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길의 스포츠에세이] 35년 K리그 사령탑들의 우승 이야기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11월 23일 05시 30분


전북 최강희 감독. 스포츠동아DB
전북 최강희 감독. 스포츠동아DB
지난달 초 부산 아이파크 조진호 감독이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뒤 K리그 감독들은 “감독으로 산다는 게 얼마나 고독한 지, 또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지는 본인이 아니고선 절대 모른다”며 안타까워했다.

권한만큼이나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감독은 겉으로는 번지르르해 보일지 몰라도 철저하게 외로운 직업이다. 생존을 위해 성적에 목숨 거는 그들의 처지를 생각할 때면 가끔 가슴 한쪽이 먹먹해질 때가 있다. 올 시즌도 K리그 감독의 잔혹사는 되풀이됐다. 클래식(1부)과 챌린지(2부)에서 모두 6명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런 처절함이 삭풍처럼 피부에 와 닿는데도 감독이라는 자리는 선수라면 한번쯤 꿈꾸는 여전히 매력적인 직업인 모양이다.

출범한 지 35년이 된 프로축구 K리그에서 감독 타이틀을 단 지도자는 총 144명이다. 국내 지도자가 123명이고, 외국인 감독이 21명이다.

그렇다면 정규리그 우승 헹가래를 받아본 감독은 몇 명이나 될까. 정답은 20명이다(챌린지 제외). 도전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정상의 문을 열기란 결코 녹록치 않다는 걸 감독들은 잘 안다. 시즌이 진행되는 9개월 내내 밤잠을 설치며 노심초사하지만 결국 웃는 사람은 단 한명뿐이다.


최다우승의 주인공은 전북 현대 최강희 감독이다. 5번이나 정상에 올랐다. 우승도 해본 감독이 또 한다는 얘기가 딱 맞다. 2005년 여름 전북 지휘봉을 잡은 뒤 13년째 ‘봉동이장’으로 살고 있는데 2009년 첫 우승을 시작으로 2011년, 2014년, 2015년에 이어 올해까지 5차례나 정점을 찍었다. 이만하면 K리그 최고 명장이라는 데 이견은 없을 듯하다.

특히 올해는 통산 3번째로 200승을 달성해 의미를 더했다. 이는 단일팀에서 최단기간에 이룬 값진 기록이다. 현재 203승. 앞서 200승을 넘긴 감독은 원로 김정남(210승), 김호(207승) 감독이다. 최 감독이 최다승 기록을 깨는 건 시간문제다. 최 감독은 내년에 K리그와 함께 아시아 무대 정상 복귀도 노린다.

K리그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구단이 일화다. 서울과 천안, 성남으로 연고지를 옮기면서 모두 7차례나 우승컵을 안았다. 이는 K리그 최다 우승횟수다. 이 중 3번은 박종환 감독, 3번은 차경복 감독의 몫이었다.

특이한 건 두 감독 모두 3연패를 달성했다는 점이다. 박 감독은 1993~1995년, 차 감독은 2001~2003년 K리그를 평정했다. 나란히 3회 우승으로 최다 우승 랭킹 공동 2위다.

통산 2차례 우승한 감독(챌린지 제외)은 고재욱, 김정남, 김호, 이차만, 이회택, 차범근, 황선홍 등 7명이다. 이들 중 김호(수원), 이차만(대우), 이회택(포항), 차범근(수원)은 한 팀에서 성과를 거뒀고, 고재욱(럭키금성, 울산), 김정남(유공, 울산), 황선홍(포항, 서울)은 팀을 달리하면서 트로피를 가져갔다.

FC서울 감독이던 2012 시즌, 우승을 차지한 최용수 감독. 스포츠동아DB
FC서울 감독이던 2012 시즌, 우승을 차지한 최용수 감독. 스포츠동아DB

나이를 통해 우승을 들여다보면, 역대 최고령 우승은 차경복 감독이다. 1937년생인 그가 처음 우승한 2001년의 나이는 64세. 이후 연거푸 2번을 더 정상에 섰으니, 66세가 현재 최고령 우승 기록이다. 박종환 감독은 50대 때 전성기를 누렸다. 반대로 최연소 우승은 이차만 감독이다. 1950년생인데 37세의 나이로 1987년 대우(현 부산)를 맡아 첫 해에 우승하는 행운을 누렸다. 두 번째로 젊은 감독은 39세로 1990년 럭키금성(현 서울)을 정상으로 이끈 고재욱 감독이고, 2012년 서울 우승의 주역 최용수 감독이 39세로 최연소 3위다.

K리그 최초의 더블은 황선홍 감독이 차지했다. 2013년 포항을 정규리그 정상으로 이끈 데 이어 FA컵에서도 우승하며 영광을 안았다. 황 감독은 시즌 중에 지휘봉을 물려받아 타이틀을 딴 2명의 감독 중 한명이다. 2016년 여름 중국리그로 간 최용수 감독에 이어 서울 지휘봉을 잡아 정상에 섰다. 다른 한명은 장운수 감독이다. 1984년 조윤옥 감독에 이어 시즌 중간에 대우를 맡아 우승했다.

외국인 가운데 우승을 맛본 지도자는 비츠케이(1991년 대우), 파리야스(2007년 포항), 빙가다(2010년 서울) 등 3명이다. 특히 브라질 출신의 파리야스는 화끈한 공격전술로 돌풍을 일으키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역대 외국인 감독 최연소(40세) 우승. 비츠케이와 빙가다의 공통점은 지휘봉을 잡은 첫 해에 정상에 올랐다는 점이다.

한편 챌린지에서는 박항서 감독이 2번, 고(故) 조진호(대전) 이흥실(안산) 김종부(경남) 감독이 한차례씩 우승했다.

지난 2013년 포항에서 더블 우승을 달성한 황선홍 감독. 스포츠동아DB
지난 2013년 포항에서 더블 우승을 달성한 황선홍 감독. 스포츠동아DB

20일 K리그 시상식에서 감독상 시상자로 나선 황선홍 감독은 명장의 조건으로 ‘유머’를 들었다. 최강희 감독을 두고 한 말이다. 우승을 많이 해서 유머가 늘었는지, 유머가 많아 우승횟수가 늘었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감독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중압감 속에서도 최 감독의 유머는 유별났다.

황 감독은 아마도 K리그 감독들이 최 감독처럼 조금 더 여유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던 것 같다. 이 점 진심으로 공감한다. 아울러 팬들에게도 여유로운 마음을 부탁하고 싶다. 우승 감독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내는 것은 당연한데, 비록 우승은 못했지만 최선을 다한 감독들에게도 격려의 박수를 힘껏 쳐줬으면 한다. 그게 내년을 준비하는 지도자에겐 큰 힘이 된다.
내년 시즌 축하의 박수는 과연 누가 받을까.

최현길 전문기자 choihg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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