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사에서 국가대표팀 감독이 아닌 코치가 이렇게 관심의 초점이 된 적은 없었다. 11월 두 차례 평가전을 앞둔 대표팀이 6일 소집된 가운데 첫날의 주연은 토니 그란데(70) 코치였다.
훈련장에 들어선 그의 표정과 동작에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됐다. 그가 한국축구에 대한 인상이라며 말한 “너무 순한 축구”는 비록 신태용 감독의 입을 통해 전해졌지만 폭발적인 화제가 됐다.
이는 위기의 한국축구가 만들어낸 보기 드문 풍경이라고 본다. 현재의 전력으로는 월드컵 본선에서 망신만 당할 게 뻔하다는 불안감은 결국 풍부한 경험과 전문지식을 갖춘 외국인코치 영입으로 이어졌고, 변화를 원하는 팬들의 기대감이 소집 첫날 그대로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그란데는 대표팀 코칭스태프로 참여한 최초의 스페인 출신이다. 그는 세계적인 명장 파비오 카펠로, 거스 히딩크, 존 토샥, 비센테 델 보스케 감독을 보좌했다. 2008년부터 8년간 스페인대표팀 수석코치로 있으면서 2010년 남아공월드컵과 유로 2012 우승에 기여했다.
함께 온 하비에르 미냐노(50) 피지컬 코치 역시 스페인 출신이다.
한국축구는 그동안 외국인 코칭스태프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훈련이나 경기뿐 아니라 선수단 전체를 관리하는 노하우를 배웠다. 최초의 외국인 코칭스태프 영입은 무려 4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2년 뮌헨올림픽 지역예선을 앞둔 1971년 3월, 한국은 영국 출신 그래엄 아담스를 코치로 영입했다.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1971년 3월4일자), 아담스는 1966년 잉글랜드월드컵에서 8강 돌풍을 일으킨 북한대표팀의 코치를 맡아 유명해졌다. 아담스의 역할은 대표팀 코치뿐 아니라 일선 지도자 강습도 포함됐다. 연봉은 5500파운드였다. 올림픽 본선행이 좌절되면서 그와의 인연은 1년으로 끝이 났다. 당시 언론보도에서 감독과 코치의 불화설, 배타적인 축구문화 등이 거론된 걸 보면 순탄한 생활은 아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1990년대엔 소련 출신이 한국 땅을 밟았다. 1994년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우크라이나 혈통의 아나톨리 비쇼베츠가 감독으로 영입됐다. 1988년 서울올림픽 때 소련대표팀을 이끌고 금메달을 목에 건 명장으로, 태극전사를 이끈 최초의 외국인 감독이었다. 1996애틀랜타올림픽대표팀도 이끌었다.
외국인 지도자의 황금기는 월드컵 4강의 기적을 쓴 2002년 월드컵 이후다.
네덜란드 출신 거스 히딩크 감독 덕분이다. 2002년엔 네덜란드축구DNA가 한국축구에 이식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히딩크를 포함해 핌 베어벡 코치, 레이몬드 베르하이엔 피지컬 코치, 아르노 필립스와 윌코 그리프트(이상 물리치료사), 얀 룰프스(행정관)까지 모두 네덜란드 출신이다. 비디오 분석관인 압신 고트비만 이란계 미국인이었다.
2002년 월드컵 이후 포르투갈로 방향이 바뀌었다. 유로 2000에서 포르투갈을 4강으로 이끈 명장 움베르트 쿠엘류가 피지컬 코치 조세 아우구스토와 함께 2003년 1월 대표팀을 맡았다. 히딩크와 비교된 탓이었을까. 그는 자신의 진가를 보여주지 못한 채 1년4개월 만에 물러났다.
실패를 맛본 한국축구는 다시 네덜란드 출신을 찾았고, 요하네스 본프레레와 사인했다. 피지컬 코치는 독일 출신 요하네스 야스포르트가 왔다. 아쉽게도 본프레레는 2006년 월드컵 본선 티켓을 따고도 경기력 및 자질 논란으로 2005년 8월 경질됐다. 한국축구는 명성도, 능력도 더 강력한 지도자를 원했다. 네덜란드 출신의 ‘작은 장군’으로 불렸던 딕 아드보카트가 선임됐다. 특이한 점은 2002년 월드컵의 일등공신인 핌 베어벡과 레이몬드 베르하이엔, 압신 고트비를 다시 불러들였다는 점이다.
월드컵 이후 핌 베어벡이 지휘봉을 이어받으면서 네덜란드 축구의 물줄기는 계속 됐다. 브라질 출신의 코사가 합류했는데, 골키퍼 코치로는 첫 외국인 코칭스태프였다. 하지만 베어벡도 아시안컵(3위)의 경기내용 논란으로 2007년 7월 한국을 떠났다.
이후 한국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가운데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는 레이몬드 베르하이엔과 미카엘 쿠퍼스가 피지컬 코치로 참여했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는 일본 출신 이케다 세이고와 네덜란드 출신 안톤 두 샤트니에 코치가 대표팀을 도왔다. 2014년 10월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독일 출신 울리 슈틸리케는 아르헨티나 출신 피지컬 코치 카를로스 아르무아와 호흡을 맞췄는데, 역대 외국인 감독 가운데 가장 빈약한 지원의 코칭스태프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을 앞두고 한국축구는 스페인축구의 기운을 빌리고 있다. 코치진 보강은 단순히 분위기 전환용이 되어선 안 된다. 지금 우리는 실질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경험만 놓고 보면 천군만마이긴 하지만 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결국 감독의 몫이자 능력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