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계에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속설이다. 스타플레이어 출신의 지도자는 자신의 눈높이에서 선수를 바라보기 때문에 ‘평범한’ 선수의 고충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삼성화재 신진식 감독(42)은 이견이 없는 스타플레이어 출신 지도자다. 선수시절 그에게는 항상 ‘1등’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기량, 인기, 팀 성적 등 모든 부분에서 항상 최고의 길만을 걸었다. ‘갈색폭격기’ 신진식이 걸어온 길은 소위 말해 화려한 ‘꽃길’이었다.
그런 그가 올 시즌을 앞두고 위기에 빠진 친정팀 지휘봉을 잡았다. 부담은 상상을 초월했다. 사라진 팀의 영광, 타 팀으로 이적한 주전세터 등 악재가 연속인 상황에서 감독직을 맡았다. 더군다나 감독으로 친정에 돌아온 상황, 팬들의 기대감은 높았다. 그에겐 독이 든 성배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신 감독은 과감히 잔을 들어올렸다. 초반 2연패로 흔들렸지만 2라운드가 진행되는 현재 파죽의 6연승을 기록하며 단독선두를 질주 중이다. 그로서는 명가재건의 시동을 성공적으로 건 셈이다.
-2연패 뒤 6연승, 이런 초반페이스를 예상했나.
“우리가 초반에 이정도로 치고 나갈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 못했을 것이다. 원래는 후반부에 승부를 볼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생각이 바뀌었다. 선수들이 열심히 해서 연승을 달리고 있는 만큼 이 분위기를 계속 유지하고 싶다. 초반에 차고 나간 이후 후반부에 페이스를 조절할 생각이다.”
-팀 분위기도 상당히 좋을 것 같다.
“경기를 이기고 지는 것에 따라 선수들 몸 상태도 달라진다. 이겼을 때는 아파도 참고 하면서 치료에 힘쓰는데, 안 좋을 때는 자기 아픈 것만 생각한다. 치료도 재활도 더뎌질 수밖에 없다. 지금 선수단 분위기는 매우 밝고 긍정적이다.”
-시즌 전부터 기본기를 특히 강조했다. 성과가 있는 것 같나.
“여름에 체력훈련을 비롯해 기본기를 다지는 과정을 많이 거쳤다. 초반에 차고 나갈 수 있는 기틀이라고 본다. 우리가 연승을 달리고 있지만 전승을 할 수는 없다. 분명히 언젠가는 질 것이다. 그때가 정말 중요하다. 흔히 말해 잘 지고, 다시 잘 일어서야 한다. 기본기를 통해 잘 추스르는 방법만이 최상이다. 최근에도 우리 팀의 1순위는 기본기다.”
-현역 시절과 감독으로서 지금의 배구를 비교하면 어떤가.
“차이점은 분명히 있다. 그때는 선수들이 눈치만으로도 서로 알아서 했을 때 아닌가. 지금은 선수들에게 조목조목 얘기를 해줘야 한다. 흔히 말해 이해도가 조금 부족한 모습이다. 지금 옛날 분위기를 다시 만들기는 쉽지 않다. 그나마 기본을 바탕으로 하니까 그런 부분이 조금씩 나오는 것 같다. 1~10까지 얘기를 다 해줘야 하는 상황이다. 자세, 정신력, 몸 관리 등 여러 부분에서 세밀하게 살펴야 한다. 아니면 선수들이 망각하고 잊어버리기 쉽다.”
-본인이 특별했던 선수였기에 평범한 선수들을 이해하기 힘든 부분 아닌가?
“그건 내가 가장 지양하는 부분이다. ‘왜 그것 밖에 못 하냐’, ‘그게 그렇게 어려워?’ 식의 지도가 지도자로서 가장 피해야 하는 방식이다. 나는 지도자의 길을 밟기 시작했을 때 ‘선수 신진식’은 아예 잊어버렸다. 그런 부분에서 모든 걸 내려놓았다. 선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런 부분이 잘못된 것이고, 이런 식으로 해보면 어떨까 하고 같이 고민한다. 자꾸 과거에 얽매여 현재의 선수들을 지도하면 한도 끝도 없다. 그러다보면 선수들도 자괴감이 들고 팀도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세터 황동일을 변신시킨 것은 그런 생각의 연장선인가.
“(황)동일이에게도 자기 자신을 내려놓으라고 말했다. 기본만 하라고 늘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그게 결코 쉬운 게 아니다. 자기가 그동안 해온 게 있는데 버리는 게 쉽게 되겠나. 하지만 팀을 위해 해야 한다. 전술이라는 것은 특별한 게 아니다. 장점만을 살리고,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된다. 황동일은 공격수를 살리고 본인의 장점인 공격도 과감히 하는 게 제 역할이다. 그것만 잘 해도 세터로서 최고의 활약을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