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 전 일이다. 어느 팀 감독이 코치진을 바꿨다. 소위 자기 사람을 심었다. 두산 김태형 감독에게 이 얘기를 전했더니 그답게 즉각 반응이 나왔다. “나는 아니라고 봐요.” 이유가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감독이라면 자기 사람이 아닌 이도 활용할 줄 알아야지.” 실제 김태형은 두산 감독 첫해(2015년) 자기보다 나이 많은 수석코치(유지훤), 타격코치(박철우), 투수코치(한용덕)와 일했다. 감독 3년차인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편 가르기가 횡행하는 야구판에서 ‘김태형 사단’이라는 말은 없다. 선배 코치들과 일하면 불편할 법도 하건만 김 감독은 간결하다. 감독은 감독, 코치는 코치인데 할 말을 아끼면 직무유기라고 생각한다. 일로 모인 전문가 집단이라면 일로 실적을 내고, 책임지면 된다는 것이다. 코치한테도 이럴진대 하물며 선수한테는 말할 것도 없다. 연차도, 연봉도, 국적도 심지어 자존심도 별로 따지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 팀 두산의 승리를 위해 누가 필요한지 그 기준 하나다. 냉정하지만 공평하다. 프로 야구팀은 동아리가 아니다. 이겨야만 생존과 행복을 담보할 수 있는 조직이다.
#프로배구 삼성화재 신치용 단장은 “감독은 기생”이라고 말한다. 인사권을 쥐었다고 남용해선 안 된다는 경계다. 선수로부터 두려움과 호감을 동시에 얻어야 리더다. 소위 ‘밀당’ 기술이다. 이런 것은 배워서 될 영역이 아니다. 천부적 본능에 가깝다. 언젠가 두산은 꼭 이겨야 될 경기를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핵심선수 A가 쉬고 싶어했다. 김 감독은 A가 뛰었으면 했다. 그렇다고 ‘뛰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김 감독은 필드에 나갔다. 훈련 내내 A의 뒤에 말없이 서 있었다. A 입에서 ‘못 한다’는 말이 나올 수가 없었다. 그렇게 A는 뛰었고, 두산은 그 경기를 잡았다.
#두산은 2016시즌 올스타 브레이크 때 감독 재계약 발표를 했다. 기묘하게도 발표만 했지, 조건은 한국시리즈(KS) 이후로 늦췄다. ‘이게 뭐냐’는 서운함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두산으로 불러준 프런트에 딱히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단일시즌 역대 최다승(93승)으로 정규시즌을 끝냈다. NC와의 KS도 4연승으로 끝냈다. 오직 결과로 프런트를 무장 해제시켰고, 감정소모 없이 최고대우(3년 총액 20억원)를 끌어냈다. 세간에서 두산의 우승을 ‘선수 덕’이라 여기는 시선이 있다. 굳이 김 감독은 반박하려 들지 않는다. 두산의 시스템이 강력한 것은 맞다. 그러나 시스템을 움직이는 주체는 결국 리더다. 그리고 좋은 리더는 흔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