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9월23일 오전11시36분 고려항공 전세기가 김해공항 국제선 신청사에 도착했다. 북한선수단 1진 159명을 태운 여객기였다. 제14회 부산아시아경기대회를 일주일 앞두고였다.
김해공항에 북한 국적기가 착륙한 첫날이기도 했지만, 이날의 역사적 의미는 남달랐다. 북한선수단이 공식 대회 참가를 위해 남한 땅을 처음 밟은 날이었다.
이날의 분위기는 다소 경직돼 있었다. “감색 양복 상의와 회색 하의를 입은 북한 선수들은 긴장감이 앞서는 듯 굳은 표정으로 트랩을 내렸고… 공항 내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서 선수단 임원들은 ”환영해줘서 고맙다“는 한 마디만 남기고 보도진의 질문을 일체 받지 않은 채 자리를 떠 아쉬움을 남겼다.”(동아일보 2002년 9월24일자)
그러나 대회에 돌입하면서 분위기는 뜨거워졌다. 남북은 개막식에서 한반도기를 들고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동반 입장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이후 두 번째였다. 1진으로 입국했던 북측 선수 중 한 명인 계순희와 남측의 하형주가 함께 성화에 불을 붙였다. 남북의 유도영웅이었고 ‘남남북녀(南男北女)’에 맞춤했다.
스포츠를 통한 교류는 다감했다. 북한여자탁구팀 김현희 선수는 대회 중 연습장에서 만난 유남규 코치에게 “남규오빠는 왜 결혼 안합네까”라며 스스럼없이 말을 건넸고, 유 코치는 김 선수에게 “북한에 한혜정이라는 선수가 예뻤는데 시집은 갔나?”라고 근황을 물으며 정겨운 대화를 나눴다(동아일보 2002년 10월5일자). 화려한 패션으로 눈길을 모았던 북한의 응원단도 화제였다. 응원단을 싣고 온 만경봉92호를 보고 실향민들은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대회는 한국 2위, 북한 9위의 성적으로 마쳤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있지만, 15년 전의 훈훈했던 분위기가 무색하게 최근 북한을 둘러싼 국내외 정세는 위기 상황이다. 이 가파른 정국이 타개되고 남북한이 같이 손잡고 경기장에 들어서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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