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범(57) 광주FC 감독은‘학구파’다. 명지대학교에서 운동생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공부하는 지도자다. 현장에서도 축구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틈만 나면 유럽이나 남미로 건너가 견문을 넓힌다. 많이 보고, 많이 느끼고, 많이 생각해야 선진 축구를 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처럼 공부에 전념하게 된 건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대표팀 코치생활이 계기가 됐다. 당시 러시아 출신의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 밑에서 일하면서 새로운 걸 많이 배웠다. 그 때부터 ‘우물 안 개구리가 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매년 한번씩은 외국으로 나가 경기를 관전하고, 현지 훈련장을 살피며 지식을 쌓았다.
성남 일화가 2001~2003년 K리그 3연패를 차지할 때 차경복 감독은 사석에서 이런 말을 했다. “내가 감독이지만, 사실 김(학범)코치가 많이 했어. 많은 작전은 그의 머리 속에서 나왔지. 우승은 다 김 코치 덕분이야.”
겸손이 다분히 섞인 말이었지만 사실 김 감독의 전술이나 선수단 관리 능력은 모두가 인정했다. 2006년에는 감독으로서 성남을 K리그 정상에 올려놓으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전술에 능한 그의 별명은 알렉스 퍼거슨 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을 빗댄 ‘학범슨’이다. 축구 기자들이 전술적으로 자문을 구하고 싶을 때 김 감독의 전화번호를 먼저 누르는 이유가 다 있다. 김 감독에겐 또 하나의 별명이 있다. 바로 ‘잔류 전문 감독’이다.
승강제 시스템의 K리그에서 강등은 치명타다. 그래서 상하위 스플릿으로 나뉘는 시즌 중반부터 관심의 초점은 우승과 더불어 어느 팀이 강등될 지에 쏠린다. 이 때 지도자의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팀을 살릴 수 있는 지도력이 가장 필요한 때다. 그럴 때마다 입에 오르는 이름이 김 감독이다.
2012년 최하위 강원FC의 요청으로 긴급 투입돼 잔류시킨 감독도, 2014년 막판 위기 상황에서 손을 내민 성남FC를 구해낸 것도 김 감독이었다.
강등권의 외줄타기에서 김 감독은 특유의 지략으로 살아남았다.
광주는 김 감독이 맡은 3번째 시민구단이다. 광주 역시 위기의 순간에 전문가를 찾았다. 8월 남기일 감독이 성적부진의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나자 구단은 김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물론 이번에도 클래식(1부) 잔류를 부탁했다. 광주는 겨우 4승을 거뒀고, 승점 19로 꼴찌였다.
김 감독이 팀을 맡고 치른 경기는 3경기다. 전북(1-3 패) 제주(0-1 패)에 이어 9월 10일 원정경기에서 인천과 득점 없이 비겼다. 3경기에서 얻은 승점은 겨우 1점이다. 아슬아슬하다. 하지만 김 감독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자신했다. 경험으로 얻은 생존 매뉴얼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김 감독은 광주의 상황이 예전 강원이나 성남과 비슷하다고 진단했다.
“능력이 떨어져도 위치별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선수가 있으면 팀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다시 말해 집을 짓더라도 비가 안 새게 지을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무너지는 팀은 대개 그게 안 된다.”
그렇다고 변화를 많이 줄 수도 없다. “어차피 (더 이상의) 선수는 없다. 이 선수들로 꾸려가야 한다. 지금 많은 변화를 주면 선수들이 혼동을 일으킬 수 있다. 주어진 상황에서 어떻게 헤쳐 나가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김 감독은 지금 광주에 필요한 건 ‘자신감’이라고 봤다. 그는 “구성원의 문제가 한계에 부딪히면서 자꾸 지게 되고, 그러다보니 선수들의 자신감이 떨어졌다. 지금 우리 팀에 필요한 것은 자신감 회복이다. 선수들의 심리적인 분발이 중요하다. 축구 뭐 별거 있나. 하자고 하면 다 된다”며 감독 스스로 자신감을 보였다. 최하위 광주로선 매 경기가 승부처다.
김 감독은 “1점이라도 갖고 올 수 있으면 갖고 와야 한다. 승부를 건다고 해서 이긴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일단 1점이라도 뽑아야 스플릿 가기 전까지 승점차를 좁힐 수 있다. 스플릿 이후에 죽기 살기로 승부를 보면 된다”며 생존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취임 때 ‘전쟁터에 낙하산 하나 메고 뛰어드는 심정’이라고 했던 김 감독. 어려운 여건 속에서 ‘잔류 전문가’답게 또 한번의 스토리를 엮어낼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