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사직구장 한켠에서 만난 롯데 박헌도(30)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올해 정규시즌 기록한 4개의 홈런 가운데 3개를 5번 타순에서 쳤다’는 기록을 언급했을 때다. 이 말은 과거의 좋은 기억이나 데이터 등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들렸다.
박헌도는 NC와 준플레이오프(준PO) 3~5차전에 모두 5번타자로 선발출장했다. 홈런을 터트린 1차전에선 대타로 대기했고, 2차전에선 6번 지명타자로 선발출장했던 그가 3차전부터 클린업트리오의 일원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특히 롯데의 5번타순은 1~2차전에서 9타수 무안타에 그친 바 있다. 또 포스트시즌(PS)과 같은 단기전에서 5번타자의 무게감을 고려하면, 그 자리는 정규시즌 56경기 출장이 전부였던 박헌도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법했다.
그러나 박헌도의 생각은 달랐다. 장타력이 뛰어난 타자로 평가받지만, 단기전에선 상황에 맞는 타격이 우선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5번타순에 대한 부담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덧붙여 “중심타순에 포진했다는 점은 기분이 좋지만, 데이터 등에 얽매이지 않으려고 한다. 상대 투수를 효과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조급함을 버리고 공을 많이 보려고 노력한다. 나는 무조건 크게 치려고 하는 유형의 타자는 아니다. 늘 상황에 맞는 타격을 우선시한다”고 밝혔다.
넥센 시절(2014~2015시즌) PS를 경험하며 터득한 노하우를 그대로 실전에 접목하고 있다는 점도 올 가을 한 단계 성장한 그를 엿보게 해 준다. 당시에도 그는 좌투수 상대 대타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올해 PS에서도 좌투수 상대 대타의 역할을 생각하고 있었다. 언제 나갈지 모르는 위치다. 항상 경기에 나간다고 생각하고 준비해야 한다. 만약 선발 명단에서 빠지면 계속해서 투수의 공을 관찰하며 타이밍을 잡으려 한다. 경기에 나가면 어떻게든 살아 나가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NC와의 준PO는 2015시즌이 끝나고 2차드래프트(전체 3순위)를 통해 롯데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뒤 첫 PS였다.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그는 동갑내기 아내 장성미씨를 비롯한 가족을 향한 고마움을 숨기지 않았다.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와 함께 말이다. “오래간만에 PS에 나섰다. 2년 전과 큰 차이는 없지만, 가을야구는 늘 설렌다. 내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 도움을 주신 분들이 정말 많다.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특히 가족에게 고맙다. 아내를 비롯한 가족이 나를 위해 많이 희생했다. 정말 고마운 마음뿐이다.”
박헌도는 간절한 마음으로 5차전에 나서며 한 계단 더 높은 PO 무대에 대한 희망을 품었지만, 롯데는 홈 팬들의 열렬한 응원 속에서도 아쉽게 패했다. 2017년 그의 가을야구도 아쉬움 속에 그렇게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