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 척’ 이 남자, 숙일 줄 아는 남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8일 03시 00분


KIA 우승 이끈 김기태 감독 ‘키워드로 본 리더십’

정규시즌에 이어 한국시리즈까지 제패한 김기태 KIA 감독이 7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를 찾아 1위를 상징하는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 감독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코치로 한국 대표팀의 금메달에 기여한 적이 있지만 프로 유니폼을 입고 우승을 차지한 것은 선수와 지도자를 통틀어 올해가 처음이다. KIA와의 3년 계약 마지막 해에 통합 우승이라는 위업을 이룬 김 감독은 최근 3년간 총액 20억 원 규모로 재계약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정규시즌에 이어 한국시리즈까지 제패한 김기태 KIA 감독이 7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를 찾아 1위를 상징하는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있다. 김 감독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코치로 한국 대표팀의 금메달에 기여한 적이 있지만 프로 유니폼을 입고 우승을 차지한 것은 선수와 지도자를 통틀어 올해가 처음이다. KIA와의 3년 계약 마지막 해에 통합 우승이라는 위업을 이룬 김 감독은 최근 3년간 총액 20억 원 규모로 재계약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안 울었어요. 눈에 샴페인이 들어간 거라니까요.”

김기태 KIA 감독(48)은 끝까지 손사래를 쳤다. KIA가 KBO리그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지난달 30일. 김 감독은 관중석을 향해 큰절을 올리면서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1991년 쌍방울 입단 후 선수, 코치, 감독을 거치면서 처음 맛보는 우승의 감격이었다. 울었다 한들 누가 뭐랄 것도 없지만 김 감독은 끝내 ‘사나이의 눈물’을 감추려 했다. 이 눈물은 여전히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7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를 찾은 김 감독을 알아본 팬들은 “덕분에 올 한 해 행복했습니다”, “고마웠습니다”라며 인사를 건넸다.

KIA의 우승이 감동적인 것은 김 감독 특유의 리더십에 힘입은 바가 크다. ‘동행(同行) 야구’는 온갖 역경을 뚫고 우승이라는 결실을 거뒀다.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라는 다섯 가지 키워드로 김 감독의 리더십을 되돌아봤다.


○ 인(仁)=버나디나를 살리다

시즌 초반 외국인 타자 버나디나는 극심한 부진에 빠져 고개 숙인 날이 많았다. 김 감독조차 퇴출을 심각하게 고려했다. 그러던 어느 날 김 감독은 버나디나가 홀로 더그아웃 의자에 앉아 머리를 쥐어짜는 모습을 봤다. 한때 일본에서 외롭게 코치 생활을 했던 김 감독은 측은지심이 들었다. 그 순간 버나디나를 안고 가기로 했다. 결과는 모든 사람이 아는 대로다. 정규시즌에서 27홈런을 친 버나디나는 한국시리즈에서는 타율 0.526에 7타점으로 펄펄 날았다. 김 감독은 “올해 가장 잘한 것 중 하나가 버나디나를 버리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 의(義)=깨끗한 야구

올 시즌 KIA는 일관성 있게 깨끗한 야구를 추구했다. 어려울 때 상대방의 신경을 자극하면서 돌파구를 찾는 팀도 있지만 KIA는 달랐다. 김 감독은 “상대팀도 동업자 아닌가. 서로 존중하면서 깔끔한 경기를 하고 싶었다. 두산과의 한국시리즈가 재미있었던 것도 양 팀 모두 깨끗하게 경기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 예(禮)=고개 숙이는 감독

김 감독은 경호팀 관계자나 버스 운전기사, 미화원 아주머니들에게도 늘 인사를 건넨다. 경기 후 선수단을 향해 모자를 벗고 정중히 고개를 숙이기도 한다. KIA 선수들이 “감독님을 위해 승리하고 싶다”고 입을 모으는 것은 그만큼 자신들이 존중받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LG 사령탑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팬들 덕분에 우승했습니다” 김기태 감독(왼쪽)을 비롯한 KIA 선수단이 지난달 30일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지은 뒤 KIA 관중석을 향해 큰절을 하고 있다. 평소 상남자 이미지를 지닌 김 감독이 흘린 눈물은 많은 팬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김종원 스포츠동아 기자 won@donga.com
“팬들 덕분에 우승했습니다” 김기태 감독(왼쪽)을 비롯한 KIA 선수단이 지난달 30일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지은 뒤 KIA 관중석을 향해 큰절을 하고 있다. 평소 상남자 이미지를 지닌 김 감독이 흘린 눈물은 많은 팬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김종원 스포츠동아 기자 won@donga.com


○ 지(智)=선수의 가치를 알아보다


올해 포수 김민식의 가치는 절대적이었다. 이 밖에 이명기, 김세현 등 트레이드로 영입한 선수들 모두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쳤다. 김민식의 진가는 김 감독이 가장 먼저 알아봤다. 김민식이 SK 소속이던 지난해 후반 KIA와의 경기에서 2루 도루를 여유 있게 잡아낸 게 계기였다. 김 감독은 “민식이와 명기가 오면서 팀의 짜임새가 단단해졌다. 이 선수들이 없었다면 우승도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 신(信)=선수를 믿는 이유


허영택 KIA 단장은 “올해 김 감독은 1위를 하면서도 욕을 가장 많이 먹은 사람일 것”이라고 했다. 사실이 그랬다. 특정 선수에 대한 기용을 문제 삼는 게 대부분이었다. 이에 대해 김 감독은 “성실하고 열심히 하기 때문에 쓰는 것이다.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선수들의 장점이 있다. 팀을 위해 헌신하려는 선수에게 기회를 주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 P.S 운(運)=운도 실력이다

야구계에는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이 있다. 올해 KIA의 우승에는 모든 운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기도 했다. 한국시리즈 2차전에 나온 두산 포수 양의지의 판단 착오가 아니었다면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지 모른다. 김 감독은 “축구에서도 실력 있는 사람에게 공이 따라간다고 하지 않나. 운도 실력이라고 본다”고 했다. 올해 KIA의 우승 원동력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팀원 모두가 좋은 마음과 생각으로 좋은 쪽을 바라보려 노력했다. 그 모든 게 한데 뭉쳐 좋은 결실을 맺었다. 우주의 기운이 바로 그런 게 아닐까.”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kia 김기태 감독#김기태 감독의 리더십#선수를 믿는 이유#운도 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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