위는 두산 장원준으로 3.10, 2위는 kt 라이언 피어밴드로 3.14다.
KBO리그는 더 이상의 타고투저를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에 올 시즌을 앞두고 스트라이크존을 조정했다. 시즌 초반은 투수의 시대가 다시 열릴 것 같은 분위기였다. 메이저리그에서 정교한 제구력을 인정받았던 서재응 SBS 스포츠 해설위원도 “시즌 초반 스트라이크존은 메이저리그보다도 훨씬 넓다”고 평가할 정도였다.
한 동안 피어밴드와 롯데 박세웅(시즌 방어율 3.15·3위)은 2점대 방어율을 지키며 순항했다. 그러나 시즌 후반기 타자와 투수들이 체감하는 스트라이크존은 개막 초와 많이 다르다. 한 베테랑 투수는 “솔직히 심판에 따라 편차가 너무 심하다. 순위싸움이 치열해질수록 중요한 경기가 많아지고 있는데 그런 날은 더 좁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주춤했던 타자들은 다시 파괴력을 뽐내고 있다. 리그 3할 타자는 4일 현재 29명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